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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실록 6권, 예종 1년 6월 29일 신사 3번째기사 1469년 명 성화(成化) 5년

이조에서 관제의 개편을 아뢰다

이조에서 아뢰기를,

"한성부 윤(漢城府尹)은 판윤(判尹)으로 개칭(改稱)하고, 의금부(義禁府)·한성부(漢城府)의 녹사(錄事)는 각기 3인을 두고, 사헌부(司憲府)에는 녹사 1인을 더 두고, 전연사 제조(典涓司提調) 1원(員)은 사축서(司畜署)로 옮기며, 공신 정1품은 부원군(府院君)이라 칭하고, 군자감(軍資監)의 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은 각각 1원을 더하고, 풍저창(豐儲倉) 주부(主簿)는 1원을 더하며, 개성부(開城府)토관(土官)747) 을 파하고 녹사 10인·서리(書吏) 23인을 두고, 전의감 훈도(典醫監訓導) 2원 안에서 1원은 혜민서(惠民署)로 옮겨서 차임(差任)하고, 천문학 습독관(天文學習讀官)은 거관(去官)한 후에 녹사의 예에 의하여 수령(守令)에 취재(取才)하여 서용(敍用)하게 하소서. 지금 방리 장수(坊里將帥)를 혁파하였으나 5부(五部)의 관원으로써 군무(軍務)를 겸임하게 하여 일이 번거로와서 다스리기 어려우니, 각기 봉사(奉事) 1원을 더하게 하소서. 길주진(吉州鎭)은 이미 혁파하였으니, 청컨대 소속한 이성(利城)·단천(端川)함흥진(咸興鎭)에 옮겨서 소속시키고, 새로 세운 길성(吉城)·명천(明川)경성진(鏡城鎭)에 속하게 하여 북도(北道)로 삼고서, 경성은 대도호부(大都護府)라고 칭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8책 398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747]
    토관(土官) : 고려 조선조 때 평안도·함길도의 변방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부(府)·목(牧)·도호부에 따로 설치하였던 지방 관아의 벼슬.

○吏曹啓: "漢城府尹改稱判尹, 義禁府、漢城府錄事, 各置三人, 司憲府加設錄事一人, 典涓司提調一員, 移司畜署, 功臣正一品, 稱府院君, 軍資監判官、主簿、直長, 各加一員, 豐儲倉主簿加一員, 開城府罷土官, 置錄事十人、書吏二十三人, 典醫監訓導二員內, 一員移差惠民署, 天文學習讀官, 去官後依錄事例, 守令取才敍用。 今革坊里將帥, 而以五部官員兼任軍務, 事煩難治, 每部各加奉事一員。 吉州鎭已革, 請以所屬利城端川, 移屬咸興鎭, 新設吉城明川, 屬鏡城鎭爲北道, 而鏡城稱大都護府。" 從之。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8책 398면
  •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