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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49권, 지리지 충청도 공주목 회덕현

지리지 / 충청도 / 공주목 / 회덕현

회덕현(懷德縣)

본래 백제우술군(雨述郡)인데, 신라에서 비풍군(比豐郡)으로 고쳤고, 고려에서 회덕현으로 고쳐, 현종(顯宗) 9년에 공주(公州) 임내에 붙이었다가, 명종(明宗) 2년 임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고, 태종(太宗)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계족산(鷄足山) 【현의 사람들이 진산(鎭山)으로 삼는다. 】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청주(淸州)에 이르기 14리, 서쪽으로 공주(公州)에 이르기 7리, 남쪽으로 진산(珍山)에 이르기 22리, 북쪽으로 문의(文義)에 이르기 24리이다.

호수가 3백 호요, 인구가 1천 2백 66명이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이 7명이요, 수호군(守護軍)이 4명이요, 선군(船軍)이 1백 49명이다.

토성(土姓)이 4이니, 황(黃)·임(任)·이(李)·방(房)이요, 망성(亡姓)이 1이니, 곽(郭)이요, 정민역(貞民驛)의 속성(續姓)이 2이니, 배(裵)·김(金)이다.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며, 간전(墾田)이 2천 6백 88결이요, 【논이 5분의 2가 된다. 】 토의(土宜)는 오곡과 모과[木瓜]이다. 토공(土貢)은 느타리·싸리버섯·칠·잡깃[雜羽]·밀[黃蠟]·대추·여우가죽·삵괭이가죽·잘[山獺皮]·지초·종이요, 약재(藥材)는 오배자(五倍子)이요, 토산(土産)은 석철(石鐵)이다. 【현의 북쪽 20리 직동(稷洞)에서 나는데, 하품(下品)이다. 】

계족산 석성(鷄足山石城) 【현의 동쪽 10리에 있는데, 사면이 매우 험하며, 둘레가 3백 34보 2척이 되고, 안에 샘이 하나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아니한다. 향인(鄕人)이 이르기를, "하늘이 가물 때 이 산이 울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한다. 】 역(驛)이 1이니, 정민(貞民)이다. 【세속이 잘못 전민(田民)이라 한다. 】 이원진(利遠津) 【속칭 형각진(荊角津)이라 하며, 나룻배가 있다. 】 봉화가 1곳이니, 계족산(鷄足山)이다. 【동쪽으로 옥천(沃川) 환산(環山)에, 북쪽으로 문의(文義) 소산(所山)에 응한다. 】

월경처(越境處)는 유성(儒城)동촌(東村) 낭산리(郞山里)가 현의 남면(南面)에 들어와 있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149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5책 632면

懷德縣: 本百濟 雨述郡, 新羅改爲比豐郡, 高麗改爲懷德縣顯宗戊午, 屬公州任內。 明宗二年壬辰, 始置監務, 本朝因之。 太宗十三年癸巳, 例改爲縣監。 鷄足山 【縣人以爲鎭】 四境, 東距淸州十四里, 西距公州七里, 南距珍山二十二里, 北距文義二十四里。 戶三百, 口一千二百六十六。 軍丁, 侍衛軍七、守護軍四、船軍一百四十九。 土姓四, ; 亡姓一, 貞民驛續姓二, 。 厥土肥塉相半, 墾田二千六百八十八結。 【水田五分之二】 土宜五穀, 木瓜。 土貢, 眞茸、鳥足茸、漆、雜羽、黃蠟、棗、狐皮、狸皮、山獺皮、芝草、紙。 藥材, 五倍子、土産石鐵。 【産縣北二十里稷洞, 下品。】 鷄足山石城。 【在縣東十里, 四面險阻, 周回三百七十四步二尺。 內有泉一, 冬夏不渴。 鄕人云: "天旱, 此山鳴則必雨。"】 驛一, 貞民 【俗訛田民】 利遠津 【俗號荊角津, 有渡船。】 烽火一處, 雞足山 【東準沃川、環山, 北準文義、所山。】 越境處, 儒城 東村 郞山里, 越入縣南面。


  • 【태백산사고본】 53책 149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5책 6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