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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93권, 성종 9년 6월 13일 계묘 2번째기사 1478년 명 성화(成化) 14년

박지번과 양희지의 문제를 의논하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윤효손(尹孝孫) 등이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신(臣) 등은 들으니, 요(堯) 순(舜)의 도(道)는 효제(孝悌)뿐이라 합니다. 그래서 효(孝)로써 천하(天下)를 다스림은 성인(聖人)이 선무(先務)로 여기는 것입니다. 신 등은 삼가 상고하건대, 《대전(大典)》에, ‘70세 이상의 어버이가 있는 자는 한 아들, 80세 이상의 어버이가 있는 자는 두 아들이 귀양(歸養)한다.’ 했습니다. 박지번(朴之蕃)은 독자(獨子)인데, 그 어미의 나이가 70세가 넘었고, 양희지(楊熙止)는 한 형이 있으나 그 어미의 나이가 80세가 넘었으니, 모두 법(法)으로는 마땅히 귀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하(殿下)께서 특명으로 시조(侍朝)하게 하고 귀양함을 윤허(允許)하지 않으시니, 전하께서 인재(人材)를 구하여 임용(任用)하는 뜻은 지극하나, 그 효(孝)를 다스리는 도리에 있어서는 어떻겠습니까? 이 두 사람이 전하에게 충절을 다할 날은 많으나 어버이를 섬길 날은 적으니, 옛사람의 풍수(風樹)의 탄식535) 이 참으로 그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충신(忠臣)을 구하려면 반드시 효자의 집안이라 하는데, 어찌 정리(情理)를 빼앗으며 억지로 머물게 하겠습니까? 또 두 사람의 거취(去就)가 국가(國家)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으니, 두 어미의 의려지망(倚閭之望)536) 은 오직 이 두 아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두 어미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오조지정(烏鳥之情)537) 을 그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특별히 귀양(歸養)하도록 윤허하여 충(忠)과 효(孝)를 보전하게 하소서."

하니, 명하여 정승(政丞)에게 의논(議論)하게 하였다. 정인지(鄭麟趾)는 의논하기를,

"박지번은 네 계절마다 역마(驛馬)를 주어 귀근(歸覲)하게 하고, 양희지는 어버이와 가까운 곳의 수령으로 임명하여 충과 효를 보전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정창손(鄭昌孫)·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세종조(世宗朝)에 직제학(直提學) 김돈(金鐓)이 경학(經學)에 정숙(精熟)하였으므로 세종이 매우 아끼었습니다. 김돈의 어미의 나이가 80세가 넘어 강진현(康津縣)에 있었는데, 김돈이 벼슬을 그만두고 귀양(歸養)하기를 청하니, 세종이 그 뜻을 거듭 어기고 장흥 부사(長興府使)를 제수했습니다. 그러나 겨우 한두 해가 지나자 세종이 말하기를, ‘김돈은 학문이 정숙하여 여러 해를 시강(侍講)했는데, 어버이가 늙어서 외직(外職)을 구했으나 나는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지금 바야흐로 역법(曆法)을 교정(校正)하고 있으니, 김돈이 아니면 불가(不可)하다.’ 하고, 명하여 역마(驛馬)를 주어서 어미를 모시고 올라오게 하였으며, 장흥군(長興君) 마천목(馬天牧)의 노모(老母)는 곡성현(谷城縣)에 있었는데, 귀양하기를 청하니, 세종이 윤허하여 봉군(封君)을 하고 귀양하게 했습니다. 지금 박지번은 직사(職事)가 없으니, 마천목의 예에 의하여 그 원대로 따름이 좋을 것이고, 양희지의 어머니는 나이가 매우 많고 또 먼 도(道)에 있으니, 비록 재간이 특이하다 하더라도 공신(功臣)이나 대신(大臣)의 예가 못됩니다. 그러니 인정을 빼앗아 시조(侍朝)하게 함은 마땅치 않습니다. 수령(守令)에 임명하여 끝내 봉양할 수 있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한명회(韓明澮)는 의논하기를,

"박지번은 무재(武才)가 있는데다가 청렴하고 근실하며 또 공신이니, 해직(解職)시켜 귀양(歸養)하게 함은 마땅치 않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있는 곳이 서울에서 멀지 않으니, 맞이하여다가 봉양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양희지는 어머니가 비록 늙었으나 그 형이 이미 귀양하고 있으니, 굳이 다 귀양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이 문·무(文武)의 재간이 있으니, 마땅히 급히 발탁해서 등용해야 합니다."

하고, 윤사흔(尹士昕)은 의논하기를,

"박지번은 독자(獨子)이므로 귀양하지 않을 수 없으니, 오자치(吳自治)의 예에 의하여 녹(祿)을 받으며 귀양함이 옳을 것이고, 양희지는 수령에 임명하여 충과 효를 보전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93권 6장 A면【국편영인본】 9책 612면
  • 【분류】
    인물(人物)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윤리-강상(綱常)

  • [註 535]
    풍수(風樹)의 탄식 : 《한시외전(韓詩外傳)》에 고어(皐魚)가 말한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멎지 않고, 효도를 하려 해도 어버이는 계시지 않네.[樹欲靜而風不止 子欲孝而親不待]"란 말을 인용한 것인데, 부모님에게 오래도록 효도하지 못한다는 한탄(恨歎)임.
  • [註 536]
    의려지망(倚閭之望) : 어머니가 자녀(子女)의 돌아오는 것을 문에 의지하여 마음을 졸여가며 기다리는 지극한 애정을 이름.
  • [註 537]
    오조지정(烏鳥之情) : 어미새의 길러준 은혜를 갚는 까마귀의 반포(反哺)하는 마음. 즉 자식이 어버이에게 효도를 다하고자 하는 마음.

○司憲府大司憲尹孝孫等上箚子曰:

臣等聞之道, 孝悌而已, 以孝治天下, 聖人所先務。 臣等謹按《大典》有 ‘七十歲以上親者一子、八十歲以上親二子歸養。’ 朴之蕃獨子而其母年逾七旬, 楊熙止有一兄而其母亦年逾八旬, 皆法當歸養。 殿下特令侍朝, 不聽其去, 在殿下求材任用之意則至矣, 其於孝理何? 二人盡節之日則長, 而事親之日則短, 古人風樹之嘆, 良有以也。 況求忠臣必於孝子之門, 豈有奪情而强留? 且二人去就, 不能爲有無於國家, 而在二母倚閭之望, 則惟此二子而已。 二母日迫西山, 烏鳥之情容可已乎? 伏望特許歸養以全忠孝。

命議于政丞。 鄭麟趾議: "之蕃四時給驛往覲, 熙止差近親處守令, 以全忠孝何如?" 鄭昌孫沈澮議: "世宗朝, 直提學金鐓經學精熟, 世宗深加眷注。 之母年過八十, 居康津縣, 請解職歸養, 世宗重違其志, 除長興府使。 纔過一二年, 世宗以謂: ‘金鐓學問精到, 累年侍講, 以親老求外補, 予至今不忘。 今方校正曆法, 非不可。’ 命給驛, 侍母北上。 長興君 馬天牧老母居谷城縣, 請歸終養, 世宗許封君歸養。 今朴之蕃無職事, 依天牧例, 從其所願爲便, 楊熙止母年甚老, 且在遠道, 雖才幹卓異, 非功臣大臣之例, 不宜奪情侍朝。 差守令, 俾得終養何如?" 韓明澮議: "朴之蕃有武才淸謹, 且功臣, 不宜解職歸養。 其母之居距京不遠, 使之迎來奉養何如? 楊熙止母雖老, 其兄已歸養, 不必俱歸。 且其爲人有文武才, 宜亟擢用。" 尹士昕議: "朴之蕃以獨子, 不可不歸養, 依吳自治例, 受祿歸養可也, 楊熙止差守令, 以全忠孝何如?"


  • 【태백산사고본】 15책 93권 6장 A면【국편영인본】 9책 612면
  • 【분류】
    인물(人物)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