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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48권, 지리지 경기 광주목 과천현

지리지 / 경기 / 광주목 / 과천현

과천현(果川縣)

본래 고구려율목군(栗木郡)인데, 신라율진군(栗津郡)으로 고쳤고, 고려에서 과주(果州)로 고치어, 현종(顯宗)무오053)광주(廣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본조(本朝) 태종(太宗)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과천 현감(果川縣監)으로 고치었다. 별호(別號)는 부림(富林)이다. 【순화(淳化) 때에 정한 것이다. 혹은 부안(富安)이라고도 한다. 대개 주(州)·부(府)·군(郡)·현(縣)은 각기 등급이 있다. 국초(國初)에 고려[前朝]의 옛 제도를 의거하여, 지관(知官)으로써 주(州)로 일컬은 것이 있으니, 인주(仁州)·괴주(槐州) 따위요, 감무관(監務官)으로써 주(州)로 일컬은 것이 있으니, 과주(果州)·금주(衿州) 따위이다. 명실(名實)이 서로 혼동되어, 사람들이 식별(識別)하기 어려웠더니, 이에 이르러 지관과 감무관으로써 주(州)로 일컫던 것을 모두 ‘산(山)’과 ‘천(川)’의 두 자(字)로써 대신하였다. 뒤에 대개 예(例)에 의하여 ‘모산(某山)’, ‘모천(某川)’으로 고쳤다고 한 것은 모두 이 해의 일이다. 】

진산(鎭山)은 관악(冠岳)이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쪽으로 광주(廣州)에 이르기 11리, 서쪽으로 금천(衿川)에 이르기 10리, 남쪽으로 광주의 지경 지석(支石)에 이르기 19리, 북쪽으로 한강(漢江)에 이르기 25리이다.

호수는 2백 44호, 인구는 7백 43명이요,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21명, 선군(船軍)이 70명이다.

토성(土姓)이 4이니, 손(孫)·이(李)·전(田)·변(邊)이요, 망성(亡姓)이 3이니, 신(愼)·안(安)·최(崔)이다.

땅이 메마르며, 간전(墾田)이 3천 1백 28결(結)이다. 【논이 3분의 1이 넘는다. 】 토의(土宜)는 오곡(五穀)과 조·팥·메밀·참깨·뽕나무·삼이요, 토공(土貢)은 느타리[眞茸]·지초(芝草)이다. 도기소(陶器所)가 1이다.【현(縣) 북쪽 가좌동(加佐洞)054) 에 있으니, 중품(中品)이다. 】

역(驛)이 1이니, 양재(良才)이다.

노도진(露渡津)055) 【현(縣) 북쪽에 있으니, 도승(渡丞)이 있다. 】 흑석진(黑石津)056) 【현(縣) 북쪽에 있다. 수참(水站)이 있고, 참선(站船) 15척이 있다. 】


  • 【태백산사고본】 52책 148권 8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16면

果川縣: 本高句麗 栗木郡, 新羅改爲栗津郡, 高麗改爲果州顯宗戊午, 屬廣州任內, 後置監務。 本朝太宗十三年癸巳, 例改爲果川縣監, 別號富林 【淳化所定, 一作富安。 凡州府郡縣, 各有等級。 國初, 因前朝之舊, 有以知官而稱州者, 若仁州、槐州是也; 有以監務官而稱州者, 若果州、衿州是也。 名實混淆, 人難識別。 至是, 凡知官監務官之稱州者, 悉以山川二字化之。 後凡言例改爲某山某川者, 皆此年事也。】 鎭山曰冠嶽。 四境, 東距廣州十一里, 西距衿川十里, 南距廣州之境攴石十九里, 北距漢江二十五里。 戶二百四十四, 口七百四十三。 軍丁, 侍衛軍二十一, 船軍七十。 土姓四, ; 亡姓三, 。 厥土塉, 墾田三千一百二十八結。 【水田居三分之一强】 土宜五穀, 粟、小豆、喬麥、胡麻、桑麻。 土貢, 眞茸、芝草。 陶器所一, 【在縣北加佐淵。 中品。】 驛一, 良才露渡津 【在縣北, 有渡丞。】 黑石津 【在縣北, 有水站站船十五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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