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지 / 충청도 / 홍주목 / 당진현
◎ 당진현(唐津縣)
본래 백제의 벌수지현(伐首只縣)인데, 신라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혜성군(槥城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고, 고려 현종(顯宗) 9년에 운주(運州) 임내에 붙이었다가, 예종(睿宗) 원년 병술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본조 태종(太宗)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으로 고쳤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면천(沔川)에 이르기 10리, 서쪽으로 해미(海美)에 이르기 8리, 남쪽으로 면천에 이르기 7리, 북쪽으로 박지포(朴只浦)에 이르기 29리이다.
호수가 2백 84호요, 인구가 1천 4백 89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2명이요, 진군(鎭軍)이 8명이요, 선군이 1백 20명이다.
토성(土姓)이 2이니, 장(張)·한(韓)이요, 망성(亡姓)이 3이니, 황보(皇甫)·임(任)·고(高)이다.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며, 간전(墾田)이 2천 6백 32결이요, 【논이 4분의 3에 좀 모자란다. 】 토의(土宜)는 오곡과 조·팥·메밀이다. 토공(土貢)은 지초·종이·여우가죽·수달피(水獺皮)·족제비털·어교(魚膠)이요, 토산(土産)은 낙지·굴이다. 어량(魚梁)이 1이요, 【주로 숭어·홍어·큰 새우가 난다. 】 염소(鹽所)가 35이다.
읍 석성(邑石城) 【둘레가 2백 89보이며, 안에 우물 하나가 있는데, 가물면 마른다. 】 역(驛)이 1이니, 흥세(興世)이다. 옛 목장(牧場) 【현의 서쪽 맹곶이[孟串]에 있다. 둘레가 21리 되는데, 세종 9년에 물과 풀이 좋지 아니하므로, 〈말을〉 대산곶(大山串)에 옮겨 방목하였다. 】 봉화가 1곳이니, 고산(高山)이다. 【현의 북쪽에 있는데, 동쪽으로 면천(沔川) 장택(莊宅)에, 남쪽으로 해미(海美) 안국산(安國山)에 응한다. 】
- 【태백산사고본】 53책 149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5책 634면
◎ 唐津縣: 本百濟 伐首只縣, 新羅改今名爲槥城郡領縣。 高麗 顯宗戊午, 屬運州任內, 睿宗元年丙戌, 始置監務, 本朝太宗十三年癸巳, 例改爲縣監。 四境, 東距沔川十里, 西距海美八里, 南距沔川七里, 北距朴只浦二十九里。 戶二百八十四, 口一千四百八十九。 軍丁, 侍衛軍二, 鎭軍八, 船軍一百二十。 土姓二, 張、韓; 亡姓三, 皇甫、任、高。 厥土肥塉相半, 墾田二千六百三十二結。 【水田四分之三少】 土宜五穀, 粟、小豆、蕎麥。 土貢, 芝草、紙、狐皮、水獺皮、黃毛、魚膠。 土産, 落地、石花。 魚梁一, 【主産水魚、洪魚、大蝦。】 鹽所三十五。 邑石城。 【周回二百八十九步, 內有井一, 旱則渴。】 驛一, 興世。 古牧場 【在縣西孟串, 周回二十一里。 丁未年, 以水草不美, 移放于大山串。】 烽火一處, 高山。 【在縣北, 東準沔川庄宅, 南準海美安國山。】
- 【태백산사고본】 53책 149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5책 6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