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123권, 세종 31년 2월 25일 병자 2/4 기사 / 1449년 명 정통(正統) 14년
박강·조완벽·김수온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박강(朴薑)을 공조 참의로, 조완벽(趙完璧)을 첨지중추원사로, 김수온(金守溫)을 수 병조 정랑 지제교(守兵曹正郞知製敎)로 삼았다. 수온(守溫)은 시문(詩文)에 능하고, 성품이 부도(浮屠)028) 를 매우 좋아하여, 이 인연으로 사랑함을 얻어, 전(前) 직장(直長)으로써 수년이 못되어 정랑에 뛰어올랐고, 일찍이 지제교가 되지 못함을 한스러워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특별히 제수되었다. 무릇 수온의 제수(除授)는 대개가 전조(銓曹)에서 의논한 것이 아니고 내지(內旨)에서 나온 것이 많았다. 임금이 두 대군(大君)을 연달아 잃고, 왕후가 이어 승하하니, 슬퍼함이 지극하여 인과화복(因果禍福)의 말이 드디어 그 마음의 허전한 틈에 들어맞았다. 수온의 형 중[僧] 신미(信眉)가 그 요사한 말을 주창하고, 수온이 찬불가시(讚佛歌詩)를 지어 그 교(敎)029) 를 넓혔다. 일찍이 불당(佛堂)에서 법회(法會)를 크게 베풀고 공인(工人)030) 을 뽑아 수온의 지은 가시(歌詩)에 관현(管絃)을 맞춰 연습하게 하여 두어 달 뒤에 쓰게 하였다. 임금이 불사(佛事)에 뜻을 둔 데는 수온의 형제가 도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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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朴薑)을 공조 참의로, 조완벽(趙完璧)을 첨지중추원사로, 김수온(金守溫)을 수 병조 정랑 지제교(守兵曹正郞知製敎)로 삼았다. 수온(守溫)은 시문(詩文)에 능하고, 성품이 부도(浮屠)028) 를 매우 좋아하여, 이 인연으로 사랑함을 얻어, 전(前) 직장(直長)으로써 수년이 못되어 정랑에 뛰어올랐고, 일찍이 지제교가 되지 못함을 한스러워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특별히 제수되었다. 무릇 수온의 제수(除授)는 대개가 전조(銓曹)에서 의논한 것이 아니고 내지(內旨)에서 나온 것이 많았다. 임금이 두 대군(大君)을 연달아 잃고, 왕후가 이어 승하하니, 슬퍼함이 지극하여 인과화복(因果禍福)의 말이 드디어 그 마음의 허전한 틈에 들어맞았다. 수온의 형 중[僧] 신미(信眉)가 그 요사한 말을 주창하고, 수온이 찬불가시(讚佛歌詩)를 지어 그 교(敎)029) 를 넓혔다. 일찍이 불당(佛堂)에서 법회(法會)를 크게 베풀고 공인(工人)030) 을 뽑아 수온의 지은 가시(歌詩)에 관현(管絃)을 맞춰 연습하게 하여 두어 달 뒤에 쓰게 하였다. 임금이 불사(佛事)에 뜻을 둔 데는 수온의 형제가 도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