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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11권, 세종 28년 3월 28일 을미 2번째기사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

집현전에서 왕비를 위한 불경 편찬의 뜻을 거둘 것을 아뢰나 받아 들이지 아니하다

집현전에서 아뢰기를,

"어제 사헌부·사간원과 본전(本殿)에 전지(傳旨)하시어, 왕비(王妃)를 위하여 불경(佛經)을 이룩해야 되겠다는 뜻으로써 유시(諭示)하셨사오니, 신 등은 명령을 듣자옵고, 황공함을 견딜 수 없사옵니다. 불씨(佛氏)의 해독은 전하(殿下)께서 진실로 이미 그 옳고 그른 것을 환하게 알고 계시오니, 어찌 신 등의 말씀을 기다리겠습니까. 지금 불경을 이룩하고자 하심은 비록 슬픔이 절박한 지정(至情)에서 나왔지마는, 그러하오나 오늘 불경을 이루게 되면 내일은 반드시 불경을 읽는 법석(法席)을 설치하게 될 것입니다. 하물며, 불사(佛事)는 다만 한때의 일이지만, 만약 불경을 이룩한다면, 만세(萬世)에 유전(流傳)하여, 후세의 자손들이 아무 조종(祖宗)의 한 일이라고 일컫게 될 것이오니, 이로 인하여 불법(佛法)을 크게 일으킬 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본국(本國)은 태조(太祖)태종(太宗)께서 불교를 사태(沙汰)시킨 이후로, 전하(殿下)에 이르러서 배척하는 법이 더욱 엄중하였으니, 불교가 거의 사라져 없어졌습니다. 조신(朝臣)이 성화(聖化)에 감화하여, 무릇 상사(喪事)에는 불교의 법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자못 많사온데, 지금 전하께서 만약 1부(部)의 불경을 이룩하신다면, 사방의 보고 들은 사람들이 바람 따라오듯이 붙좇을 것이오니, 불교가 이로부터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가령 부처가 영험이 있다면, 근일이 왕비의 병에 정근 기도(精勤祈禱)를 궁금(宮禁)에 두 번이나 베풀었으나 오히려 감응(感應)되지 않았으므로, 이로 인하여 불교의 거짓인 점을 알 수가 있사오니, 청하옵건대 이 명령을 정지시키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들은 고금의 사리를 통달하여 불교를 배척하니, 현명한 신하라 할 수 있으며, 나는 의리는 알지 못하고 불법만을 존중하여 믿으니, 무지한 인군이라 할 수 있겠다. 그대들이 비록 번거롭게 굳이 청하지마는, 현명한 신하의 말이 반드시 무지한 인군에게는 합하지 않을 것이며, 무지한 인군의 말이 현명한 신하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내가 근년에 병이 많아서, 궁중(宮中)에 앉아 있으면서 다만 죽을 날만 기다릴 뿐인데, 그대들은 나를 시종(侍從)한 지가 오래되었으니, 내가 불교를 믿는가 안 믿는가를 알 것이다. 그대들이 비록 고집하여 다시 청하지마는, 내가 접견하지 않으므로 개설(開設)하고 변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대들이 만약 혹시 장소(章疏)을 올리더라도, 내가 친히 보지 않으므로, 그대들의 뜻을 환하게 알기가 어려울 것이니 번거롭게 다시 청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111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4책 662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왕실-의식(儀式)

○集賢殿啓: "昨傳旨司憲府司諫院與本殿, 諭以爲王妃成佛經之意, 臣等聞命, 不勝惶恐。 佛氏之害, 殿下固已洞識, 其是非, 豈待臣等之言? 今欲成佛經, 是雖出於哀迫之至情, 然今日成經, 則明日必設轉經法席。 矧佛事, 特一時之事耳, 若成佛經, 則流傳萬世, 後世子孫稱爲某宗之所爲, 因此而大張佛法必矣。 本國自太祖太宗沙汰以來, 至于殿下, 排斥之法尤嚴, 佛氏之敎, 幾乎熄矣。 朝臣沐於聖化, 凡喪事不用浮屠法者頗多。 今殿下若成一部佛經, 四方觀聽者, 靡然從風, 佛氏之敎, 從此而復張矣。 假令佛氏爲靈, 則近日王妃之病, 再設精勤祈禱於宮禁, 猶未感應, 因此而可以知佛氏之虛誕矣。 請停是命。" 上曰: "爾等通達古今, 排斥釋氏, 可謂賢臣矣, 予則不知義理, 崇信佛法, 可謂無知之君矣。 爾等雖煩固請, 賢臣之言, 必不合於無知之君; 無知之君之言, 必不入於賢臣之耳。 矧予近年多病, 坐於宮中, 但待死日耳。 爾等侍從日久, 可以知予之信佛與否矣。 爾等雖固執再請, 予未接見, 難以開說辨明; 爾等如或上章, 予未親覩, 難以洞識爾意, 勿煩再請。"


  • 【태백산사고본】 35책 111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4책 662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