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 신숙주가 양녕 대군의 수반이 불가함을 다시 아뢰다
장령(掌令) 신숙주(申叔舟)가 아뢰기를,
"일찍이 양녕 대군(讓寧大君)을 수반시키지 말 것을 청하였는데, 주상께서 분부하시기를, ‘이것은 전례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전일에 전내(殿內)에서 수반(隨班)한 것을 가지고 전례를 삼아 하교하셨으니, 신 등은 어찌 오늘의 일이 또 다른 날의 전례가 되지 않을지 알겠습니까? 청컨대 다시는 수반시키지 말게 하소서. 또 음죽 현감(陰竹縣監) 권준(權蹲)이 그 동서[娣]에게 꿩을 주었는데, 관련자 여러 사람의 말이 서로 다르니, 마땅히 고문하여야 곧 그 진정을 알겠는데, 여기가 고문할 장소가 아니니, 비록 경기(京畿)에 위임하여 핵문하더라도 이웃 고을의 수령의 일이라 반드시 엄하게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음죽(陰竹)이 서울에서 멀지 않으니, 연루자(連累者)를 본부(本府)에 옮겨 가두어 추핵(推覈)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또 아뢰기를,
"어제 종부시(宗簿寺)로 하여금 이하성(李夏成)의 술을 준 일을 핵실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신 등은 생각건대, 연소한 종친이 사체(事體)를 알지 못하고, 법령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유사(攸司)를 시켜 안핵(安劾)하여, 국가의 법령을 알게 한 뒤에 주상께서 처결하는 것이 가할 것입니다. 또 종친은 비록 특사를 받더라도, 이하성까지 어찌 함께 탄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양녕 대군의 일은 이것으로 전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니 들어줄 수 없고, 그 다른 것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신숙주가 다시 아뢰기를,
"양녕 대군이 비록 수반하지 않더라도 산릉(山陵)의 일에 손익(損益)이 없고, 또 전하가 신 등의 청에 따라 그만두게 하시면, 은혜와 정에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양녕 대군의 마음도 또한 어찌 부끄러움이 있겠습니까? 대의(大義)가 심히 명백하고 애매한 일이 아닌데, 전하가 신 등의 청을 따르지 않으시니, 실로 통분(痛憤)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난 신유년432) 에 전내(殿內)에 수반하였는데, 만일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반하였다면 너희들이 어떻게 그만두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지금 이후 수반하게 허락한다면, 너희들이 어떻게 억지로 그만두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전례를 이루는 일이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 하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7장 A면【국편영인본】 6책 242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사법-재판(裁判) / 인사-관리(管理) / 정론(政論)
- [註 432]신유년 : 1441 세종 23년.
○掌令申叔舟啓曰: "曾啓讓寧大君勿令隨班, 上敎以爲, 此非成例之事。 然今以前日殿內隨班之事, 援例而敎之, 臣等安知今日之事, 又不爲他日之例乎? 請令勿復隨班。 且陰竹縣監權蹲, 以雉遺娣, 其辭連各人, 言有異同。 須當拷訊, 乃得其情, 然此非栲訊之所, 雖委京畿以劾之, 然隣官守令之事, 必不窮治。 陰竹距京不遠, 其連累者, 移繫本府, 推覈何如?" 又啓曰: "昨日請令宗簿寺, 劾李夏成贈酒之事, 未蒙兪允。 臣等以爲, 年少宗親, 未諳事體, 不畏法令, 須令攸司按劾, 使知國令, 然後上裁可也。 且宗親, 雖當恩宥, 至於夏成, 豈可竝不擧劾乎?" 上曰: "讓寧之事, 固非以此成例, 不可聽也。 其他當依所啓。" 叔舟更啓曰: "讓寧雖不隨班, 於山陵之事, 無有加損, 且殿下, 從臣等之請而止之, 於恩情何妨? 讓寧之心, 亦豈有愧乎? 大義甚明, 非瞹眛之事, 殿下不從臣等之請, 實爲痛憤。" 上曰: "曩在辛酉, 隨班殿內, 設若從此至今隨班, 若等豈能止之哉? 且從今以後, 許令隨班, 若等豈得强止哉? 此非成例之事, 何若是乎?"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7장 A면【국편영인본】 6책 242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사법-재판(裁判) / 인사-관리(管理)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