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들과 의논하여 중궁을 폐하여 빈으로 낙점하다
이른 아침에 재상(宰相)들을 모두 모아 놓고 전교하기를,
"내가 반복해서 생각해 보니, 이 문제는 투기만이 아니다. 가지고 있는 주머니에 비상이 있었으니, 비록 나를 해치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 국모(國母)의 의범(儀範)을 잃는 것이 심하다. 별궁(別宮)에 두는 것으로는 징계하는 뜻이 없다."
하니, 정창손(鄭昌孫) 등이 대답하기를,
"옛부터 폐하여 서인을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 낮추어서 빈(嬪)으로 삼으면 마땅히 시종(侍從)이 있어야 할 것이니, 사제(私第)에 거처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옛말에도 ‘폐하여 소대궁(昭臺宮)에 거처하게 했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폐하여 이원(尼院)과 선원(仙院)에 거처하게 했다.’ 하였으니, 중궁을 빈으로 강등한다면 어찌 징계함이 아니겠습니까? 사제(私第) 같은 데는 누추하여 거처할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백방으로 생각해 보아도 별궁에 거처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자, 정창손(鄭昌孫) 등이 전과 같이 대답하였다. 전교하기를,
"정승의 말은 비록 이와 같으나 나의 의혹은 풀리지 않는다. 사제(私第)에 두면 어미와 함께 거처할 것이다."
하였다. 정창손 등이 말하기를,
"옛 임금들이 후(后)를 폐하려 하면 대신(大臣)들이 막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중궁은 실수한 바가 크기 때문에 신이 감히 청하지 못합니다. 신의 생각은 별궁에 두었다가 만일 뉘우쳐 고치지 않을 경우 별궁으로부터 사제에 돌아가게 해야지 애당초 사제에 두면 뒤에 비록 뉘우쳐 깨달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때는 다시 별궁에 거처하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대부인(大夫人)이 실정을 안다면 마땅히 성중(城中)에 있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하였다. 도승지 현석규(玄碩圭)가 아뢰기를,
"교서(敎書)에는 일의 전말을 갖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옥구(獄具)481) 를 갖춘 뒤에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나는 자수궁(慈壽宮)에 두고 싶다. 그 강봉(降封)할 위호(位號)를 상의하여 아뢰어라.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하는 것은 옥구(獄具)가 갖추어진 것을 기다리는 것이 옳다."
하였다. 정창손 등이 의논하여 수빈(壽嬪)·귀인(貴人)·소의(昭儀)로 아뢰니, 빈으로 낙점(落點)하였다. 서거정(徐居正)으로 하여금 교서(敎書)를 초하게 하고, 강희맹(姜希孟)과 이승소(李承召)는 종묘에 고할 축문을 초하게 하고 모든 재상들은 물러갔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78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9책 44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역사-고사(故事) / 윤리-강상(綱常) / 신분-천인(賤人)
- [註 481]옥구(獄具) : 옥에서 형벌을 주는 데에 쓰는 도구.
○丁酉/早朝, 宰相俱會, 傳曰: "予反復思之, 此非特妬忌也。 砒礵在所持囊子, 雖不欲害我, 其失母儀甚矣。 置於別宮, 則無懲戒之意。" 昌孫等對曰: "自古無廢爲庶人者。 今降爲嬪, 宜有侍從, 不可處於私第。 古亦有之曰: ‘廢處昭臺宮。’ 又曰: ‘廢處尼院、仙院。’ 以中宮降爲嬪, 則豈不懲戒? 若私第則淺陋, 不可處矣。" 傳曰: "百思之, 不可處於別宮。" 昌孫等對如前。 傳曰: "政丞之言雖如此, 予惑未解。 置於私第, 則與母同處矣。" 昌孫等曰: "古之人君欲廢后, 大臣有止之者。 然今中宮所失大, 故臣不敢請。 臣意以爲置之別宮, 如不悛改, 自別宮而可歸私第, 置之私第, 則後雖悔(悔)悟, 勢不可復處別宮也。 且大夫人知情, 則不宜在城中也。" 都承旨玄碩圭啓曰: "敎書不可不具事之首末。 獄具後告宗廟頒敎書, 何如?" 傳曰: "予欲置于慈壽宮, 其降封位號, 商議以啓。 告廟頒敎, 待獄具可矣。" 昌孫等議, 擬壽嬪、貴人、昭儀以啓, 落點于嬪。 令徐居正草敎書, 姜希孟、李承召草告宗廟祝文, 諸宰乃退。
- 【태백산사고본】 12책 78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9책 44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역사-고사(故事) / 윤리-강상(綱常) / 신분-천인(賤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