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례 / 가례 의식 / 무과 전시의
◎ 무과 전시의(武科殿試儀)
기일(期日) 전 2일에 병조에서 내외관(內外官)에게 선섭(宣攝)하여, 각각 그 직책을 다하게 한다. 기일(期日) 전 1일에 충호위(忠扈衛)에서 장전(帳殿)을 사단(射壇)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악차(幄次)를 장전의 뒤에 설치한다. 액정서(掖庭署)에서 어좌(御座)를 장전의 안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훈련관(訓鍊觀)에서 보사(步射)의 후(候)342) 를 설치하고, 【원후(遠候)는 사단(射壇)에서 떨어지기가 2백 40보(步)이다. 청색포(靑色布)로써 바탕을 하여, 높이와 나비가 1장(丈) 8척(尺)이고, 그 나비를 3등분(等分)하여, 정곡(正鵠)이 그 1등분을 차지하는데, 정곡은 사방이 6척(尺)이다. 흰색을 칠한 가죽으로써 이를 만들어 후(候)의 복판에 붙이고, 돼지[豕] 머리를 그린다. 후(候)의 좌우(左右)로는 서로 떨어지기가 50보(步)로 하여 기(旗)를 세워 표적(標的)을 삼고, 후(候)의 뒤로는 50보(步)로 하며, 좌우(左右)로는 서로 떨어지기가 70보(步)로 하여 기(旗)를 세워 표적(標的)을 삼는다. 〈화살이〉 먼 데 이른 것과 복판에 맞힌 것과 〈후(候)에〉 미친 것을 취한다. 중후(中候)는 사단(射壇)에서 떨어지기가 1백 80보이고, 또한 청색포로써 바탕을 하여, 높이와 나비가 1장 4척이고, 정곡(正鵠)은 사방이 4척 6촌이 넘는다. 근후(近候)는 사단(射壇)에서 떨어지기가 80보이고, 흰색을 칠한 가죽으로써 바탕을 하여, 높이와 나비가 4척 6촌이다. 모두 돼지 머리를 그리는데, 〈화살이〉 복판에 맞힌 것을 취한다. 】 기사(騎射)의 적(的)을 설치하고, 【좌우(左右)로 각각 5개씩인데, 홍색(紅色)과 백색(白色)이 서로 사이하여 있다. 적(的)은 직경(直徑)이 1척(尺) 2촌(寸)이며, 좌우(左右)로 서로 떨어지기가 5보(步)이다. 매 적(的)마다 서로 떨어지기가 각각 35보(步)이다. 왼쪽으로 활을 쥔 경우는 말을 달려서 처음에 왼쪽의 제1 홍색적(紅色的)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橫)으로 달려서 오른쪽의 제2 홍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왼쪽의 제3 홍색 적(的)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오른쪽의 제4 홍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왼쪽의 제5 홍색적을 쏘며, 오른쪽으로 활을 쥔 경우는 말을 달려서 처음에 오른쪽의 제1 백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橫)으로 달려서 왼쪽의 제2 백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오른쪽의 제3 백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왼쪽의 제4 백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오른쪽의 제5 백색적을 쏜다. 그 말을 능히 제어하지 못하여서 왼쪽으로 활을 쥐고서도 오른쪽으로 적을 쏘고, 오른쪽으로 활을 쥐고서도 왼쪽으로 적을 쏘아서 이를 맞힌 것도 또한 취(取)한다. 활을 가득 당기지 못한 것과 말을 빨리 달리지 못한 것과 채찍을 버린 것은 비록 맞혔더라도 취(取)하지 않는다. 】 기창(騎槍)의 표(標)343) 를 세우고, 【추인(芻人) 셋을 나누어 좌우(左右)에 세워서 비스듬히 마주보게 하는데, 그 좌우로 서로 떨어지기가 5보(步)이고, 매 추인마다 서로 떨어지기가 25보(步)이다. 말을 움직인 뒤에 좌우로 창을 휘두르는 자세를 취하는데, 빨리 달려서 왼쪽의 제1 추인에 이르러 부딪치는 자세[觸勢]로 변하여 그 얼굴을 맞히고, 또 말을 횡(橫)으로 달려서 제2 추인에 이르러 부딪치는 자세로 변하여 그 얼굴을 맞히고, 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제3 추인에 이르러 부딪치는 자세로 변하여 그 얼굴을 맞히고는, 즉시 변하여 좌우로 배창(背槍)하는 자세를 취하게 한다. 자세를 잃은 것과 말을 빨리 달리지 못한 것과 채찍을 버린 것은 비록 맞혔더라도 취(取)하지 않는다. 】 격구(擊毬)의 문을 만든다. 【구문(毬文)은 서로 떨어지기가 3보(步)이고, 기(旗)를 세운 곳에서 구문(毬門)까지는 서로 떨어지기가 2백 40보이고, 말을 세운 곳에서 기 아래 구를 둔 곳[置毬處]까지는 서로 떨어지기가 30여 보이다. 거인(擧人)이 오른손으로 장(杖)을 쥐는데, 장(杖)의 끝을 안으로 향하게 하여서 뒤집어 말 목에 싣고, 상반(上半)은 왼쪽으로 나오게 한다. 말을 달려 구를 둔 곳[置毬處]에 나아가서 배지(排之)로써 구(毬)를 움직이고, 도돌방울[持皮]로써 이를 돌리는데, 구(毬)가 만약 오목한 곳에 들어가면, 또한 배지를 쓴다. 무릇 격구할 적에는 반드시 구의 가는 것을 뒤따라 가 멈추기 전에 이를 치는데, 말머리[馬首]도 날래고 구부린 자세를 취한다. 3회에 마치고서, 그제야 말을 달려 〈구를〉 쳐서 행구(行毬)한다. 행구의 처음에는 함부로 치지 아니하고, 장(杖)을 횡직(橫直)하게 쥐고 말 귀[馬耳]와 나란히 되게 한 후에 손을 들어 멋대로 쳐서 구문으로 내보낸다. 말을 돌려서 처음에 섰던 곳으로 되돌아 오는데, 그 말 달리는 것과 장(杖)을 쥐는 자세가 처음과 같다. 】 장사위(將射位)를 동계(東階)·서계(西階)의 앞에 설치하되, 서로 향(向)하여 북쪽을 상(上)으로 하며, 사위(射位)를 계하(階下)에 서쪽 가까이 설치하되, 베[布]로 가로 막고 남향하게 한다.
그날에 훈련관(訓鍊觀)에서 먼저 거인에게 경계하여 사단(射壇) 장소에 집합하게 하고, 병조에서 여러 위(衛)의 군사를 거느리고 법가 노부(法駕鹵簿)를 진열하고, 판사복(判司僕)이 여(輿)와 어마(御馬)·입장마(立仗馬)를 진열하되, 모두 홍례문(弘禮門) 밖에서 나누어 서기를 평상시와 같이 한다.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의 당상관(堂上官)과 대간(臺諫)의 관원이 그 시각에 모두 광화문 밖에 집합하고, 여러 호위하는 관원과 사금(司禁)이 각각 무기와 제복을 갖추고 사정전(思政殿)의 합문(閤門) 밖에 나아가서 사후(伺候)한다. 판사복(判司僕)이 연(輦)을 근정문 밖에 드려서 남향하게 하고, 판통례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외판(外辦)을 아뢰면, 전하가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여(輿)를 타고 나가는데, 산(繖)과 선(扇)으로 시위하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한다. 근정문 밖에 이르러 전하가 여에서 내려 연을 타는데, 시위가 인도하여 따라가기를 평상시 같이 한다. 전하가 사단 장소에 이르러 연에서 내려 자리에 오르는데, 산과 선으로 시위하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한다. 시종(侍從)하는 여러 관원들이 모두 막차(幕次)에 나아가고, 병조와 훈련관(訓鍊觀)의 관원과 거인(擧人)이 들어와서 사단(射壇) 아래에 나아가서, 자리를 달리 하여 겹줄로 북향하여 네 번 절한다. 이를 마치면, 2품 이상의 관원은 서편계(西偏階)를 지나서 사단에 올라가서, 서쪽에 있어 동향하고 북쪽을 상(上)으로 하여 부복하고, 3품 이하의 관원은 사단 아래에 있어 【만약 병조 참의(兵曹參議)와 훈련관 부제조(訓鍊觀副提調)이면, 사단(射壇)의 서남 모퉁이에 올라가서 북향하고 동쪽을 상(上)으로 한다. 】 각각 그 직무에 이바지한다.
거인(擧人)이 모두 나와서 궁시(弓矢)를 가지고 【화살은 3개를 사용한다. 】 두 사람이 짝이 되어 기다린다. 훈련관에서 북소리가 세 번 나면, 거인이 들어와 장사위(將射位)에 나아가서 부복하였다가 차례대로 일어나고, 사위(射位)에 나아가서 북향하여 부복하였다가 일어나서, 남향하여 먼저 원후(遠候)에 쓴다. 쏘기를 마치면, 북향하여 부복하였다가 일어나서 장사위(將射位)로 되돌아간다. 여러 짝이 쏘기를 마치면, 다음에 중후(中候)에 쏘고, 그 다음에 근후(近候)에 쏘기를 모두 위의 의식과 같이 한다. 다음에 기사(騎射)를 하고, 그 다음에 기창(騎槍)을 하고, 그 다음에 격구(擊毬)를 하고, 이를 마치면, 모두 물러간다. 병조에서 등급을 나누어 위에 아뢴다. 거가(車駕)가 궁(宮)으로 돌아가는데, 시위(侍衛)가 인도하고 따라가기를 올 때의 의식과 같이 한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133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5책 347면
◎ 武科殿試儀
前二日, 兵曹宣攝內外, 各供其職。 前一日, 忠扈衛設帳殿於射壇南向; 幄次於帳殿之後, 掖庭署設御座於帳殿內南向; 訓鍊觀張步射之侯; 【遠侯距壇二百四十步, 以靑色布爲質, 崇廣丈八尺三分。 其廣而鵠居一, 鵠方六尺, 白漆皮方制之, 棲於侯中, 畫以豕首。 侯左右相距五十步, 竪旗爲標。 侯後五十步, 左右相距七十步, 竪旗爲標。 取遠至者中者。 及者。 中侯距壇一百八十步, 亦以靑色布爲質, 崇廣丈四尺, 鵠方四尺六寸有奇。 近侯去壇八十步, 以白漆皮爲質, 崇廣四尺六寸, 皆畫以豕首, 取中者。】 設騎射之的; 【左右各五, 紅白相間, 的徑尺二寸, 左右相距五步, 每的相距各三十五步。 左執弓者馳馬, 初射左第一紅的, 次橫馳射右第二紅的, 次橫馳射左第三紅的, 次橫馳射右第四紅的, 次橫馳射左第五紅的。 右執弓者馳馬, 初射右第一白的, 次橫馳射左第二白的, 次橫馳射右第三白的, 次橫馳射左弟第四白的, 次橫馳射右第五白的。 其不能制馬, 左執弓而右射的, 右執弓而左射的中者, 亦取之。 弓不滿者、馬不疾者, 雖中不取。】 立騎槍之標, 【以芻人三分, 立左右斜對。 其左右相距五步, 每芻人相距二十五步, 動馬後作左右揮槍勢, 疾趨至左第一芻人, 變作觸勢, 以中其面。 又橫馳至第二芻人, 變作觸勢, 以中其面。 又橫馳至第三芻人, 變作觸勢, 以中其面, 卽變作左右背槍之勢, 失勢者、馬不疾者、棄鞭者, 雖中不取。】 作擊毬之門; 【毬門相距三步, 自立旗處至毬門相距二百四十步, 自立馬處至旗下置毬處相距三十餘步。 擧人右手執杖, 杖端向內, 飜載馬項上半出左, 趨馬進置毬處, 以排之動毬, 以持皮回之, 毬若入凹則亦用排之。 凡擊毬須及毬行未止而擊之, 馬首俱快, 備勢三回畢, 乃馳馬擊行毬。 行毬之初, 不縱擊, 執杖橫直與馬耳齊, 然後擧手縱擊出毬門, 回馬還到初立處, 其馳馬與杖勢如初。】 設將射位於東西階前, 相向北上; 射位於階下近西, 橫布南向。 其日, 訓鍊觀先戒擧人, 集於壇所; 兵曹勒諸衛, 陳法駕鹵簿; 判司僕陳輿及御馬仗馬, 竝於弘禮門外, 分立如常。 議政府六曹堂上官及臺諫官, 依時刻俱集光化門外; 諸護衛之官及司禁, 各具器服, 詣思政殿閤外伺候。 判司僕進輦於勤政門外南向, 判通禮俯伏跪啓外辦, 殿下具翼善冠袞龍袍, 乘輿以出, 繖扇侍衛如常儀。 至勤政門外, 殿下降輿乘輦, 侍衛導從如常。 殿下至壇所, 降輦陞座, 繖扇侍衛如常儀。 侍從群官皆就次。 兵曹訓鍊觀官及擧人入就壇下, 異位重行, 北向四拜訖, 二品以上, 由西偏階升壇, 在西東向北上俯伏; 三品以下在壇下, 【若兵曹參議訓鍊觀副提調, 升壇西南隅, 北向東上。】 各供其事。 擧人皆出持弓矢, 【矢用三 。】 兩人爲耦以俟。 訓鍊觀槌鼓三聲, 擧人入就將射位俯伏, 以次而興, 就射位北向俯伏興, 南向先射遠侯, 射畢北向俯伏興, 還將射位。 衆耦畢射, 次射中侯, 次射近侯, 皆如上儀。 次騎射, 次騎槍, 次擊毬訖, 皆退, 兵曹分等第以啓。 車駕還宮, 侍衛導從如來儀。
- 【태백산사고본】 45책 133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5책 34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