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로 떠나는 경상도 도사 권기를 인견하다
경상도 도사(都事) 권기(權技)가 하직하니, 인견하고 이르기를,
"창업(創業)할 때에는 일이 번거롭고 이룩한 업을 지킬 때에는 일이 간략한데, 때가 다르고 일이 같지 아니하여 정치가 풍속으로 말미암아 바뀌므로, 근년 이래로 법을 세우는 일이 퍽 많았다. 백성을 북방으로 들어가 살게 하는 일로 말할지라도, 고려 때에는 평안도 평양과 함길도 화주(和州) 이북은 모두 남쪽 백성을 옮겨서 채웠다. 옛사람이 대중(大衆)을 움직이고 큰 계책을 정하는 데에 이처럼 하여도 오히려 원망이 없었거늘, 이제 들어가 살게 하는 수는 수천 명에 불과한데, 백성들이 모두 원망하여 스스로 손을 끊고, 혹은 자살하는 자까지 있으니, 내가 심히 진념(軫念)한다. 무릇 반역(叛逆)은 천하의 큰 변(變)이며 모든 백성이 함께 놀라는 바이나, 만일 주창해 거느리는 자가 있으면, 그래도 따르는 자가 있는데, 어찌 임금이 나라를 위하여 큰 계책을 세워, 백성을 옮겨 변경에 채우는 데에 따르기를 즐기지 아니하는 자가 있으랴. 이는 나의 박덕(薄德)한 소치이니 누구를 허물하겠느냐. 하삼도(下三道)는 땅이 좁고 백성이 많아서 3결(結)을 경작하는 집에 아들 세 사람이 있어, 만약 그 전토를 나누면, 한 사람에게 겨우 1결을 경작하게 될 것이니 백성의 생활이 어찌 넉넉하게 될 것인가. 평안도는 땅이 넓고도 기름져서 내가 부호(富戶)를 추려서 빈 땅에 들여보내어 채우고자 하였으나, 함길도의 일을 마치기 못하였기 때문에 곧 거행하지 못했을 뿐이다.
조세(租稅)의 수입을 의논하는 자는 하나만이 아니라, 혹은 말하기를, ‘공법(貢法)을 행하면 부자는 좋아하고 가난한 자는 싫어하니, 좋아함은 좋은 전답을 많이 점령하여 수확이 갑절이 되기 때문이고, 그 싫어함은 겨우 메마른 전답을 얻었으되 갈고 매는 시기를 잃었을 경우, 만약 공법(貢法)으로 거두면 수확이 부세(賦稅)를 채우지 못하는 까닭으로 답험(踏驗)하는 법을 다행으로 여긴다. ’고 하고, 혹은 이르기를, ‘부자는 싫어하고 가난한 자는 좋아하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부자는 경차 위관(敬差委官)에게 뇌물을 주어 실(實)269) 을 손(損)270) 으로 만들어서 조세를 내는 것이 도리어 공법(貢法)의 수량보다 미치지 못하는 까닭에 공법의 일정한 수량이 있는 것을 싫어하고, 가난한자는 답험(踏驗)할 즈음에 위관(委官)과 서원(書員)의 공돈(供頓)하는 비용과 필묵(筆墨)을 모두 백성의 집에서 거두고 가혹하게 재물을 낚음은 가난한 자에게 먼저 미치므로, 비록 공법이 조금 과중하다고 할지라도 답험할 때에 잡비를 거두는 것이 공법을 내는 것보다 갑절이 되기 때문에 가난한 자가 편하게 여긴다. ’고 하니, 두 의논이 분분하여 누가 옳은지를 알지 못하여, 이에 하삼도에 공법을 먼저 행하여 편리한 여부를 시험한 것이고 애초에 백성에게 많이 거두려고 함이 아니었다.
또 농상(農桑)으로 말하면, 내가 후원(後苑)에 갈고 심어서 시험해 보니, 정사년에는 비록 가물어 흉년이 들었으나 수확이 갑절이나 많았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갈고 맬 적에 인력이 넉넉한 때문이다. 금년에는 벼농사가 거의 성실하였는데, 비가 많이 와서 해(害)가 되어 마침내 수확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천후가 비록 순조로울지라도 사람의 힘이 이르지 아니하면 어찌 수확이 있으리오. 그 절후에 따라 권장하기에 힘쓰는 것이 진실로 마땅히 할 바이나, 권하고 독려함에 거리끼어 지나치게 소란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그 직업에 편한함을 얻지 못하게 함이 옳을까. 의창(義倉)의 곡식을 꾸어 주고 거두어 들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꾸어 주기를 혹 고르게 못하고 거두어 들이기를 혹 적당하게 못하는 자가 혹 있으니, 한 지방을 맡아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마음을 다하지 아니할 수 없다. 너는 가서 힘쓰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94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88면
- 【분류】재정-전세(田稅) / 인사-임면(任免) / 역사-전사(前史) / 호구-이동(移動)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慶尙道都事權技辭, 引見曰: "創業之時事繁, 守成之時事簡, 時異事殊, 政由俗革。 近年以來, 立法頗多。 以入居之事言之, 高麗之時, 平安道 平壤、咸吉道 和州以北, 皆徙南界民以實之。 古人動大衆定大策, 至於如此, 而尙無怨謗, 今入居之數, 不過數千, 而民皆怨咨, 至有自斷手或自死者, 予甚軫慮。 夫叛逆, 天下之大變, 凡民所共駭。 然苟有倡率之者, 尙有從之者, 安有人君爲國大計, 徙民實邊, 而不肯從者乎? 此則涼德所致, 尙誰咎哉? 下三道地窄民稠, 耕三結之家, 有子三人, 若分其田, 則一人只耕一結, 民生焉得裕乎? 平安道道地曠且沃, 予欲刷富戶, 入實閑曠之地, 而咸吉之事未畢, 故未卽擧行耳。 租稅之入, 議者非一, 或云: ‘貢法之行, 富者便之, 貧者厭之。 便之, 以其多占良田, (收獲)〔收穫〕 倍利。 若隨實給實, 租稅必多於貢也。 厭之, 以其僅得磽薄之田, 耕耘失時。 若收以貢法, 則所(獲)〔穫〕 不能充其賦, 故幸其踏驗之法耳’。 或云: ‘富者厭之, 貧者便之, 此無他, 富者能賄敬差委官, 以實爲損, 租稅之出, 反不及貢法之數, 故厭其貢法之有定數。 貧者於踏驗之際, 委官書員供頓之費及筆墨, 皆斂民戶, 誅索侵漁, 貧者居先。 雖曰貢法稍重, 踏驗之時, 雜斂之夥, 倍於貢法之出, 故貧者便之’。 兩議紛紜, 未知誰是, 乃於下三道先行貢法, 以試便否耳, 初非欲厚斂於民也。 且以農桑言之, 予於後苑, 耕種以觀之, 丁巳年雖旱荒, 而收穫倍多。 此無他, 耕耘之際, 人力有餘也。 今年禾稼垂成, 而雨水爲害, 卒無所(獲)〔收穫〕 。 由是觀之, 天時雖順, 而人力不至, 尙何有秋? 隨其節候, 勤其勸課, 固所當爲。 然拘於勸督, 過爲騷擾, 使民不得安其業可乎? 斂散義倉, 亦重事也。 散之或不均, 斂之或失宜者, 容或有之, 任方面字牧之人, 不可不盡心也。 汝往懋哉!"
- 【태백산사고본】 30책 94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88면
- 【분류】재정-전세(田稅) / 인사-임면(任免) / 역사-전사(前史) / 호구-이동(移動)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