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 대군 이제의 아들인 함양군 이포의 졸기
함양군(咸陽君) 이포(李𧦞)가 졸(卒)하니, 철조(輟朝)하고 조제(弔祭)와 예장(禮葬)을 예(例)와 같이 하였다. 이포는 양녕 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의 아들이다. 선덕(宣德)399) 신해년400) 에 처음 통정 대부(通政大夫) 원윤(元尹)에 제수(除授)되었고, 임자년401) 에 가정 대부(嘉靖大夫) 함양군에 올랐고, 정통(正統)402) 무오년403) 에 숭덕 대부(崇德大夫)에 오르고 윤(尹)으로 고쳐 제수되었고, 신유년404) 에 세종이 포가 근신한다 하여 명하여 소릉 수상관(昭陵守喪官)으로 삼았고, 경태(景泰)405) 갑술년406) 에 가덕 대부(嘉德大夫) 함양군에 올랐다. 그때에 대군(大君)407) 이 병에 걸렸으므로 세조가 온천(溫泉)에 목욕하도록 하고 포에게 명하여 따라가게 하였는데, 지나는 고을의 공돈(供頓)이 법에 지나친 것을 일체 금하였으며, 대군에게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포가 곧 말리니, 대군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잘못이 적은 것은 함양의 힘을 입은 것이다.’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졸하였는데, 나이가 59세이다. 시호(諡號)를 이안(夷安)이라 하였으니, 마음을 안정하여 고요한 것을 좋아라는 것을 이(夷)라 하고, 화평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 것을 안(安)이라 하였다. 아들 이진(李鎭)은 부원군(富原君)이고, 이현(李鉉)은 호산군(湖山君)인데, 좌리 공신(佐理功臣)408) 에 참여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4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14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인물(人物)
- [註 399]선덕(宣德) : 명나라 선종(宣宗)의 연호.
- [註 400]
신해년 : 1431 세종 13년.- [註 401]
임자년 : 1432년 세종 14년.- [註 402]
정통(正統) : 명나라 영종(英宗)의 연호.- [註 403]
무오년 : 1438 세종 20년.- [註 404]
신유년 : 1441 세종 23년.- [註 405]
경태(景泰) : 명나라 경종(景宗)의 연호.- [註 406]
갑술년 : 1454년 단종 2년.- [註 407]
대군(大君) : 양녕 대군을 가리킴.- [註 408]
좌리 공신(佐理功臣) : 조선조 9대 성종 2년(1471)에 임금을 잘 보좌하고 정치를 잘 하였다는 공으로 신숙주·한명회 등 75명에게 내린 훈호(勳號)를 말함.○咸陽君 𧦞卒, 輟朝、弔祭、禮葬如例。 𧦞, 讓寧大君 禔之子。 宣德辛亥, 初授通政元尹, 壬子陞嘉靖咸陽君, 正統戊午, 陞崇憲, 改爲尹。 辛酉, 世宗以𧦞謹愼, 命爲昭陵守喪官, 景泰甲戌, 陞嘉德咸陽君。 時大君嬰疾, 世祖賜(俗),〔浴〕 溫泉, 命𧦞從行, 所過州郡供頓有踰法者, 𧦞一禁之, 大君有過擧, 𧦞輒諫止之, 大君喜曰: "我之少過, 咸陽之力也。" 至是卒, 年五十九。 諡夷安, 安心好靜夷, 好和不爭安。 子鎭 富原君, 鉉 湖山君, 參佐理功臣。
- 【태백산사고본】 6책 4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14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인물(人物)
- [註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