성종실록 100권, 성종 10년 1월 17일 갑술 1번째기사
1479년 명 성화(成化) 15년
동부승지 채수가 숭례문의 중수와 함께 옹성도 쌓기를 청하였으나 쌓지 말게 하다
상참(常參)을 받았다. 동부승지(同副承旨) 채수(蔡壽)가 아뢰기를,
"숭례문(崇禮門)을 요즈음 중수(重修)하려고 하는데, 아울러 옹성(甕城)도 쌓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좌승지(左承旨) 김승경(金升卿)은 말하기를,
"중국(中國)은 비록 역참(驛站)이라도 모두 옹성을 쌓았습니다. 숭례문은 중국 사신이 출입하는 곳이니, 옹성을 쌓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까?"
하고 우부승지(右副承旨) 유순(柳洵)은 말하기를,
"숭례문(崇禮門)은 조종조(祖宗朝)로부터 옹성(甕城)이 없었으니, 모름지기 쌓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민력(民力)이 넉넉하지 못하니, 어찌 한결같이 중국과 같을 수 있겠는가? 만약 옹성을 쌓게 되면 마땅히 민가(民家)를 헐어야 하니, 빈궁(貧窮)한 자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도적[賊]이 이 문(門)에 이른다면 이 나라가 나라의 구실을 못할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러니 쌓지 말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00권 7장 A면【국편영인본】 9책 689면
- 【분류】건설-건축(建築)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