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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32권, 오례 가례 의식 하상서의

오례 / 가례 의식 / 하상서의

하상서의(賀祥瑞儀)290) 【무릇 큰 경사[大慶]와 상서와 군사를 내어 전쟁에 이긴 일[出師勝捷]이 있을 적에는 모두 하례한다. 】

전기(前期) 1일에 예조에서 내외관(內外官)에게 선섭(宣攝)하여, 각기 그 직책을 다하게 한다. 액정서에서 어좌를 근정전 북벽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보안(寶案)을 어좌 앞에 동쪽으로 가까이 설치하고, 향안 2개를 전(殿) 밖의 왼쪽과 오른쪽에 설치한다. 아악서의 전악(典樂)이 헌현(軒懸)을 전정(殿庭)에 남쪽으로 가까이 북향하여 진열하고, 협률랑의 거휘위(擧麾位)를 서계 위에 설치하고, 전악의 자리를 중계에 설치하되, 모두 서쪽으로 가까이 동향하여 설치한다. 그날에 판사복이 여(輿)와 연(輦)을 전정의 중도에 진열하고, 【소여(小輿)는 북쪽에 있고, 대연(大輦)은 그 다음에 있다. 】 어마(御馬)를 중도(中道)의 왼쪽과 오른쪽에 진열하고, 【1필씩이 서로 마주 향한다. 】 입장마(立仗馬)를 융문루와 융무루의 남쪽에 진열한다. 【6필은 융문루의 남쪽에 있고, 6필은 융무루의 남쪽에 있어 서로 마주 향한다. 】 전의(典儀)가 문관 1품 이하의 자리를 전정의 길 동쪽에 설치하고, 종친과 무관 1품 이하의 자리를 길 서쪽에 설치하되, 품등마다 자리를 달리 하여 겹줄로 북향하고, 서로 상대하여 머리로 한다. 【종친은 매 품계마다 반열의 머리에 별도로 자리를 설치하고, 대군은 특별히 정1품 관원의 앞에 자리를 설치한다. 】 감찰의 자리 2개를 문·무반의 뒤에 북향하여 설치하고, 계상(階上)의 전의 자리는 동계 위에 동쪽으로 가까이 서향하여 설치하고, 판통례와 계하(階下)의 전의와 대치사관(代致詞官)의 자리를 동계 아래에 동쪽으로 가까이 서향하여 설치하고, 통찬과 봉례랑은 남쪽에 있어 조금 뒤로 물러 있게 한다. 또 통찬과 봉례랑의 자리를 서계 아래에 서쪽으로 가까이 동향하여 설치하되, 모두 북쪽을 상으로 한다. 봉례랑이 문외위(門外位)를 설치하되, 문관 2품 이상의 자리는 영제교(永濟橋) 북쪽의 길 동쪽에 설치하고, 3품 이하의 자리는 영제교 남쪽에 설치하고, 종친과 무관 2품 이상의 자리는 영제교 북쪽의 길 서쪽에 설치하고, 3품 이하의 자리는 영제교 남쪽에 설치하되, 모두 품등마다 자리를 달리 하여 겹줄로 서로 마주 향하고, 북쪽을 상으로 한다. 【종친은 별도로 자리를 설치하기를 전정의 자리와 같이 한다. 】

고(鼓)가 초엄(初嚴)을 알리면, 병조에서 여러 위(衛)의 군사를 거느리고 노부 반장(鹵簿半仗)을 정계(正階)와 전정의 동쪽·서쪽과 근정문의 안팎에 설치하고, 내금위를 전내와 전계 위의 동쪽과 서쪽에 설치하고, 충의위를 전계 위의 내금위의 뒤에 설치하고, 충순위를 중계(中階)의 동쪽과 서쪽에 설치하고, 별시위와 갑사를 전정의 동쪽과 서쪽에 설치하고, 또 별시위를 갑사의 뒤에 설치하고, 총통위를 의장의 뒤에 설치하고, 창을 쥔 갑사를 총통위의 뒤와 근정문 안팎에 설치하고, 장검을 쥔 갑사를 안팎의 문에 설치한다. 【무릇 군사들은 모두 무기와 제복을 갖춘다. 】 종친과 문무 백관들은 모두 조당(朝堂)에 집합하여 각각 조복(朝服)을 갖춘다.

고가 2엄을 알리면, 종친과 백관들이 모두 문외위에 나아간다. 여러 호위하는 관원 【도진무 1인, 내금위 절제사 2인, 충의위·충순위·별시위의 절제사 각각 1인, 운검(雲劍)을 찬 중추 4인, 갑(甲)을 받든 상호군·주(胄)를 받든 상호군 각각 1인, 궁시를 받든 상호군·운검을 받든 대호군·책(策)을 가진 대호군 각각 2인, 궁시를 가진 호군·몸을 방비하는 호군 각각 8인, 사복관 6인이다. 】 과 사금(司禁)이 각각 무기와 제복을 갖추고, 상서관(尙瑞官)이 어보를 받들고 모두 사정전의 합문 밖에 나아가서 사후(伺候)한다. 판통례가 합문 밖에 나아가서 부복하고 꿇어앉아 중엄을 계청하여, 전하가 원유관에 강사포를 갖추고 자리에 나아가는데, 산(繖)과 선(扇)으로 시위하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한다. 근시와 집사관이 【근시는 승지와 사관(史官)과 같은 등류이고, 집사관은 판통례·전의·선전관·대치사관·통찬·봉례랑·감찰과 같은 등류이다. 】 먼저 사배례(四拜禮)를 행하기를 평상시의 의식 같이 하고, 전악이 공인(工人)을 거느리고 들어와서 자리에 나아가고, 협률랑이 들어와서 거휘위에 나아간다.

고가 3엄을 알리면, 집사관이 먼저 자리에 나아가고, 봉례랑이 종친과 문무 3품 이하의 관원을 인도하여 동편문과 서편문을 지나서 자리에 나아간다. 종소리가 그치면, 안팎의 문을 연다. 판통례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외판(外辦)을 아뢰어, 전하가 여를 타고 나오는데, 산과 선으로 시위하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한다. 전하가 장차 나가려 하여 의장이 움직이면, 협률랑이 꿇어앉아 부복하였다가 휘(麾)를 들고 일어나고, 공인이 축(柷)을 두드리어, 헌가(軒架)에서 융안지악(隆安之樂)이 시작된다. 전하가 자리에 오르면, 향로의 연기가 피어 오르고, 상서관이 어보를 받들어 안(案)에 놓고, 산과 선으로 시위하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한다. 협률랑이 꿇어앉아 휘를 가로 눕히고는 부복하였다 일어나고, 공인이 어(敔)를 긁어 음악이 그친다. 여러 호위하는 관원이 들어와서 어좌의 뒤와 전내의 동쪽·서쪽에 늘어서고, 다음에 승지가 전내의 동쪽·서쪽에 나누어 들어와서 부복하고, 사관은 그 뒤에 있으며, 그 다음에 사금이 전계 위와 전정의 동쪽·서쪽에 나누어 서고, 봉례랑이 종친과 문무 2품 이상의 관원을 나누어 인도하여 동편문과 서편문을 지나 들어와서 자리에 나아간다. 전의가

"사배(四拜)하라."

고 말하고, 통찬이

"국궁(鞠躬), 사배(四拜), 흥(興), 평신(平身)하라."

고 창하여, 【무릇 통찬이 찬하고 창할 적에는 모두 전의의 말을 받아서 한다. 】 종친과 백관들이 국궁하면, 서안지악(舒安之樂)이 시작되고, 네 번 절하고 일어나서 몸을 바로 하면, 음악이 그친다. 대치사관이 서편계로부터 올라가서 어좌 앞에 나아가 부복하고 꿇어앉는다. 통찬이

"궤(跪)하라."

고 창하여, 종친과 백관들이 모두 꿇어앉는다. 대치사관이 치사하기를,

"의정 구관(議政具官) 신(臣) 아무개 등은…… 【치사(致詞)는 임시에 일에 따라서 찬술한다. 】 ."

하고, 하례를 마치면, 부복하였다가 일어나서 내려와 그전 자리로 돌아간다. 통찬이

"부복(俯伏), 흥, 사배, 흥, 평신하라."

고 창하여, 종친과 백관들이 부복하였다가 일어나면, 음악이 시작되고, 네 번 절하고 일어나서 몸을 바로 하면, 음악이 그친다. 통찬이

"궤, 진홀(搢笏), 삼고두(三叩頭)하라."

고 창하여, 종친과 백관들이 꿇어앉아 홀을 꽂고 세 번 고두한다. 통찬이

"산호(山呼)"

를 창하여, 종친과 백관들이 두 손을 마주잡아 이마에 얹고는

"천세"

라고 부르고,

"산호"

를 창하여,

"천세"

라고 부르고,

"재산호(再山呼)"

를 창하여

"천천세"

라고 부른다. 【무릇 천세를 부를 적에는 악공(樂工)과 군교(軍校)도 소리를 같이 하여 이에 응한다. 】 통찬이

"출홀(出笏), 부복, 흥, 사배, 흥, 평신하라."

고 창하여, 종친과 백관들이 홀을 내어 쥐고는 부복하였다가 일어나면, 음악이 시작되고, 네 번 절하고 일어나서 몸을 바로 하면, 음악이 그친다. 판통례가 서편계로부터 올라가서 어좌 앞에 나아가서 부복하고 꿇어앉아 예를 마쳤음을 아뢰고는, 부복하였다가 일어나서 내려와 그전 자리로 돌아간다. 협률랑이 꿇어앉아 부복하였다가 휘를 들고 일어나고, 공인이 축을 두드리어, 헌가에서 융안지악이 시작된다. 전하가 자리에서 내려와 여를 타는데, 산과 선으로 시위하기를 올 때의 의식과 같이 하고 사정전으로 돌아간다. 협률랑이 꿇어앉아 휘를 가로 눕히고는 부복하였다 일어나고, 공인이 어를 긁어 음악이 그친다. 봉례랑이 종친과 문무 백관들을 나누어 인도하여 나간다. 판통례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해엄(解嚴)을 아뢰어, 병조에서 교지를 받들어 의장을 해산시킨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132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5책 328면

  • [註 290]
    하상서의(賀祥瑞儀) : 상서를 하례하는 의식.

◎ 賀祥瑞儀 【凡有大慶祥瑞、出師勝捷, 皆賀。】

前一日, 禮曹宣攝內外, 各供其職。 掖庭署設御座於勤政殿北壁, 南向; 設寶案於座前近東; 香案二於殿外左右。 雅樂署典樂展軒懸於殿庭近南, 北向; 設協律郞擧麾位於西階上, 典樂位於中階, 俱近西東向。 其日, 判司僕陳輿輦於殿庭中道, 【小輿在北, 大輦次之。】 御馬於中道左右, 【各一匹相向。】 仗馬於文武樓南。 【六匹在隆文樓南, 六匹在隆武樓南, 相向。】 典儀設文官一品以下位於殿庭道東, 宗親及武官一品以下位於道西, 俱每等異位重行, 北向相對爲首; 【宗親, 每品班頭別設位; 大君, 特設位於正一品之前。】 監察位二於文武班後, 北向; 階上典儀位於東階上近東, 西向; 判通禮階下典儀代致詞官位於東階下近東, 西向, 通贊奉禮郞在南差退; 又通贊奉禮郞位於西階下近西, 東向, 俱北上。 奉禮郞設門外位, 文官二品以上於永濟橋北道東, 三品以下於橋南, 宗親及武官二品以上於橋北道西, 三品以下於橋南, 俱每等異位重行, 相向北上。 【宗親別設位, 如殿庭位。】 鼓初嚴, 兵曹勒諸衛, 陳鹵簿半仗於正階及殿庭東西、勤政門內外; 設內禁衛於殿內及殿階上東西; 忠義衛於殿階上內禁衛之後; 忠順衛於中階東西; 別侍衛及甲士於殿庭東西, 又別侍衛於甲士之後, 銃筒衛於儀仗之後, 執槍甲士於銃筒衛之後及勤政門內外, 執長劍甲士於內外門。 【凡軍士, 皆具器服。】 宗親及文武百官, 俱集朝堂, 各具朝服。 鼓二嚴, 宗親及百官皆就門外位, 諸護衛之官 【都鎭撫一、內禁衛節制使二、忠義衛忠順衛別侍衛節制使各一、佩雲劍中樞四、捧甲上護軍捧冑上護軍各一、捧弓矢上護軍捧雲劍大護軍扶策大護軍各二、帶弓矢護軍備身護軍各八、司僕官六。】 及司禁, 各具器服。 尙瑞官奉寶, 俱詣思政殿閤外伺候。 判通禮詣閤外俯伏跪, 啓請中嚴, 殿下具遠遊冠絳紗袍卽座, 繖扇侍衛如常儀。 近侍及執事官 【近侍如承旨史官之類, 執事官如判通禮典儀宣箋官代致詞官通贊奉禮郞監察之類。】 先行四拜禮如常。 典樂帥工人入就位, 協律郞入就擧麾位。 鼓三嚴, 執事先就使; 奉禮郞分引宗親及文武三品以下, 由東西偏門入就位。 鍾聲止, 闢內外門。 判通禮俯伏跪啓外辦, 殿下乘輿以出, 繖扇侍衛如常儀。 殿下將出仗動, 協律郞跪俯伏擧麾興, 工鼓柷, 軒架作《隆安之樂》。 殿下陞座, 爐烟升。 尙瑞官奉寶置於案, 繖扇侍衛如常儀, 協律郞跪偃麾俯伏興, 工戞敔, 樂止。 諸護衛之官入列於御座之後及殿內東西, 次承旨分入殿內, 東西俯伏, 史官在其後。 次司禁分立於殿階上及庭之東西, 奉禮郞分引宗親及文武二品以上, 由東西偏門入就位, 典儀曰: "四拜。" 通贊唱鞠躬四拜興平身, 【凡通贊贊唱, 皆承典儀之辭。】 宗親及百官鞠躬 【舒安之樂作。】 四拜興平身, 【樂止。】 代致詞官升自西偏階, 進當座前俯伏跪。 通贊唱跪, 宗親及百官皆跪, 代致詞官致詞云: "議政具官臣某等。" 【致辭, 臨時隨事撰述。】 賀訖俯伏興降復位。 通贊唱俯伏興四拜興平身, 宗親及百官俯伏興 【樂作。】 四拜興平身。 【樂止。】 通贊唱跪搢笏三叩頭, 宗親及百官跪搢笏三叩頭。 通贊唱山呼, 宗親及百官拱手加額曰: "千歲。" 唱山呼, 曰: "千歲。" 唱再山呼, 曰: "千千歲。" 【凡呼千歲, 樂工軍校齊聲應之。】 通贊唱出笏俯伏興四拜興平身, 宗親及百官出笏俯伏興 【樂作。】 四拜興平身。 【樂止。】 判通禮升自西偏階, 進當座前俯伏跪啓禮畢, 俯伏興降復位。 協律郞跪俯伏擧麾興, 工鼓柷, 軒架作《隆安之樂》。 殿下降座乘輿, 繖扇侍衛如來儀, 還思政殿。 協律郞跪偃麾俯伏興, 工戞敔, 樂止。 奉禮郞分引宗親及文武百官出。 判通禮俯伏跪啓解嚴, 兵曹承敎放仗。


  • 【태백산사고본】 44책 132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5책 3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