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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57권, 성종 6년 7월 4일 신해 2번째기사 1475년 명 성화(成化) 11년

호조에서 백성들의 사역 문제에 관해 아뢰다

호조(戶曹)에서 아뢰기를,

"지금 전교(傳敎)를 받으니, 폐해를 진술한 사람이 말하기를, ‘경기[畿甸]의 백성들에게 요역(徭役)이 균평(均平)하지 못하다.’고 하는데, 이보다 앞서 생풀[生草]을 바칠 때 백성이 고통을 받은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상정(詳定)606) 한 이후에는 여러해 묵은 큰 폐해가 하루아침에 깨끗이 제거되니, 백성들이 서로 경하(慶賀)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백성을 사역(使役)하는 법식 내에는 무릇 전지(田地) 8결(結)607) 에 1인(人)의 역군(役軍)을 내게 되니, 1년 동안에 백성을 사역(使役)하는 것이 6일에 지나지 않는데도, 수령(守令)들은 국가에서 백성을 무휼(撫恤)하는 뜻을 따르지 않고 상시로 백성을 사역하여 자기의 사정(私情)을 마음대로 씁니다. 그래서 내수사(內需司)의 노자(奴子), 권세가(權勢家)의 반당(伴倘)·노자(奴子), 또는 관중(官中)의 제역(除役)한 각호(各戶)에게는 모두 빠뜨려 보호해 주고, 세력이 없는 잔호(殘戶)에게는 별도록 뽑아 장부에 기록하여 한 차례 돌고난 후에도 다시 사역하게 되니, 백성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또 영세민(零細民)이 경작하는 전지(田地) 1결(結)에다 권세가(權勢家)의 경작하는 전지 7결까지 합쳐서 1인의 역부(役夫)를 내게 되니, 그 권세가의 종은 성호 사서(城狐社鼠)608) 처럼 그 주인의 세력을 믿고서 상시 요역(徭役)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령(守令)들은 세력을 두려워하여 능히 제어하지 못하고 간사한 이속(吏屬)은 그러한 틈을 타고서 그 술책을 부리니, 국가의 좋은 법과 좋은 뜻이 한갓 겉치레만 될 뿐입니다. 빈궁한 백성은 전지 1결을 가지고서 권세가의 7결의 요역까지 합쳐서 제공하다 보니, 농사철에 농업을 폐지하게 되어 가을에는 수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 저곳에서 이식(利息)을 주고 빌려서 생활하다가 이듬해 봄에 이르러서는 전답(田畓)과 주택을 다 팔아 갚고, 돌아갈 곳이 없게 되자 부유하고 세력 있는 집에 붙어서 얻어 먹으며 고용사리[傭作]를 감수하다가 마침내 종이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몹시 슬퍼할 일입니다.

신(臣)은 생각하기를, 국가에서 백성을 사역하는 제도가 강령(綱領)만 있고 조목(條目)은 없으므로 수령(守令)들이 이를 받들어 시행하지 않으며, 감사(監司)는 비록 살펴서 시행하려 하여도 또 알 수가 없습니다. 신(臣)은 원컨대 지금부터는 부역(賦役)은 한결같이 생풀[生草]을 바치는 제도에 의거하여, 한 고을의 경작하는 전결(田結)의 수량을 먼저 정해 두고, 전지(田地) 8결(結)에 역부(役夫) 1인을 내는 것으로 강령(綱領)을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가령 한 고을에 경작하는 전지가 8백 결이라면 역부 1백 명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미루어 나가서 여러 고을의 전결(田結)의 수량을 가지고 역부를 계산해 내도록 하여 부안(簿案)을 명백히 정하고, 고을마다 각기 3건(件)을 만들어 호조(戶曹)와 본도(本道)·본고을에 나누어 간수하도록 하고, 매양 역부(役夫)를 낼 때에는 수령(守令)이 친히 장부를 손에 쥐고서 그 이미 요역(徭役)에 나간 사람과 요역에 나가지 않은 사람을 가려서 명백히 이를 기록하여, 한 차례 돌고 난 후에 다시 시작하게 한다면 백성의 원망도 없어지고 부역(賦役)도 균평(均平)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법을 제정하고서 감사(監司)는 순행(巡行)할 적마다 상시 고찰(考察)해서 출척(黜陟)에 참고한다면 수령들은 거의 두려워하여 받들어 시행할 것입니다. 신(臣) 등이 백성을 사역하는 법을 참상(參詳)해 보니, 법식 내에, ‘일체(一切) 수세(收稅)하는 전지(田地) 8결(結)에 역부(役夫) 1명을 내도록 한다.’는 주(注)에, ‘관찰사(觀察使)가 일을 보아 공력(功力)을 헤아리고 전지(田地)를 계산하여 역부(役夫)를 조발(調發)하는데, 한 고을의 군졸(軍卒)을 다 뽑는 것이 아니고, 그 수효를 적당히 나누어 각기 그 부근(附近)에서 번갈아 부역(賦役)시켜 1년 동안에 6일에 지나지 않으며, 만약 길이 멀어서 6일 이상이 걸리면 그 이듬해의 부역(賦役)을 준(準)해서 줄이게 하고, 수령(守令)이 혹시 인정(人情)609) 으로써 역부를 조발(調發)하는 일이 균평(均平)하지 못하거나, 혹은 역부를 영솔(領率)한 관리(官吏)가 시일을 지체하여 기한을 넘기는 사람은 모두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610) 로 논죄(論罪)하고, 만약 1년에 마지못해서 두 번 부역시키게 되면 모름지기 계달(啓達)하고 나서 시행한다.’ 하였습니다. 이렇게 법이 상세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여러 고을에서 역부(役夫)를 조발(調發)할 즈음에 있어서 군졸(軍卒)을 내는 수효를 이름 밑에 표시해 기록하지 않으므로 수령(守令)들이 자기 마음대로 변경하여 옮기기도 하고, 해당 이속(吏屬)들은 이를 인연(因緣)하여 간계(奸計)를 부려 부호(富戶)를 버리고 빈호(貧戶)를 사역하는 폐단이 없지 않으니, 이는 진실로 의자(議者)의 말과 같습니다.

청컨대 생풀[生草]을 나누어 정하는 예(例)에 의거하여 여러 도(道)의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여러 고을의 수세(收稅)하는 전지(田地) 내에, 아무 면(面) 아무의 전지 8결(結)에는 1인의 역부(役夫)를 내고, 아무 아무의 전지를 8결을 합쳐서 1인의 역부를 내게 하여 사면(四面)이 모두 이 예(例)를 따라서 상세히 장부를 만들어 본도(本道)·본읍(本邑)에 간수하고, 본조(本曹)611) 에서는 단속[檢擧]하는 참고로 삼으며, 관찰사(觀察使)가 순행(巡行)할 때마다 장부를 상고하여 검찰(檢察)해서 만약 받들어 시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백성을 사역하는 법에 의거하여 뒤따라 곧 죄를 다스리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9책 57권 1장 B면【국편영인본】 9책 239면
  • 【분류】
    재정-역(役)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물가-임금(賃金)

  • [註 606]
    상정(詳定) : 나라의 제도 또는 관청에서 쓰는 물건의 값·세액(稅額)·공물액(貢物額) 등을 심사 결정하는 일.
  • [註 607]
    8결(結) : 지적(地積)의 단위.
  • [註 608]
    성호 사서(城狐社鼠) : 성 안에 사는 여우와 사당(祠堂) 안에 사는 쥐. 성과 사당을 의지하여 사는 짐승이니, 즉 어떤 권력 있는 배경을 믿고 사는 간신(奸臣)의 비유.
  • [註 609]
    인정(人情) : 벼슬아치에게 주는 선물.
  • [註 610]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 : 임금의 교지(敎旨)와 세자(世子)의 영지(令旨)를 위반한 자를 다스리는 율로, 장(杖) 1백 대에 처함.
  • [註 611]
    본조(本曹) : 호조(戶曹).

○戶曹啓: "今承傳敎, 陳弊者有言: ‘畿甸之民, 徭役不均。’ 前此納生草時, 民之受苦, 不可勝言。 自詳定之後, 積年巨弊, 一朝頓祛, 莫不相慶焉。 我國役民式內, 凡田八結出一夫, 一年役民, 毋過六日, 而守令不體國家撫恤元元之意, 常時役民, 專任情私。 如內需司奴子, 勢家伴倘、奴子, 官中除役各戶, 悉令脫漏蔭庇, 而無勢殘戶, 別抄錄簿, 周而復役, 民不堪苦。 又有以殘民所耕一結, 幷勢家所耕七結, 而出一夫, 其勢家之奴, 依憑城社, 恒不就役。 守令畏勢而莫能制, 奸吏乘間而弄其術, 國家良法、美意, 徒爲文具。 窮民以田一結, 幷供勢家七結之役, 農月廢業, 秋無所收。 轉轉稱貸以生, 及至明春, 盡賣田宅以償之, 無所於歸, 寄食富强之戶, 甘爲傭作, 終至爲奴, 可爲哀痛。 臣竊謂國家役民之制, 有綱無目, 故守令不之奉行, 監司雖欲察擧, 亦不得知。 臣願自今賦役一依納草之制, 先定一邑所耕田結之數, 以田八結出一夫爲綱。 而假如一邑所耕八百結, 則出夫一百名也。 以此推之, 將諸邑田結之數, 計出丁夫, 明立簿案, 邑各三件, 分藏于戶曹及本道ㆍ本邑, 每當出夫之時, 守令親執以抄其已役者ㆍ未役者, 明白志之, 周而復始, 則怨絶而賦役均矣。 如是立法, 而監司每於巡行, 常加考察, 以憑黜陟, 則守令庶幾畏憚而奉行。 臣等參詳役民式內: ‘一應收稅田八結, 出一夫。’ 注: ‘觀察使視事, 量功計田調發, 非盡抄一邑之軍, 量分其數, 各於附近輪役, 一歲不過六日, 若路遠六日以上, 則準減翌年之役, 守令或以人情, 調發不均, 或領役官吏遲留過限者, 竝以制書有違律論, 若一歲不獲已再役, 則須啓達乃行。’ 法非不詳, 而諸邑於調發之際, 不標錄出軍之數於名下, 故守令任情而推移, 該吏因緣而售奸, 不無捨富役貧之弊, 誠如議者之言。 請依生草分定例, 令諸道觀察使, 諸邑收稅田內, 某面某之田八結出一夫, 某某之田幷八結出一夫, 四面皆從此例, 備悉成籍, 藏于本道、本邑、本曹以憑檢擧, 觀察使每於巡行時, 考籍檢察, 如有不奉行者, 依役民式, 隨卽治罪。" 從之。


  • 【태백산사고본】 9책 57권 1장 B면【국편영인본】 9책 239면
  • 【분류】
    재정-역(役)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물가-임금(賃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