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지 / 전라도 / 전주부 / 태인현
◎ 태인현(泰仁縣)
태산현(泰山縣)은 본래 백제의 대시산군(大尸山郡)이었는데, 신라에서 대산군(大山郡)으로 고쳤고, 인의현(仁義縣)은 본래 백제의 빈굴현(賓屈縣)이었는데, 【일명 부성현(賦城縣)이라 한다. 】 신라에서 무성(武城)으로 고쳐서 태산군(太山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가, 고려에서 인의현으로 고쳤다. 모두 고부군의 임내(任內)로 삼아 태산군으로써 감무(監務)를 겸하게 하였고, 현종(顯宗) 10년 기미에 나누어 두 현으로 하였다. 본조 태종(太宗) 9년 기축에 두 현을 합하여 태인(泰仁)으로 고쳤고, 16년 병신에 읍(邑)을 속역(屬驛) 거산(居山)으로 옮겼다. 옛 속향(屬鄕)이 3이니, 나향(羅鄕)·능향(綾鄕)·제견향(堤見鄕)이요, 부곡(部曲)이 2이니, 대곡(大谷)·개문(開門)이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북쪽으로 금구(金溝)에 이르는데, 모두 13리요, 서쪽으로 김제(金堤)에 이르기 21리, 남쪽으로 순창(淳昌)에 이르기 37리이다.
호수가 2백 47호요, 인구가 1천 5백 26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29명이요, 진군이 18명이요, 선군이 2백 47명이다.
태산(泰山)의 토성이 5이니, 박(朴)·시(柴)·허(許)·전(田)·경(景)이요, 인의(仁義)의 성이 5이니, 유(庾)·송(宋)·조(趙)·종(宗)·섭(葉)이요, 내접성(來接姓)이 3이니, 안(安) 【서울에서 왔다. 】 ·허(許) 【태산에서 왔다. 】 ·이(李) 【고부에서 왔다. 】 이다. 【어떤 본(本)에는 이 3성이 제견향(堤見鄕)에 속해 있다. 】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며, 간전(墾田)이 5천 3백 4결이다. 【논이 조금 많다. 】 토의(土宜)는 오곡과 뽕나무·삼·모시·왕골·닥나무이다. 토공(土貢)은 여우가죽·삵괭이가죽·잘·족제비털·칠(漆)·대추·감·석류·지초(芝草)·인삼·죽순·자리·목화·꿀·밀[黃蠟]이요, 약재(藥材)는 녹각교(鹿角膠)·호라비좆뿌리·겨우살이풀뿌리·복신(茯神)이다. 자기소(磁器所)가 1이요, 【현의 동쪽 수약동(水若洞)에 있다. 】 도기소(陶器所)가 1이요, 【현의 남쪽 부곡(釜谷)에 있는데, 모두 하품이다. 】
역(驛)이 1이니, 거산(居山)이었다. 【현의 남쪽에 있다. 】 잠실(蠶室) 【본조 태종(太宗) 16년 병신(丙申)에 비로소 옛 읍(邑)인 태산(泰山)에 두었는데, 딸린 노비가 30명이다. 한량(閑良)으로서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을 가려서 감독하게 한다. 】
- 【태백산사고본】 55책 151권 9장 A면【국편영인본】 5책 658면
◎ 泰仁縣、泰山縣: 本百濟 大尸山郡, 新羅改大山郡。 仁義縣, 本百濟 賓屈縣, 【一云賦城縣。】 新羅改武城, 爲太山郡領縣, 高麗改仁義縣, 皆爲古阜郡任內, 以泰山郡兼監務。 顯宗十年己未, 分爲二縣, 本朝太宗九年己丑, 合兩縣, 改泰仁, 十六年丙申, 徙邑于屬驛居山。 古屬鄕三, 羅鄕、綾鄕、堤見鄕。 部曲二, 大谷、開門。 四境, 東北距金溝皆十三里, 西距金堤二十一里, 南距淳昌三十七里。 戶二百四十七, 口一千五百二十六。 軍丁, 侍衛軍二十九, 鎭軍十八, 船軍二百四十七。 泰山土姓五, 朴、柴、許、田、景。 仁義姓五, 庾、宋、趙、宗、葉。 來接姓三, 安、 【京來。】 許、 【泰山來。】 李。 【古阜來, 一本, 此三姓屬於堤見鄕。】 厥土肥塉半之, 墾田五千三百四結。 【水田差多。】 土宜五穀, 桑、麻、苧、莞、楮。 土貢, 狐狸山獺皮、黃毛、漆、棗、柿、石榴、芝草、人蔘、笋、席、木緜、蜂蜜、黃蠟。 藥材, 鹿角膠、天門冬、麥門冬、茯神。 磁器所一。 【在縣東水若洞。】 陶器所一。 【在縣南釜谷, 皆品下。】 驛一, 居山。 【在縣南。】 蠶室。 【本朝太宗十六年丙申, 始置于古邑泰山, 屬奴婢三十口, 擇閑良可任者監之。】
- 【태백산사고본】 55책 151권 9장 A면【국편영인본】 5책 65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