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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11권, 세종 28년 3월 26일 계사 6번째기사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

중궁을 위해 불경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려 한다고 승정원에 이르니 반대하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맹자가 말하기를, ‘묵자(墨子)는 박(薄)하게 하는 것으로써 도리로 삼는데도, 그 어버이는 후하게 장사지낸다. ’라고 하였는데, 대저 신자(臣子)의 도리로써는 마땅히 정직한 것으로써 윗사람을 섬겨야만 되고, 그 거짓은 용납될 수가 없지마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집안에 있으면서 부처를 받들고 귀신을 섬김이 이르지 않는 데가 없는데도, 남을 대할 때는 도리어 귀신과 부처로써 그르게 여기니, 내가 심히 이를 미워한다. 예전에 태종(太宗)을 모시고 연회를 하는 자리에 변계량(卞季良)도 또한 참예하였는데, 태종께서 말씀하기를, ‘경(卿)은 어찌 고기를 먹지 않는가.’ 하니, 계량(季良)은 얼굴빛이 변하면서 끝내 실정을 고하지 않았었다. 태종이 말씀하기를, ‘이미 경(卿)이 나한(羅漢)035) 에게 제사하고자 하는 것을 알았노라.’ 하면서, 이내 고기먹기를 권하였다. 계량이 부처를 좋아함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데, 오히려 숨기고 알리지 않은 것은 남이 비난할 것을 두려워한 때문이다. 대체로 정자(程子)주자(朱子)는 세상의 대현(大賢)으로서 이단(異端)036) 을 배척하기를 심히 강력하게 하였는데, 오늘날에 있어서 혹은 그 그른 것을 참으로 알고, 이를 배척하기를 정자·주자와 같이 한 사람과, 혹은 선유(先儒)의 의논한 바에 의거하여 미워하면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혹은 자기는 심히 좋아하면서도 남에게만 도리어 책망하는 사람이 있게 될 것이니, 저들 두 사람은 좋은 편이나, 자기는 이를 좋아하면서 남에게만 도리어 책망하는 사람은 내가 심히 미워한다. 지금 중궁(中宮)이 세상을 떠났는데, 아이들이 그를 위하여 불경(佛經)을 만들라 하므로, 내가 이를 허락하고 정부에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옳습니다.’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 나라가 해마다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먹고 살 수가 없으니, 공적으로 출판(出辦)할 수가 없으나, 아이들이 사사 저축과 본궁(本宮)의 저축된 것으로 이를 하려고 한다. 또한 동궁(東宮)은 책임이 중(重)하므로 이미 대군으로 하여금 이를 감독하게 했는데, 하지 않으면 그뿐이겠지만, 한다면 마땅히 일을 주관할 사람을 가려서 그 임무를 관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듣건대, 정효강(鄭孝康)이 불교를 좋아하면서 재주와 덕행이 있다고 하는데, 그의 문학은 어떠한가."

하니, 여러 승지들이 모두 아뢰기를,

"좋습니다만, 다만 중궁(中宮)께서 병환이 계셨을 때에 내전(內殿)에 설법(說法)을 정근(精勤)히 하므로, 신 등이 마음속으로 미안하게 여겼사오나, 다만 사정이 급한 이유 때문에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부처가 만약 영험이 있다면 반드시 감통(感通)한 점이 있었을 것이온데, 지금에 와서도 더욱 거짓만 더하게 되니 믿을 것이 못됩니다. 위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심하게 되오니, 원하옵건대 이를 하지 마옵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들은 불경을 만드는 것을 그르게 여기는데, 어버이를 위하여 불사(佛事)를 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니, 우부승지 이사철(李思哲)은 아뢰기를,

"지난번 아버지 상을 당하여 불사를 행하여 온 사람은 결단코 행하지 않았는데, 전하께서는 여러 사람이 눈으로 보고 감동하는 데 관계되오니 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좌승지 황수신(黃守身)·좌부승지 박이창(朴以昌)·동부승지 이순지(李純之)는 아뢰기를,

"불경을 이루는 것이 중궁에게 조그만 도움도 없을 것이니, 이를 그만두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들이 모두 의리를 밝게 알고 있는데도, 나는 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잘못 그대들과 의논하였으니, 대성(臺省)과 집현전의 관원을 불러 오라."

하였다. 사간 변효경(卞孝敬)·집의 정창손(鄭昌孫)·교리 하위지가 대궐에 나아오니, 임금이 말하기를,

"고려의 말기에 이단이 대단히 유행했으나 우리 조정에 이르러 점차로 쇄진하여졌다. 나에게 이르러 노비(奴婢)와 전지(田地)를 회수하고 궁중(宮中)의 송경(誦經)과 안거회(安居會)를 폐지하였으니, 폐단의 큰 것은 반은 이미 제거되었다. 예전에 내가 모후(母后)의 상(喪)을 당하여 세 번 법회(法會)를 베풀었고, 태종께서 또한 나로 하여금 친히 대자암(大慈菴)에 가게 했으나 마침 사고가 있어서 가지 못했는데, 실은 내가 간 것이나 같은 것이다. 지금 아이들이 그 어머니를 위하여 불경(佛經)을 이루고자 하니, 내가 옳지 않은 것을 알지마는 마지못하여 그 말을 허가했으니, 그대들은 이를 알 것이다."

하니, 정창손이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어찌 이 말을 하십니까. 근일의 일로써 이를 살펴보더라도 거짓임을 알 수가 있으므로, 신은 오히려 시주(施主)한 물건을 도로 가져오려고 하는데, 어찌 다시 불경을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전하께서 상사를 당했을 때에는 태종께서 이를 명령하였으니, 마지못해 한 일이지마는, 지금은 하고 안하는 것은 전하에게 있는데, 또한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 어찌 반드시 이를 하시렵니까. 전하께서는 비록 큰 폐단을 서너너덧 가지를 없앴지마는, 흥천사를 다시 고쳐 짓고 또 경찬회(慶讚會)를 설치했으니, 이로부터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지금 또 불경을 이루게 된다면 폐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고, 하위지도 또한 힘써 간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들이 말한 예전의 이른 바 ‘태종의 명령을 마지못하여 한 것이라는 것을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명령한다면, 다만 그만둘 수 있겠는가. 또 태종 때에 사원이 무너진 것을 수즙(修葺)한 것이 많았는데, 나도 또한 수즙했을 뿐이고 새로 지은 것은 없었다. 흥천사태조께서 창건한 것이므로 차마 무너지게 할 수가 없어서 이를 수리하도록 명하였고, 이미 수리하고는 경찬이 없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옛날에 당나라 태종 때의 황후가 붕어하매, 태자가 황후를 위하여 절을 세우기를 청하였는데, 지금은 어찌 그렇지 못하겠는가."

하였다. 정창손하위지가 힘써 간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나, 임금이 끝내 듣지 아니하니, 변효경은 머리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111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659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고사(故事) / 사상-불교(佛敎) / 사상-유학(儒學) / 왕실-비빈(妃嬪)

○上謂承政院曰: "孟子言: ‘墨子以薄爲道, 而葬其親厚。’ 大抵臣子之道, 宜以直事上, 不可容其詐。 然世人在家, 奉佛事神, 靡所不至, 及對人, 反以神佛爲非, 予甚惡之。 昔侍太宗宴, 卞季良亦與焉。 太宗曰: ‘卿何不食肉?’ 季良色變, 終不告情, 太宗曰: ‘已知卿欲祭羅漢也。’ 因勸肉。 季良好佛, 人皆知之, 猶諱不以聞者, 恐人譏也。 夫, 天下大賢, 闢異端甚力。 當今或有眞知其非, 拒之如者, 或據先儒所論, 惡而不好者, 或有己則篤好, 而反責人者。 彼二者善矣, 至於己則好之, 而反責人者, 予深嫉之。 今中宮卽世, 兒子輩爲成佛經, 予許之, 議于政府, 皆曰: ‘可。’ 予惟我國連年飢荒, 民不聊生, 未可公辦, 因兒輩私畜與本宮所儲爲之。 且東宮任重, 已令大君監之, 不爲則已, 爲則當擇幹事者, 使掌其任。 予聞鄭孝康好佛而有才行, 其文學何如?" 諸承旨皆曰: "可矣, 但中宮未寧之時, 說精勤內殿, 臣等心以爲未安, 只緣情迫, 未得以聞。 佛若有靈, 必有感通, 至于今, 益加誕妄, 不足信也。 上有好者, 下必甚焉, 願勿爲之。" 上曰: "爾等以造佛經爲非, 爲親不作佛事者誰?" 右副承旨李思哲曰: "曩喪父行佛事, 來者斷不行也。 殿下, 觀感所係, 不可行也。" 左承旨黃守身、左副承旨朴以昌、同副承旨李純之曰: "成佛經, 於中(官)宮無絲毫補, 請罷之。" 上曰: "爾皆明知義理, 而我不知道者, 誤與爾等議。 其召臺省集賢殿。" 司諫卞孝敬、執義鄭昌孫、校理河緯地詣闕, 上曰: "高麗之季, 異端盛行, 至我朝寢衰, 至于予, 收奴婢取田地, 罷宮中誦經及安居會, 弊之大者, 半已除矣。 昔予遭母后喪, 三設法會, 太宗又使予親往大慈菴, 適有故不往, 實同予往也。 今兒輩爲其母, 欲成佛經, 予知非是, 不得已可其言, 若等知之。" 昌孫曰: "殿下何出此言? 以近日之事觀之, 足知誕妄, 臣猶欲還取施物, 何必更造佛經? 昔殿下遭喪時, 太宗命之, 不獲已也。 今則進退在殿下, 且知非是, 何必爲之? 殿下雖革大弊數四, 然重修興天, 又設慶讃, 自是奉佛者多。 今又成經, 弊不可勝言。" 緯地亦力諫, 上曰: "若等謂昔之所謂太宗所命, 不得已, 今予命之兒輩, 可但已乎? 且太宗朝, 寺院頹圯修葺者多, 予亦修葺耳, 創造則無之。 興天, 太祖所創, 不忍廢墜, 命修之。 旣修之, 不可無慶讃。 昔 太宗時, 皇后崩, 太子爲請立寺, 今何不然?" 昌孫緯地力諍不已, 上終不聽, 孝敬俛首而已。


  • 【태백산사고본】 35책 111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659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고사(故事) / 사상-불교(佛敎) / 사상-유학(儒學) /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