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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04권, 세종 26년 4월 27일 병오 1번째기사 1444년 명 정통(正統) 9년

진무 김유율 등이 돌아와 기근이 심함을 아뢰자 다시 조관을 보내어 두루 충청도·경기도를 살펴보고 견책을 하도록 하다

진무(鎭撫) 김유율(金有栗)·박대손(朴大孫) 등이 돌아와서 아뢰기를,

"신 등이 여러 고을을 돌아보오니, 혹 양식이 떨어진 자도 있고 혹 나물만 먹는 자도 있으며, 혹 부종(浮腫)이 난 자도 있었사온데, 쌓아 둔 곡식은 많아야 1, 2두(斗)에 불과했으며, 적은 자는 1, 2되[升] 밖에 없었으되 혹은 다 먹고 없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승정원(承政院)에 이르기를,

"내가 이 말을 듣고 참으로 놀랬다. 생각하건대는, 혹시 내가 충청도(忠淸道)에 온 지 오래 되어 지대(支待)하느라고 겨를이 없어 감사와 수령들도 힘이 미치지 못해 조치하는 것에 겨를이 없지나 않았는가 하였는데, 백성들의 기근이 유독 이 고을만 그런 것이 아니니, 다시 조관(朝官)을 보내어 두루 충청도·경기도를 살펴보게 한 뒤에 견책(譴責)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승손 등이 아뢰기를,

"상교(上敎)가 윤당(允當)합니다."

하매, 즉시 충청도 관찰사 김조에게 교유하기를,

"이제 들으니 도내의 각 고을 인민이 기근한 자가 많아 경작하던 전토(田土)에도 파종을 못했다 하기로, 가까운 고을에 사람을 나누어 보내 검핵(檢覈)하게 하였더니, 혹은 기근으로 나물만 먹는 자도 있고, 혹은 먹지 못해서 부황이 난 자도 있으며, 쌓아 둔 곡식도 많아야 1, 2두(斗)에 불과하고, 적은 자는 1, 2되 밖에 없는데, 혹 떨어진 자 중에는 경작하던 토지에 파종도 하지 못한 자가 3분의 1분은 된다 하니, 내가 이 말을 듣고 깊이 염려하였다. 충청도는 산천이 험하지 않고 도로가 평탄하여 인마가 통행할 수 있고, 각 고을의 창고는 모두 충실하여 백성들의 유무(有無)를 이바지하게 하고 관청에서 서로 꾸어서 진휼하는 것도 심히 쉬울 것이며, 또 내가 가까운 곳에 와 있으니 감사와 수령이 마음을 써서 조치한다면 백성들의 기근이 어찌 이렇도록 되겠는가. 감사·수령관(首領官)은 나의 뜻을 본받아 먼저 궁벽한 마을과 외딴 부락으로 길을 나누어서 순행(巡行)하게 하되, 각 고을 수령들의 환자곡을 나누어 주는데 부지런하고 태만한 것과 인민들의 기근한 실정과 토지의 진황(陳荒)이 많고 적은 것을 곡진(曲盡)하게 알아보고 살펴보아 한 백성이라도 굶주리고 한 전지(田地)이라도 경작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여 농업을 제대로 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104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책 552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농업-농작(農作) / 구휼(救恤)

○丙午/鎭撫金有栗朴大孫等回啓: "臣等巡行諸邑, 或有乏食者, 有菜色者, 有浮腫者, 所儲之穀, 多不過一二斗, 小至於一二升, 或有告匱者。" 上謂承政院曰: "予聞此言, 良用驚駭。 慮或以予幸此道已久, 支待無暇, 監司守令力有不及而不遑措置。 且民之飢饉, 不獨此邑爲然, 更遣朝官, 遍閱忠淸京畿, 然後譴責何如?" 承孫等啓: "上敎允當。" 卽諭忠淸道觀察使金銚曰:

今聞道內各官人民, 多有饉飢, 所耕之田, 亦不播種, 遣人近邑, 分巡檢覈, 或有飢饉菜色者, 或有乏食浮腫者, 所蓄之穀, 多不過一二斗, 小至於一二升, 或有告匱者, 所耕之田未播種者, 三分之一。 予聞此言, 深以爲慮。 本道山川不險, 道路平夷, 人馬通行, 各官倉廩, 亦皆充實, 民之有無相資, 官之推移賑恤甚易。 且予臨幸近地, 監司守令用心措置, 則民之飢饉, 奚至如此耶? 監司首領官, 其體予意, 先自窮村僻巷, 分道巡行, 各官守令等還上分給勤慢、人民飢饉之狀、田土陳荒多小, 曲盡考察, 毋使一民飢饉, 一田不種, 以遂農業。


  • 【태백산사고본】 33책 104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책 552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농업-농작(農作)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