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영응 대군 집 동별궁에서 훙하다
임금이 영응 대군(永膺大君) 집 동별궁(東別宮)에서 훙(薨)하였다. 【처음에 영응 대군 집을 지을 때, 명하여 한 궁을 따로 집 동편에 세워서 옮겨 거처할 곳을 준비하였다. 】 임금은 슬기롭고 도리에 밝으매, 마음이 밝고 뛰어나게 지혜롭고, 인자하고 효성이 지극하며, 지혜롭고 용감하게 결단하며, 합(閤)에 있을 때부터 배우기를 좋아하되 게으르지 않아,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다. 일찍이 여러 달 동안 편치 않았는데도 글읽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태종(太宗)이 근심하여 명하여 서적(書籍)을 거두어 감추게 하였는데, 사이에 한 책이 남아 있어 날마다 외우기를 마지 않으니, 대개 천성이 이와 같았다. 즉위함에 미쳐, 매일 사야(四夜)035) 면 옷을 입고, 날이 환하게 밝으면 조회를 받고, 다음에 정사를 보고, 다음에는 윤대(輪對)를 행하고, 다음 경연(經筵)에 나아가기를 한 번도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또 처음으로 집현전(集賢殿)을 두고 글 잘하는 선비를 뽑아 고문(顧問)으로 하고, 경서와 역사를 열람할 때는 즐거워하여 싫어할 줄을 모르고, 희귀한 문적이나 옛사람이 남기고 간 글을 한 번 보면 잊지 않으며 증빙(證憑)과 원용(援用)을 살펴 조사하여서, 힘써 정신차려 다스리기를 도모하기를 처음과 나중이 한결같아, 문(文)과 무(武)의 정치가 빠짐 없이 잘 되었고, 예악(禮樂)의 문(文)을 모두 일으켰으매, 종률(鍾律)과 역상(曆象)의 법 같은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옛날에는 알지도 못하던 것인데, 모두 임금이 발명한 것이고, 구족(九族)과 도탑게 화목하였으며, 두 형에게 우애하니, 사람이 이간질하는 말을 못하였다. 신하를 부리기를 예도로써 하고, 간(諫)하는 말을 어기지 않았으며, 대국을 섬기기를 정성으로써 하였고, 이웃나라를 사귀기를 신의로써 하였다. 인륜에 밝았고 모든 사물에 자상하니, 남쪽과 북녘이 복종하여 나라 안이 편안하여, 백성이 살아가기를 즐겨한 지 무릇 30여 년이다. 거룩한 덕이 높고 높으매, 사람들이 이름을 짓지 못하여 당시에 해동 요순(海東堯舜)이라 불렀다. 늦으막에 비록 불사(佛事)로써 혹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한번도 향을 올리거나 부처에게 절한 적은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올바르게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127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5책 17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註 035]사야(四夜) : 사경(四更).
○壬辰/上薨于永膺大君第東別宮。 【初, 治永膺大君第, 命別建一宮于第東, 以備移御之所。】 上聰明睿智, 仁孝英斷, 自在閤好學忘倦, 手不釋卷, 嘗違豫數月, 亦讀書不輟, 太宗憂之, 命收書籍以藏, 間有一書尙遺, 日誦不已, 蓋其天性如是。 及卽位, 每日四夜求衣, 平明受朝, 次視事, 次輪對, 次經筵, 未嘗少懈。 又始置集賢殿, 選文士備顧問, 覽觀書史, 樂而不厭, 秘籍遺文, 一御不忘, 考閱證援, 勵精圖治, 終始如一。 文武之政畢擧, 禮樂之文俱興, 如鍾律曆象之法, 皆東方前古所未知, 而皆自上發之。 敦睦九族, 友愛二兄, 人無間言。 使臣以禮, 從諫弗咈, 事大以誠, 交隣以信, 明乎人倫, 察乎庶物, 南北賓服, 四境按堵, 民樂生生者, 凡三十餘年。 聖德巍巍, 人不能名, 時稱海東堯、舜, 晩年雖或有以佛事言者, 未嘗一燒香禮佛, 終始以正云。
- 【태백산사고본】 39책 127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5책 17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