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평 대군 여의 졸기
광평 대군 이여(李璵)가 졸(卒)하였다. 여의 자는 환지(煥之)이고 호는 명성당(明誠堂)이니, 임금의 다섯째 아들이다. 홍희(洪熙) 원년 을사(乙巳) 5월 임신일(壬申日)에 나서, 선덕(宣德) 7년 임자(壬子) 정월에 광평 대군에 봉하였다. 나이 어릴 때부터 학문에 힘써서 《효경(孝經)》과 《소학(小學)》과 사서 삼경(四書三經)을 다 통하고, 《문선(文選)》과 이태백(李太白)·두자미(杜子美)·구양수(歐陽修)·소동파(蘇東坡)의 문집들을 두루 열람하였고, 더욱 《국어(國語)》와 《좌전(左傳)》에 공부가 깊었으며, 음률(音律)과 산수(算數)에 이르기까지도 그 오묘(奧妙)한 이치를 다 알았다. 글을 잘 짓고 글씨의 필법도 절묘하였으며, 강한 활을 당겨서 멀리 쏘고, 또 격구(擊毬)에도 능하였다. 임금이 간의대(簡儀臺)와 종부(宗簿)의 일을 총관(總管)하기를 명하였더니, 종합하고 정리함에 체제를 세웠었다. 임금이 무안군(撫安君)의 후사(後嗣)가 없음을 추념(追念)하여 입후(立後)를 시켜서 그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여(璵)가 창진(瘡疹)을 앓고 있었는데, 임금이 심히 근심하여 여러 방법으로 치료를 했으나 끝내 효과를 얻지 못하고 죽으니, 임금과 중궁이 몹시 슬퍼하여 3일 동안 조회를 거두었다. 여는 성품과 도량이 너그럽고 넓으며, 용모와 자태가 탐스럽고 아름다우며, 총명하고 효제(孝悌)하여 비록 노복이나 사환이라도 일찍이 꾸짖지 아니하매,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였다. 시호(諡號)를 장의(章懿)라고 하였으니, 공경하고 삼가고 높고 밝음이 장(章)이고, 온화하고 부드럽고 현명하고 착함이 의(懿)이다. 아들이 하나이니 이름은 이부(李溥)이다. 처음 여의 병이 위독할 때 임금이 밤을 새워 자지 않았고, 끝내 죽으매 종일토록 수라를 들지 아니하니, 도승지 이승손 등이 아뢰기를,
"성상께서 오랜 병환이 있으신데 애통하심이 예절에 지나치십니다. 청하옵건대, 수라를 드시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 마땅히 그리 하겠노라."
하였으나, 날이 저물어서야 죽만 조금 마실 뿐이었다. 백파령(白波令)에게 명하여 상례를 주관해 보게 하고, 첨지중추원사 정척(鄭陟)과 변효문(卞孝文)·예빈 소윤(禮賓少尹) 민완(閔瑗)으로 호상(護喪)하는 일을 시키고, 또 동부승지(同副承旨) 이사초(李思招)를 명하여 또한 가서 보살피게 하고, 초상 중에 목욕과 염습(斂襲)과 빈소(殯所)에 관한 제구(諸具)를 다 관(官)에서 마련하였다. 정부와 육조에서 조위(弔慰)하는 전문(箋文)을 올리니, 이르기를,
"온화하고 순량한 숙덕(夙德)이 일찍이 종실(宗室)의 꽃부리었더니, 준수하고 풍우한 자태가 문득 황천의 막힘이 되었나이다. 슬픔이 깊이 대궐에 감싸이매, 아픔이 널리 민심(民心)에 맺히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성상의 비통하심을 너그러이 하시어 신하들의 소망에 답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106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책 596면
- 【분류】인물(人物)
○壬子/廣平大君 璵卒。 璵字煥之, 號明誠堂, 上之第五子也。 以洪熙乙巳五月壬申生, 宣德七年壬子正月, 封廣平大君。 自少力學, 通《孝經》、《小學》四書三經, 徧閱《文選》、李、杜、歐、蘇集, 尤長於《國語》、《左傳》, 至於音律算數, 亦極其妙, 善屬文, 書法亦妙。 挽强射遠, 又能擊毬。 上命總簡儀宗簿事, 綜理得體。 上追念撫安君無嗣, 命以爲後, 以主其祀。 璵患瘡疹, 上憂甚, 醫療多方, 竟莫能效, 至是卒, 兩宮震悼, 輟朝三日。 璵性度寬洪, 容姿豐美, 聰明孝悌。 雖奴隷僕從, 未嘗叱咤, 人皆愛之。 諡章懿, 敬愼高明章, 溫柔賢善懿。 一子溥。 初, 璵病劇, 上徹夜不寐, 及卒, 終日不御膳。 都承旨李承孫等啓曰: "上有宿疾, 哀慟過禮, 請進膳。" 上曰: "予當從之。" 然及暮但進粥少許而已。 命白波令常主喪, 以僉知中樞院事鄭陟ㆍ卞孝文、禮賓少尹閔瑗護喪事, 又命同副承旨李思招, 亦往監之。 凡沐浴斂殯之具, 皆官它之。 政府六曹上陳慰。 箋曰: "溫良夙德, 端爲宗室之英; 俊偉豐姿, 奄隔泉扃之秘。 哀纏宸極, 慟結輿情。 伏惟願寬聖懷之悲, 以答臣僚之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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