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이 퇴위를 권유하다
양산군(楊山君) 양정(楊汀)이 평안도(平安道)로부터 와서 임금을 알현하니,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양정을 인견하고 세자(世子)와 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상당군(上黨君) 한명회(韓明澮)·병조 판서 김국광(金國光)·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도총관(都摠管) 심회(沈澮), 위장(衛將) 오자경(吳子慶)·허형손(許亨孫)·신주(辛鑄), 중추부 동지사(中樞府同知事) 서거정(徐居正)을 불러서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임금께서 양정이 오랫동안 변경(邊境)에 있었다고 하여 술자리를 베풀어서 그를 위로하였다. 이어 도승지(都承旨) 신면(申㴐)을 불러서 전교(傳敎)하기를,
"양정(楊汀)이 오랫동안 외방에서 노고(勞苦)했는데도, 지금 안색(顔色)을 보니 매우 살이 찌었으므로 내가 매우 이를 기뻐한다. 초10일에 훈구(勳舊)277) 등과 더불어 한 잔의 술을 베풀어 양정을 위로하려고 하니, 그것을 미리 준비하라."
하였다. 술이 반쯤 취하니, 종부시 첨정(宗簿寺僉正) 최호원(崔灝元)과 관상감 첨정(觀象監僉正) 안효례(安孝禮)를 불러서 혼원 가령(昏元假令)을 논란하게 하니, 최호원 등이 서로 버티면서 말하지 않으므로, 임금이 승(勝)한가 안한가를 물었으나 또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임금이 노하여 윤필상(尹弼商)으로 하여금 취초(取招)하게 하여 장차 죄에 처하려고 전교(傳敎)하기를,
"고금 천하에 어찌 임금이 말하는데 신하가 대답하지 않는 이가 있겠는가?"
하고, 되풀이하면서 힐책(詰責)하고 마침내 하옥(下獄)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양정(楊汀)이 앞에 나아와 끓어앉아서 아뢰기를,
"성상께서 어찌 과도하게 근로(勤勞)하기를 이와 같이 하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군주(君主)는 만기(萬機)를 모두 다스리고 있으니, 어찌 근심하고 부지런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양정이 대답하기를,
"전하(殿下)께서 임어(臨御)하신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오로지 한가하게 안일(安逸)하심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이 말하는 바는 곧 사시(四時)의 순서(順序)에 성공(成功)한 자는 물러 간다는 것인가?"
하니, 양정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평소부터 왕위(王位)에서 물러나 스스로 편안하려고 했으나 감히 하지 못하였다."
하니, 양정이 말하기를,
"이것이 신(臣)의 마음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이 서방(西方)에 오랫동안 있었는데, 서방의 인심(人心)도 또한 이와 같던가?"
하니, 양정이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그 누구들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죽고, 신숙주와 한명회도 죽고, 경(卿)도 또한 죽어서 임금과 신하가 모두 죽는다면 국가의 일은 누가 다스리겠는가?"
하니, 양정이 대답하기를,
"차차(次次)로 있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어찌 임금의 자리를 탐내는 사람인가?"
하고, 즉시 승지(承旨) 등에게 명하여 대보(大寶)278) 를 가지고 오게 하여 즉시 세자(世子)에게 왕위(王位)를 전하려고 하니, 승지(承旨) 등이 부복(俯伏)하여 일어나지 않았다. 신숙주·한명회 등이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큰 소리로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어찌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옛날에 성인(聖人)은 천하를 관가(官家)로 여겨서 집안에 현명(賢明)한 아들이 없으면 도부(陶夫)279) 를 구하여 천하를 물려 주었는데, 하물며 지금 세자(世子)의 재주가 능히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이겠는가? 내가 이미 덕이 적어서 백성의 마음이 떠나버리었다. 양정은 정직한 신하인 까닭으로 말하는 바가 이와 같은데 내가 어찌 감히 임금의 자리에 오래 있겠는가?"
하면서 신면(申㴐)을 재촉하여 나가서 대보(大寶)를 가지고 오게 하니, 신면이 마지 못하여 나가서 상서원(尙瑞院)에 이르러 너무 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서 옥새(玉璽)를 받들고 앉아 있으므로, 또 윤필상(尹弼商)에게 명하여 재촉하니, 윤필상이 나가서 신면(申㴐)과 더불어 서로 이르기를,
"신(臣) 등이 비록 죽더라도 어찌 감히 옥새를 받들어서 바치겠는가? 차라리 임금의 명령을 어긴 죄를 받겠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승지(承旨) 등은 어찌 옥새를 가지고 오지 않는가? 옛날에 우리 태종(太宗)께서 왕위(王位)를 전하려고 하니 그때의 여러 신하들이 즉시 옥새를 가져 오지 않았는데, 오늘날에도 어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는가? 만약 큰 일이 이미 정해졌다면 어찌 대보(大寶)를 전하고 전하지 않는 데에 관계되겠는가? 그것을 속히 가지고 오라."
하고, 또 홍도상(洪道常)·정난종(鄭蘭宗)·이수남(李壽男) 등에게 명하여 이를 재촉했으나, 홍도상 등도 또한 상서원(尙瑞院)에 와서 죽어도 명령에 응하지 않기로 기약하였다. 또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물거윤(勿巨尹) 이철(李徹)과 의빈(儀賓) 정현조(鄭顯祖)·사산군(蛇山君) 이호(李灝) 등에게 명하여 옥새를 가져 오게 했으나 부(溥) 등도 또한 나가서 머뭇거리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때 양정(楊汀)이 아직도 어탑(御榻) 아래에 있다가 부르짖기를,
"임금의 명령이 이와 같은데, 승지(承旨) 등은 어째서 대보(大寶)를 가져오지 않는가?"
하면서 이를 재촉한 것이 두세 번이나 되었다. 임금이 또 세자(世子)에게 명하여 가서 가져오게 하니, 세자가 마지 못해서 보루문(報漏門) 밖으로 나갔다. 승지 등이 끓어앉아 아뢰기를,
"대보(大寶)는 신(臣) 등이 맡아서 지키는 바이니, 신 등이 마땅히 친히 받들어 바치겠습니다."
하였다. 세자가 도로 들어왔으나 복명(復命)하기가 어려워서 겉에서 오래 머물고 있었다. 신숙주·한명회 등이 전상(殿上)에서 슬피 통곡하면서 되풀이하여 진청(陳請)하고 머리를 조아리기를 마지 않았다. 이때 밤이 이미 삼경이 되니, 임금의 뜻이 조금 풀려서 신숙주에게 명하여 술잔을 올리게 하고는 마침내 내전(內殿)으로 돌아갔다. 신숙주가 물러와서 신면(申㴐)에게 이르기를,
"이미 임금의 뜻을 자세히 알았으니, 임금의 노여움을 더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였다. 신면이 옥새를 받들고 합문(閤門) 밖으로 나오니, 임금이 명하여 대보(大寶)를 강녕전(康寧殿)에 두게 하고, 신면을 불러 술잔을 올리게 하고서 말하기를,
"그대는 신숙주의 아들이니, 진실로 인물(人物)이 무리가 각기 같지 않도다."
하였다. 여러 신하들도 또한 모두 헤어져 나갔다. 신숙주·한명회·한계희 등은 사정전(思政殿) 문 밖에 남아 있으면서 아뢰기를,
"양정(楊汀)의 말은 정상(情狀)이 없지 않으니, 청컨대 법사(法司)에 내려서 추국(推鞫)하여 중한 형벌을 처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신숙주 등을 불러 다시 술자리를 베풀고는 전교(傳敎)하기를,
"양정이 어찌 정상이 있겠는가? 이것도 또한 바른 말을 한 것뿐이다."
하였다. 신숙주 등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아뢰기를,
"양정의 말은 도리에 어긋남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하면서 청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나, 임금은 양정이 공신(功臣)이라 하여 차마 가두어 국문(鞫問)하지는 않고 논의하다가 시간이 넘어서야 파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39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8책 2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註 277]
○丁未/楊山君 楊汀, 自平安道來上謁。 上御思政殿, 引見汀。 召世子及高靈君 申叔舟、上黨君 韓明澮、兵曹判書金國光、吏曹判書韓繼禧、都摠管沈澮、衛將吳子慶ㆍ許亨孫ㆍ辛鑄、中樞府同知事徐居正入侍。 上以汀久在邊圉, 設酌以慰之。 仍召都承旨申㴐, 傳曰: "楊汀久勞于外, 今觀色甚豐腴, 予甚喜之。 欲於初十日, 與勳舊等, 設一酌以慰汀, 其令預辦。" 酒半, 召宗簿寺僉正崔灝元、觀象監僉正安孝禮, 令論難昏元假令。 灝元等相持不言。 上問勝否, 又不卽對。 上怒, 令尹弼商取招, 將抵罪, 傳曰: "古今天下, 安有君言而臣不應者乎?" 反覆詰責, 遂命下獄。 於是, 楊汀就前跪曰: "上何苦勤勞若是耶?" 上曰: "人主摠理萬機, 安得不憂勤哉?" 汀對曰: "殿下臨御已久, 便當優游安逸。" 上曰: "卿所言則乃四時之序, 成功者去歟?" 汀對曰: "唯。" 上曰: "予素欲退位自安而未果。" 汀曰: "此臣之心也。" 上曰: "卿久在西方, 西方人心, 亦如是乎?" 汀對曰: "人誰不云爾?" 上曰: "予死, 叔舟、明澮死, 卿亦死, 君臣皆死, 則國家之事, 伊誰爲之乎?" 汀對曰: "次次有之。" 上曰: "吾豈貪天位者耶?" 卽命承旨等, 取大寶來, 卽欲傳位於世子。 承旨等俯伏不起。 叔舟、明澮等涕泣大聲曰: "是何言也? 乃宗廟社稷何?" 上曰: "昔聖人官天下, 家無賢胤, 則求之陶夫, 以與天下。 況今儲副之才, 可能治國乎? 予旣德寡, 人心離矣。 楊汀直臣, 故所言如是。 予何敢久在天位乎?" 促㴐出取大寶來。 㴐不獲已出至尙瑞院, 蒼黃失措, 奉璽而坐。 又命尹弼商往促之, 弼商出, 與㴐相謂曰: "臣等雖死, 安敢奉璽以進? 寧受違命之罪。" 上曰: "承旨等何不取來乎? 昔我太宗欲傳位, 其時諸臣, 不卽取璽以進。 今日豈宜如是? 若大事已定, 豈關於傳寶與否? 其速取來。" 又命洪道常、鄭蘭宗、李壽男等促之。 道常等亦來尙瑞院, 期以死不應命。 又命(永)永順君 溥、龜城君 浚、勿巨尹 徹、儀賓鄭顯祖、蛇山君 灝等取之。 溥等亦出彷徨, 罔知所爲。 時, 汀猶在御榻下, 呼曰: "上敎如是, 承旨等何不取寶來?" 促之者再三。 上又命世子往取, 世子不得已出報漏門外。 承旨等跪曰: "大寶, 臣等所典守也。 臣等當親奉以進。" 世子還入, 難於復命, 從旁遲留。 叔舟、明澮等哀號殿上, 反覆 陳請, 叩頭不已。 時, 夜已三鼓, 上意稍解, 命叔舟進酒, 遂還內。 叔舟退謂㴐曰: "已審上意, 不可重上怒也。" 㴐奉璽詣閤門外, 命置寶于康寧殿。 召㴐令進酒曰: "汝叔舟之子, 信乎! 人物類各不同也。" 諸臣亦皆罷黜。 叔舟、明澮、繼禧等留思政殿門外, 啓曰: "楊汀之言, 不無情由。 請下法司推鞫, 置之重典。" 召叔舟等更設酌。 傳曰: "楊汀豈有情耶? 是亦直言耳。" 叔舟等, 叩頭啓曰: "楊汀之言, 不道莫甚。" 請之不已。 上以汀爲功臣, 不忍囚鞫。 商略移時乃罷。
- 【태백산사고본】 14책 39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8책 2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