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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19권, 세조 6년 2월 11일 무오 1번째기사 1460년 명 천순(天順) 4년

양정이 야인 토벌의 뜻을 알리자 그들을 회유할 것을 지시하다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양정(楊汀)지인(知印)087) 신득화(申得和)를 보내어 치계(馳啓)하기를,

"성 밑 부근에 사는 야인(野人)들 가운데 적(賊)의 무리들이 다시 입구(入寇)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제진(諸鎭)에 고변(告變)한 자들이 서로 잇달아 집을 버리고 산(山)에 올라갔는데 지금까지도 오히려 돌아오지 않으니,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이 무리들도 적(賊)에 당부(黨附)한 정상(情狀)이 이미 명백합니다. 지금 다시 조용히 우대(優待)하고 천천히 그 정적(情迹)을 보겠는데, 만약 모반(謀反)한 정상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 죄(罪)를 성토(聲討)하고 잡아 죽이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영의정(領議政) 강맹경(姜孟卿)·좌의정(左議政) 신숙주(申叔舟)·병조 참의(兵曹參議) 구신충(具信忠)·도승지(都承旨) 윤자운(尹子雲)·동부승지(同副承旨) 유자환(柳子煥) 등을 불러서 변방(邊方)을 방비(防備)할 대책(對策)을 의논하고, 신득화에게 유의(襦衣)088) 1령(領)을 내려 주었다. 임금이 친히 양정(楊汀)·홍윤성(洪允成)에게 유시(諭示)하는 글을 지어서 신득화에게 부쳐서 보내었다. 양정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지금 경의 계본(啓本)을 갖추 보았는데, 변(變)에 대응(對應)하는 일은 이미 경에게 맡기었다. 대체로 강(强)한 것으로써 강한 것을 이기는 것은 어렵고 그 종말에는 해(害)가 있는 것이며, 약(弱)한 것으로써 강한 것을 제어(制御)하는 것은 쉽고 그 종말에는 해가 없는 것이다. 지금 야인(野人)들이 비록 패당을 이루었다고 하나 처음부터 본심(本心)이 아니었으며, 가볍게 서두르는 사람들이니, 오래지 않아서 패당이 흩어질 것이다. 패당이 흩어지면 어찌 다른 곳으로 가겠느냐? 오랜 세월을 끌면서 이들에게 이권(利權)을 주는 것이 패당을 흩어지게 하는 술책(術策)이니, 모름지기 조용하고 온화하고 관대하고 넓은 태도로써 이들을 대접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적개(敵愾)의 뜻으로 인하여 일거에 모련위(毛憐衛)·건주위(建州衛) 등을 멸망시킨다면 그 중에 어찌 도망하여 달아나는 자가 없겠는가? 그렇게 되면 적(賊)의 패당은 더욱 굳어질 터인데, 아비거(阿比車) 1인뿐만 아니라 바로 심처(深處)의 제종 달자(諸種㺚子)들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멀리서 헤아리는 것이 어찌 경이 친히 일을 당하는 것과 같겠는가? 만약 부득이한 형세가 있다면 그만이지만, 만약 부득이한 형세가 없다면 욕(辱)됨을 참고 신중을 지키라. 위엄을 지니고 용기를 숨기면 공(功)도 없고 허물도 없고 모든 군사들이 온전할 것이니, 싸우지 아니하고 남을 굴복시킨 군사야말로 어찌 선(善)한 자중의 선(善)한 자가 아니겠는가? 그 도내에 장차 번상(番上)할 군사들도 이미 유시(諭示)를 내려서 보내지 말게 하였다. 동속로 첩목아(童速魯帖木兒)의 종인(從人) 타리합(打利哈) 등을 지금 만약 올려 보낸다면 동속로 첩목아가 반드시 더욱 의심하고 두려워할 것이니, 우선 다른 예에 의하여 내투(來投)한 뜻을 후하게 상(賞)을 주고 소재(所在)한 곳에서 보호(保護) 연휼(憐恤)하여 평안히 살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또 글에 이르기를,

"동북면(東北面) 지방의 일은 경(卿)의 계본(啓本)을 보았고, 또 보낸 지인(知印)에게 친히 물어 보았으므로, 경의 일을 처리한 거조(擧措)가 모두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서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경이 전일에 보낸 지인(知印)이 마침 행행(行幸)하는 길에 왔기에, 내가 말 옆으로 불러서 오랫동안 그와 이야기하였으며, 지금 보낸 지인(知印)도 또한 인견(引見)하여 친히 이야기하였는데, 이 두 지인(知印)들은 모두 영오(穎悟)한 사람들이었으니, 경에게 유시(諭示)한 말을 모조리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홍윤성(洪允成)에게 유시(諭示)하기를,

"본도(本道)의 지인(知印)이 와서, 경의 말[馬]이 피곤하여 쉽게 길을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나머지 일은 경이 아는 바이겠고, 내가 내려 준 방략(方略)도 없으니, 경은 가서 양정을 만나 서울에서 〈방략을〉 받은 것대로 시행하라. 도로는 날로 멀어지고 그리는 생각은 날로 깊으니, 마땅히 지극한 정(情)을 다하는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19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7책 369면
  • 【분류】
    외교-야(野) / 외교-원(元) / 군사-군정(軍政) / 왕실-사급(賜給)

  • [註 087]
    지인(知印) : 관아의 관장(官長) 앞에 딸리어 잔심부름하던 이속.
  • [註 088]
    유의(襦衣) : 동옷.

○戊午/咸吉道都節制使楊汀遣知印申得和馳啓: "城底近居野人等, 以賊輩更欲入寇告變諸鎭者相繼, 棄家登山, 今猶未還。 臣竊謂此輩黨賊情狀已明。 今更從容優待, 徐觀情迹, 若其反狀無疑, 聲罪勦殺。" 召領議政姜孟卿、左議政申叔舟、兵曹參議具信忠、都承旨尹子雲、同副承旨柳子煥等議備邊之策, 賜得和襦衣一領。 親製諭楊汀洪允成書, 付得和以送。 諭曰: "今具見卿啓本, 應變之事, 旣委之卿。 大抵以强勝强難, 其終有害, 以弱制强易, 其終無害。 今野人雖成黨, 而初非本心, 輕速之人, 不久黨解矣。 黨解則焉往他鄕? 持久日月, 啗之以利, 解黨之術也, 須以靜和寬弘接之耳。 若因敵愾之志, 一擧滅毛憐建州等衛, 其中豈無逃逸者乎? 然則賊黨益固, 不啻阿比車一人矣, 是與深處諸種㺚子爲讎也。 然予之遙度, 豈如卿親當乎? 若有不得已之勢則已, 如無不得已之勢, 則忍辱守重。 保威韜勇, 無功無過, 全軍全旅, 不戰而屈人之兵, 豈非善之善者乎? 其道內將番上軍士, 已下諭勿送。 速魯帖木兒從人打利哈等今若上送, 則速魯帖木兒必益疑懼, 姑可依他例厚賞來投之意, 於所在護恤安接。" 又書曰:

東北之事, 觀卿啓本, 又親問所遣知印, 知卿處事行止皆善, 予無憂矣。 卿前日所遣知印適來行幸之路, 予引之馬側, 久與之語, 今所遣知印, 亦引親語, 此二知印皆穎悟之人, 諭卿竝知。

允成曰: "本道知印來, 得知卿馬困未易進途。 餘事卿所知也, 予無所授方略也。 卿往見楊汀, 如在京所受施行耳。 道路日悠, 思想日深, 宜悉至情。"


  • 【태백산사고본】 7책 19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7책 369면
  • 【분류】
    외교-야(野) / 외교-원(元) / 군사-군정(軍政)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