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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1권, 문종 즉위년 4월 15일 무자 1번째기사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의정부에서 사은사 연경과 판합 김한의 직책을 그냥 두도록 아뢰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사은사(謝恩使) 연경(延慶)이 학문과 견식은 없지마는, 이미 수령(守令)을 지냈으며, 또한 광망(狂妄)하지는 않습니다. 또 사은사(謝恩使)는 주문사(奏聞使)처럼 전대(專對)의 어려움은 있지 않으니, 이 사람이 이를 감당할만 합니다. 만일에 뜻밖의 일이 발생하더라도 박이녕(朴以寧)이 따라가니 염려할 것은 없습니다. 김한(金澣)판합(判閤)270) 으로 비록 근시(近侍)의 직책이지만, 대간(臺諫)에 비교할 것은 아닙니다. 또 겸사복(兼司僕)과 사금(司禁) 등도 또한 근시(近侍)의 직책이므로 간혹 말할 만한 사람이 있으니, 김한이 비록 판합(判閤)이 되더라도 진실로 무방할 것입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연경(延慶)곡산 부원군(谷山府院君) 연사종(延嗣宗)의 아들인데, 그가 처음 벼슬할 때에 태종(太宗)께서 묻기를, ‘네가 누구이냐?’ 하니, 대답하기를, ‘곡산군(谷山君)의 현남(賢男)입니다.’ 하였다. 무릇 사람들이 남의 아들을 존칭(尊稱)할 때에 반드시 현남(賢男)이라고 하는 법인데, 연경(延慶)은 배우지 못하여 으레 사람의 아들을 ‘현남(賢男)’이라고 하는 줄로 알았기 때문에 대답을 이같이 하였던 것이다. 봉안국(奉安國)이상(二相)271) 곽추(郭樞)의 사위인데, 곽추척리(戚里)272) 와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태종(太宗)봉안국(奉安國)에게 묻기를, ‘네가 누구이냐?’ 하니, ‘곽 이상(郭二相)273) 의 서방(西房)입니다.’ 하였다. 우리 나라 풍속에 새 사위[新壻]를 존칭해서 ‘서방(西房)’이라고 하는데, 봉안국은 무식해서 서방(西房)이 존칭의 말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대답을 이같이 했으니, 세상 사람이 ‘연현남(延賢男)’, ‘봉서방(奉西房)’이라 일컬었다. 후에 연경(延慶)이 사신(使臣)이 되어 중국에 입조(入朝)하였다가 돌아오자 임금이 인견(引見)하고 위로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무사히 돌아온 것은 오로지 박 영공(朴令公)의 덕택입니다."

하였는데, 박이녕(朴以寧)을 가리킨 것이었다. ‘영공(令公)’은 서로 존칭(尊稱)하는 말인데도 임금 앞에서 이런 말을 하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6책 231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외교-명(明) / 인물(人物)

  • [註 270]
    판합(判閤) :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
  • [註 271]
    이상(二相) : 찬성(贊成).
  • [註 272]
    척리(戚里) : 임금의 내척(內戚)과 외척(外戚).
  • [註 273]
    곽 이상(郭二相) : 곽 찬성(郭贊成).

○戊子/議政府議啓曰: "謝恩使延慶, 雖無學識, 旣經守令, 亦不狂妄。 且謝恩使, 非如奏聞使有專對之難, 此人可以當之矣。 萬一有意外事, 朴以寧隨去, 不足慮也。 若金澣則判閣, 雖近侍之職, 非臺諫之比。 且兼司僕、司禁等, 亦近侍之職也, 間或有可言者, 金澣雖爲判閣, 固無妨也。" 從之。 , 谷山府院君 嗣宗之子。 其始仕也, 太宗問曰: "汝爲誰?" 對曰: "谷山君賢男。" 凡人尊稱人子, 必曰賢男, 不學, 例以人子爲賢男, 故對以如此。 奉安國, 二相郭樞之壻也, 連姻戚里。 太宗安國曰: "汝爲誰?" 對曰: "郭二相西房。" 國俗尊稱新壻謂西房, 安國無知, 不知西房爲尊稱之辭, 故對之如此, 世號延賢男、奉西房。 及奉使入朝而還也, 上引見勞之, 對曰: "臣之無事回還, 專是朴令公之德也。" 指以寧也。 令公, 相尊之辭, 而言於上前, 人皆笑之。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6책 231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외교-명(明)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