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실록 3권, 예종 1년 2월 24일 기유 2번째기사
1469년 명 성화(成化) 5년
대신들을 불러 영릉의 잡상을 신릉으로 옮길 것에 대한 편부를 의논하게 하다
봉원군(蓬原君) 정창손(鄭昌孫)과 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상당군(上黨君) 한명회(韓明澮)·인산군(仁山君) 홍윤성(洪允成)·창녕군(昌寧君) 조석문(曹錫文)·남양군(南陽君) 홍달손(洪達孫)·좌찬성(左贊成) 김국광(金國光)·우찬성(右贊成) 한계미(韓繼美) 등을 명소(命召)하여 도승지 권감(權瑊)과 함께 영릉(英陵)의 잡상(雜象)을 신릉(新陵)으로 옮길 것에 대한 편부(便否)를 의논하였다. 정창손 등이 아뢰기를,
"수운(輸運)하는 데 폐단이 있으니, 마땅히 구릉(舊陵)의 병처(屛處)151) 에다 묻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8책 332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註 151]병처(屛處) :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으슥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