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1권, 총서 19번째기사
세종이 문종과 세조에게 유교를 내리다
국역
"국가의 안위(安危)가 네 한 몸에 달려 있다."
하며, 또 세조에게는 이르기를,
"국가에 재난(災難)이 많을 때는 너희들이 함께 도와야 한다. 너는 보통 제자(諸子)의 예가 아니고 나라의 안위에 관계된다."
하니, 세조가 이 말에 감격하여 울었다. 이때 세종이 금성 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의 집으로 옮겨서 거처하고 있었는데, 문종과 세조를 불러 유교(遺敎)를 전하고, 인하여 세조에게 명하여 쓰게 하니, 그 유교에 이르기를,
"형제를 대함에 있어서는 사랑을 위주로 하여 반드시 법도를 엄히 하여 가르칠 것이 그 첫째이다.
재계(齋戒)와 제사(祭祀)에 근신을 다할 것을 선유(先儒)가 힘써 말하지 않은 것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임금을 책(責)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幽明)간에 그 감응(感應)이 매우 분명하니, 소홀하게 할 수 없는 것이 그 둘째이다.
후궁(後宮)은 마땅히 살아서 들어와 죽어서 나가야 하며, 남자를 대해 보려면 넓은 대청(大廳)에서 행하여야 할 것이 그 세째이다.
만약 후궁이 큰 죄가 있어서 반드시 선왕(先王)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자는 역시 선왕의 유교(遺敎)에 의거하여 논단할 것이 그 네째이다.
군사를 쓸 때는 모름지기 신중을 기할 것이 그 다섯째이다."
하였다.
세조실록1권, 총서 19번째기사
세종이 문종과 세조에게 유교를 내리다
국역
"국가의 안위(安危)가 네 한 몸에 달려 있다."
하며, 또 세조에게는 이르기를,
"국가에 재난(災難)이 많을 때는 너희들이 함께 도와야 한다. 너는 보통 제자(諸子)의 예가 아니고 나라의 안위에 관계된다."
하니, 세조가 이 말에 감격하여 울었다. 이때 세종이 금성 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의 집으로 옮겨서 거처하고 있었는데, 문종과 세조를 불러 유교(遺敎)를 전하고, 인하여 세조에게 명하여 쓰게 하니, 그 유교에 이르기를,
"형제를 대함에 있어서는 사랑을 위주로 하여 반드시 법도를 엄히 하여 가르칠 것이 그 첫째이다.
재계(齋戒)와 제사(祭祀)에 근신을 다할 것을 선유(先儒)가 힘써 말하지 않은 것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임금을 책(責)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幽明)간에 그 감응(感應)이 매우 분명하니, 소홀하게 할 수 없는 것이 그 둘째이다.
후궁(後宮)은 마땅히 살아서 들어와 죽어서 나가야 하며, 남자를 대해 보려면 넓은 대청(大廳)에서 행하여야 할 것이 그 세째이다.
만약 후궁이 큰 죄가 있어서 반드시 선왕(先王)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자는 역시 선왕의 유교(遺敎)에 의거하여 논단할 것이 그 네째이다.
군사를 쓸 때는 모름지기 신중을 기할 것이 그 다섯째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