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의 자질과 군대의 훈련 방법 등에 관한 유자광의 상서
유자광(柳子光)이 정평(定平)에 있다가 장차 평안도(平安道)로 나가려고 상서(上書)하기를,
"신(臣)이 유규(柳規)의 얼자(孼子)로서 만번 죽을 것을 무릅쓰고 지난 6월 24일에 반적(反賊) 이시애(李施愛)의 일을 상서(上書)하였더니, 전하께서 죄를 주시지 아니하시고 특별히 탁용(擢用)을 더하여 하루 아침에 4품(品)에 이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 전하의 비상한 은혜는 전사(前史)에 구하여 보더라도 이러한 일은 있지 아니합니다. 이리하여 이달 초4일에 적과 거산현(居山峴)에서 싸웠는데,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이 신에게 50여 명의 군사를 주어서 선봉(先鋒)으로 삼아 적(敵)을 파(破)하게 하였습니다. 장차 신이 친히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조금이라도 본래의 뜻을 펴려고 하였는데, 마침 그때 날이 이미 저물어 능히 뜻을 다하여 끝까지 쫓지 못하고, 개연(慨然)히 기(旗)를 세우고 돌을 던지면서 스스로 맹세하기를, ‘사람이 천지(天地) 간에 나서 남아(男兒)로 태어나고, 또 미천한 몸으로 다행히 전하의 지극한 지우(知遇)를 입었으니, 만약에 몸이 변방(邊方)에서 죽어서 말 가죽으로 시체를 싸서 고향(故鄕)에 돌아가서 묻히지 않는다면 장부(丈夫)가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엎드려 듣건대, 겸사복(兼司僕) 박의생(朴義生)이 가지고 온 유서(諭書)에 신의 이름을 열록(列錄)하고 강순(康純)을 따라 평안도로 가서 부방(赴防)하라고 명하셨다니, 신이 칼에 손을 얹고 적을 크게 호령하려는 마음을 이길 수가 없으며, 국가를 위하여 죽은 다음에야 그치기를 원합니다. 신이 지금 함길도(咸吉道)에 있으면서 백성들의 정위(情僞)를 자세히 살피고 반복하여 적인(賊人)의 반란한 상황을 구하였는데, 지금 신이 평안도로 바로 향하므로, 감히 종이 한 장으로써 상소(上疏)하여 멀리서 성총(聖聰)을 더럽히니, 엎드려 바라건대, 유납(留納)하여 주소서. 신이 그윽이 의심하건대, 이시애(李施愛)가 일개 초적(草賊)으로서 비록 능히 길주(吉州)의 수령 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고 할지라도, 기타 수십 고을의 백성들이 다투어 장리(長吏)를 죽이고서도, 오히려 이시애를 따라서 반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이 보건대, 함길도 한 도(道)는 산천이 험하여 막히고 도리(道里)가 멀어서 조정(朝廷)의 풍화(風化)282) 가 또한 혹 미치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 민속(民俗)도 또 매우 어리석고 미혹하고, 본도(本道)의 경계가 야인(野人)과 연접하여 있는데, 현부(賢否)를 가리지 아니하고 모두 무사(武士)로써 수령(守令)을 삼으니, 백성들이 하루 아침에 이시애를 따라서 적도(賊徒)가 되었던 것도 심히 괴이(怪異)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국가에서 사람을 등용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道理)가 지극하지 못한 것입니다. 근년에 수령(守令)이 모두 무사(武士)로서 비록 말을 달리고 칼을 써서 적을 죽이고 오랑캐를 죽이는 일을 일삼는 데는 능하여도, 어찌 대저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치고, 백성들에게 어짐과 믿음을 닦게 하고, 백성들을 자식과 같이 사랑하여 효제(孝悌)로써 윗사람을 가까이 하고 윗사람을 위하여 죽는 도리를 가르칠 줄 알겠습니까? 한 번 뜻에 불쾌한 일이 있으면 문득 형륙(刑戮)을 더하여 그들을 보기를 흙이나 돌같이 하니, 백성들이 수령(守令)을 보는 것도 또한 원수와 같이 합니다. 이리하여 일개 적이 호령(號令)을 도둑질하므로, 수십 고을의 백성들이 메아리처럼 응하여 평일(平日)의 원망을 펴려고 하니, 어찌 정말 한결같이 적에게 잘못 유혹당하여 국가와 대적하는 자들이겠습니까? 이것은 적이 백성들의 원망에 따라서 도적의 계책을 행하여 조석(朝夕) 간에 구차스레 활동하는 까닭입니다. 원컨대 지금부터 시작하여 수령(守令)을 제수(除授)할 때는 만약 주부(州府)이면 궁검(弓劍)을 무어(撫御)하는 자를 택하여 목사(牧使)로 삼고, 문과 급제(文科及第) 출신을 판관(判官)으로 삼으며, 만약 군현(郡縣)의 일원(一員)이면, 모름지기 자질이 문무(文武)를 겸비한 자를 얻어서 제수하되, 판관(判官)이 되는 자는 예의(禮義)와 효제(孝悌)의 도리를 가르치고, 목사(牧使)가 되는 자는 궁검(弓劍)과 전투(戰鬪)의 기술을 가르치고, 관리가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백성들이 관리를 부모처럼 본다면, 변경(邊警)을 방어하는 계책(計策)을 얻을 것입니다. 성조(盛朝)에서 군사를 훈련하여 군사를 기른 것이 지금까지 12년이고, 기계(器械)가 정련(精鍊)하고 사졸(士卒)이 용감합니다. 신이 거산(居山)의 싸움에서 그 장대한 기운이 스스로 배(倍)나 되고 충의(忠義)가 분연(奮然)한 것을 보았는데, 비록 옛날에 훌륭한 장수와 정련한 병졸도 이보다 더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총통군(銃筒軍)은 한때 시정(市井)의 무뢰(無賴)한 무리를 몰아오거나, 혹은 스스로 응모(應募)하여 종군하거나, 혹은 정병(正兵) 중에서도 뽑아 내어서 쓰니, 시석(矢石)이 종횡(縱橫)으로 날으는 때를 당하여 수족(手足)이 거꾸로 놓이고, 장약(藏藥)하여 화살을 쏘는 것도 어찌할 줄 모르므로, 혹은 높이 쏘기도 하고 혹은 가로질러 쏘기도 하여, 한 개의 화살도 바로 적진(賊陣)에 맞히는 일이 없습니다. 비록 한꺼번에 1백 개의 시석(矢石)을 일제히 발사한다고 하더라도 무슨 도움이 있겠습니까? 원컨대 총통(銃筒)의 군졸을 뽑아서 두고, 보통때에 항상 쏘는 것을 익혀서 위급할 때 사용할 것에 대비하소서. 대저 진(陣)을 움직이고 진(陣)을 함몰(陷沒)시키는 데 총통(銃筒)과 같은 것이 있지 아니합니다. 엎드려 유의(留意)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43권 51장 A면【국편영인본】 8책 117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인물(人物)
- [註 282]풍화(風化) : 풍속 교화(敎化).
○柳子光在定平, 將赴平安道上書曰:
臣以柳規孼子, 冒昧萬死, 去六月二十四日, 上反賊李施愛事, 殿下不以爲罪, 特加擢用, 一朝得至四品。 其遇殿下非常之恩, 求之前史, 未之有也。 是以月初四日, 與賊戰于居山峴, 龜城君 浚授臣五十餘兵, 爲先鋒破敵。 將臣親冒矢石, 差伸素志, 適時日已暮, 不能恣意窮追, 慨然立旗, 投石自誓曰: "人生天地間, 得列男兒, 又以微賤, 得幸遇殿下知遇之至, 若不身死邊野, 以馬革裹屍, 還葬故鄕, 則非夫也。" 今伏聞, 兼司僕朴義生齎來諭書, 列錄臣名, 隨康純往平安道赴防之命, 臣不勝撫劍長號, 願爲國家, 死而後已。 臣今在咸吉道, 備嘗民之情僞反覆, 求賊人反狀, 今臣直向平安道, 敢以一紙疏, 遙瀆聖聽, 伏惟留納。 臣竊惑, 李施愛以一介草賊, 雖能殺一吉州守令, 其他數十州百姓, 爭殺長吏, 猶恐不及從施愛爲亂者何也? 臣見咸吉一道, 山川險阻, 道里遙遠, 朝廷風化, 亦或有所不及。 其民俗又甚愚惑, 以爲本道境連野人, 不擇賢否, 皆以武士爲守令, 百姓之一朝從施愛爲賊, 亦非甚怪也。 此則國家用人待民之道, 有所未至耳。 近年守令, 竝皆武士, 雖能走馬試劍, 殺敵斬胡以爲事, 豈知夫道民禮義, 磨民仁信, 愛民如子, 敎之孝悌, 親上死長之道乎? 一有不快於意, 輒加刑戮, 視之如土石, 百姓之視守令, 亦如仇讎矣。 是以一賊竊號, 數十州百姓, 響應以伸平日之怨, 豈眞有一爲賊所誤, 而與國家敵者乎? 此賊之所以因民之怨, 行盜賊之計, 而苟活朝夕者也。 願自今以始, 凡除授守令時, 若州府則擇其撫御弓劍者爲牧使, 以文科及弟出身者爲判官。 若郡縣一員, 須得資兼文武者除之, 爲判官者, 敎以禮義孝悌之道, 爲牧使者, 敎以弓劍戰鬪之術。 吏愛民如子, 民視吏如父, 而備禦邊警之策得矣。 盛朝鍊兵養士, 十二年于玆, 器械精鍊, 士卒勇敢。 臣於居山之戰, 見其壯氣自倍, 忠義奮然, 雖古善將精卒, 無以加此。 但銃筒軍, 驅一時市井無賴之徒, 或自募從之, 又或於正兵中抄出用之, 當矢石縱橫之際, 手足倒置, 藏藥放箭, 罔知所措, 或高或橫, 無一箭直衝賊陣。 雖一時百矢石齊發, 有何益哉? 願令選置銃筒卒, 尋常習放, 以備緩急之用。 大抵動陣陷陣, 未有如銃筒者也。 伏惟留意。
- 【태백산사고본】 16책 43권 51장 A면【국편영인본】 8책 117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