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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9일 기축 1번째기사 1443년 명 정통(正統) 8년

이조에 내린 유복지친의 처우에 대한 교시

이조에 하교(下敎)하기를,

"《문헌통고(文獻通考)》를 보면 한(漢) 광무(光武)는 아들 10인을 모두 봉왕(封王)하였으되, 적자(適子)와 적손(適孫)은 모두 승습(承襲)하여 왕으로 봉하게 하고, 중손(衆孫)과 중증손(衆曾孫)은 혹 열후(列侯)에, 혹은 향후(鄕侯)·정후(亭侯)에 봉하게 하였으며, 서진(西晉)에서는 황가(皇家)가 아니면 왕이 되지 못하게 하되, 여러 왕의 지자(支子)·서자(庶子)는 모두 황가의 근속(近屬)이요, 지친(至親)이지만 또한 각각 땅으로 은혜를 미루어 비로소 왕의 지자(支子)를 봉하여 공승(公丞)을 삼고, 왕의 지자를 봉하여 후계승을 삼으며, 왕의 지자를 봉하여 백(伯)을 삼았다. 당(唐)은 황형제(皇兄弟)와 황자(皇子)만 왕이 되게 하고, 여러 왕의 적자(嫡子)는 군왕(郡王)을 봉하여, 중자(衆子)는 군공(郡公)을 봉하였는데, 당(唐) 고조(高祖)가 수선(受禪)하매 천하가 정하여지지 않았으므로, 널리 종실(宗室)을 봉하여 천하에 위엄을 보이니, 황종제(皇從弟)와 나이 어린 조카들 수십 인도 모두 봉하여 군왕(郡王)을 삼게 하였다. 당(唐) 태종(太宗)이 즉위하자 속적(屬籍)을 들어 시신(侍臣)에게 묻기를, ‘종자(宗子)를 천하에 봉하는 것이 편한가.’ 하니, 봉덕이(封德彝)가 대답하기를, ‘불편합니다. 예전에 봉왕(封王)한 것을 살펴보아도 오늘날이 가장 많습니다. 서한(西漢)·동한(東漢) 이래로 오직 황제의 아들과 친형제만 봉하고, 종실(宗室)과 소원(疏遠)한 자는 큰 공이 있는 자가 아니면 모두 지나치게 명기(名器)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친소(親疏)를 구별한 것입니다. 선조(先祖) 때에 구족(九族)이 돈목하여 일체로 봉왕하여 작명(爵命)이 이미 높아지매 많은 역역(力役)을 주었으니, 대개 천하를 가지고 사삿물건으로 삼은 것이오라, 지극히 공정하게 물건을 어거하는 도(道)가 아닙니다.’ 하매, 태종(太宗)이 말하기를, ‘그렇다. 짐(朕)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본래 백성을 위한 것이요, 백성을 수고롭게 하여 자기 친속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이에 소원한 친속은 작(爵)을 강등하고 오직 공이 있는 두어 사람만 왕이 되게 하되, 나머지는 봉하여 현공(縣公)을 삼았으며, 송나라에서는 황자(皇子)로서 왕이 된 자는 봉작(封爵)이 겨우 자신에 그치게 하고, 자손은 적서(嫡庶)를 막론하고 문음(門蔭)을 이어받아 입사(入仕) 하여 환위관(環衛官)이 되는 데에 불과하고, 차례로 옮기어 반드시 직임을 거친 것이 여러 해가 되어 덕망과 연치가 좀 높아져야만 특별히 왕작(王爵)으로 봉하되, 그 조(祖)·부(父)가 받은 작(爵)은 승습하지 못하게 하였었다.

예(禮)에 말하기를, ‘제후(諸侯)의 별자(別子)가 할아비의 계승이 되면 따로 종(宗)이 되고, 아비를 이은 자는 소종(小宗)이 된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4세(世)에 시마(緦麻)를 입으면 복(服)의 다한 것이요, 5세에 단문(袒免)하면 동성(同姓)에서 강쇄되는 것이요, 6세에 친속이 다한 것이다.’ 하였으니, 대개 친(親)이 다하면 복(服)이 궁(窮)하고, 복이 궁하면 은혜와 예도도 따라서 강쇄 되는 것이다. 지금 종실(宗室)의 작질을 옛 제도와 예경(禮經)을 참작하여 마땅히 오복(五服)을 들어 정하여, 왕자(王子) 중에 중궁(中宮)의 아들은 대군(大君)을 봉하고, 측실(側室)의 아들은 군(君)을 봉하여 모두 정1품으로 하되, 자(資)는 없게 하며, 왕손(王孫)으로 장차 승습(承襲)할 자는 종2품, 중손(衆孫)은 정 4품으로 하고, 증손으로 장차 승습할 자는 정3품, 중증손(衆曾孫)은 종 4품으로 하고, 현손(玄孫)으로 장차 승습할 자는 정3품, 중현손(衆玄孫)은 정5품으로 하고, 마땅히 승습할 자가 아비가 죽어 승습한 뒤에는 왕손은 종1품, 증손은 정2품, 현손은 종2품으로 하고, 장차 승습할 자가 아비가 아직 승습하기 전에는 지자(支子)의 예에 의하고, 여러 손자 내에 양첩(良妾)의 소생은 각각 한 등을 버리고, 천첩(賤妾)의 소생은 또 각각 한 등을 내리게 하라. 전에 매등마다 한 자(資)로 한 것은 타당하지 못하니, 마땅히 문·무관(文武官)의 예에 의하여 두 자(資)를 써서 정1품은 현록 대부(縣祿大夫)·흥록 대부(興祿大夫)로, 종1품은 소덕 대부(昭德大夫)·가덕 대부(嘉德大夫)로, 정2품은 숭헌 대부(崇憲大夫)·승헌 대부(承憲大夫)로, 종2품은 중의 대부(中義大夫)·정의 대부(正義大夫)로, 정3품은 명선 대부(明善大夫)·창선 대부(彰善大夫)로, 종3품은 보신 대부(保信大夫)·자신 대부(資信大夫)로, 정 4품은 선휘 대부(宣徽大夫)·광휘 대부(廣徽大夫)로, 종4품은 봉성 대부(奉成大夫)·광성 대부(光成大夫)로, 정5품은 통직랑(通直郞)·병직랑(秉直郞)으로, 종5품은 근절랑(謹節郞)·신절랑(愼節郞)으로, 정6품은 집순랑(執順郞)·종순랑(從順郞)으로 하라. 사람됨이 근실하고 양순하면 특지로 가자(加資)하고, 또 예전 열후(列侯)·향후(鄕侯)의 제도에 의하여 2품 이상은 윤(尹)이라 일컫고, 3품은 정(正)이라 일컫게 하며, 4품은 영(令)이라 일컫고, 5품은 감(監)이라 일컫게 하며, 6품은 장(長)이라 일컬어 부곡(部曲)·향리(鄕里)의 호(號)로 봉하고, 장차 승습할 자는 2품에 이르면 군을 봉하고, 단문친(袒免親)은 이성(異姓)·유복친(有服親)의 예에 의하여 서용하되, 친(親)이 다하면 사진(仕進)하여 문무관의 예에 의하여 시행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102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4책 529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역사-고사(故事)

○(乙)〔己〕 丑/下敎吏曹曰: "《文獻通考》: " 光武子十人, 皆封王; 適子適孫, 皆襲封王; 衆孫衆曾孫, 或封列侯, 或封鄕侯、亭侯。 西晋, 非皇子, 不得爲王, 而諸王之支庶, 皆皇家之近屬至親, 亦各以土推恩, 始封王之支子爲公丞, 封王之支子爲侯繼丞, 封王之支子爲伯。 皇兄弟皇子爲王, 諸王子嫡者封郡王, 其衆子封郡公。 高祖受禪, 以天下未定, 廣封宗室, 以威天下, 皇從弟及姪年始孩童者數十人, 皆封爲郡王。 太宗卽位, 因擧屬籍, 問侍臣曰: "封宗子於天下便乎?" 封德彛對曰:

"不便。 歷觀往古封王者, 今日最多。 兩以降, 唯封帝子及親兄弟, 若宗室疎遠者, 非有大功, 竝不得濫叨名器, 所以別親疎也。 先朝敦睦九族, 一切封王, 爵命旣崇, 多給力役。 蓋以天下爲私, 殊非至公馭物之道也。" 太宗曰: "然。 朕理天下, 本爲百姓, 非欲勞百姓以養己之親也。" 於是, 率以屬疎降爵, 唯有功者數人得王, 餘封爲縣公。 皇子之爲王者封爵, 僅止其身, 而子孫無問嫡庶, 不過承蔭入仕爲環衛官, 以序而遷, 必須歷任, 年深德齒稍尊, 方特封以王爵, 而其祖父所授之爵則不襲也。 《禮》曰: "諸侯之別子爲祖繼別爲宗, 繼禰者爲小宗。" 又曰: "四世而緦, 服之窮也。 五世袒免, 殺同姓也。 六世, 親屬竭矣。" 蓋親盡則服窮, 服窮則恩禮亦隨而殺矣。 今宗室爵秩, 參酌古制及禮經, 當擧五服爲定。 三子內中宮之子封大君, 側室之子封君, 皆正一品無資。 王孫將承襲者, 從二品; 衆孫, 正四品; 曾孫將承襲者, 正三品; 衆曾孫, 從四品; 玄孫將承襲者, 從三品; 衆玄孫正五品, 當承襲者, 父歿承襲後。 王孫則從一品, 曾孫則正二品, 玄孫則從二品。 將承襲者, 父未承襲之前, 依支子例。 諸孫內良妾之出, 各降一等, 賤妾之出, 又各降一等。 在前每等一資未便, 當依文武官例, 用二資, 正一品顯祿大夫、興祿大夫, 從一品昭德大夫、嘉德大夫, 正二品崇憲大夫、承憲大夫, 從二品中義大夫、正義大夫, 正三品明善(太)〔大〕 夫、彰善大夫, 從三品保信大夫、資信大夫, 正四品宣徽大夫、廣徽大夫, 從四品奉成大夫、光成大夫, 正五品通直郞、秉直郞, 從五品謹節郞、愼節郞, 正六品執順郞、從順郞。 爲人謹良者, 特旨加資。 又依古列侯鄕侯之制, 二品以上稱尹, 三品稱正, 四品稱令, 五品稱監, 六品稱長, 以部曲鄕里之號封之。 將承襲者至二品, 則封君。 袒免親, 依異姓有服親例敍用, 親盡則仕進, 依文武官例施行。


  • 【태백산사고본】 33책 102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4책 529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