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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85권, 세종 21년 4월 22일 기해 3/3 기사 / 1439년 명 정통(正統) 4년

사헌부·사간원에서 흥천사의 역사와 불교의 폐단을 상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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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연명으로 상소하기를,

"석씨(釋氏)는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교(敎)이며, 세상을 등지고 속세(俗世)와 인연을 끊는 도(道)입니다. 우리 양민들을 해롭게 하고 우리의 정도(正道)를 방해하여, 남의 나라를 그르치는 일이 진실로 한 가지만이 아니옵니다. 요즘 흥천사(興天寺)의 중이 망령되게 이르기를, ‘사리각을 수리하는 것은 바로 우리 불도(佛道)를 다시 일으키는 기회이다. ’라고 하면서, 화복(禍福)을 다투어 말하고 대중을 선동 유혹하여 풍년과 흉년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쌀과 베를 많이 모으고, 바로 큰 도시 가운데서 특별히 안거회를 베푸오니, 대소 인민들이 요사한 말에 유혹되어 다투어 나아가서 시주하옵니다. 그들이 나라의 법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여, 백성을 해롭게 하고 폐를 끼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사옵니다. 전하께서 신 등에게 명하시기를, ‘이제 흥천사흥덕사 두 절에서 만일 〈중들을〉 잡아다가 심문할 일이 있거든, 취지(取旨)한 뒤에 구문(句問)하도록 하라.’ 하셨으므로, 대간의 사령(使令)들이 문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신 등은 생각하건대, 승도들은 이미 팔의(八議)가 아닌데 반드시 왕지(王旨)를 받든 뒤에 구문(句問)할 것이 없사옵니다. 사령은 오로지 난동을 금하는 것이오니, 진실로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사옵니다. 승도들이 진실로 심문할 죄가 없다면 사령들도 공동(恐動)할 이치가 없을 것이온데, 무엇 때문에 이러한 명령이 계시온지 알지 못하겠사옵니다.

그리고 군자 미곡(軍資米穀)은 본래 군사를 먹이고 굶주림을 구제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옵니다. 그 거두고 흩어 주는 방법을 삼가지 아니 할 수 없거늘, 사리각(舍利閣) 간사승(幹事僧) 홍조(洪照)에게 꾸어 준 쌀 50석을 모두 징수하지 못하게 하셨으나 신 등은 생각하건대, 위의 쌀은 진실로 백성의 고혈(膏血)이오니, 놀고 먹는 무리들에게 가볍게 주어 명색 없는 허비를 할 수 없사옵니다. 지방에 나누어서 공물(貢物)을 바치게 한 것은 나라에 법이었거늘, 산음(山陰)합천(陜川) 두 고을에서 바치는 철기(鐵器)를 중 혜회(惠會)의 자원에 좇아 정철(正鐵)로 대납(代納)하게 하셨사오니, 신 등이 염려되는 것은 값을 거둘 즈음에 간사한 중들이 천위(天威)를 빙자하여 폐를 끼침이 적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 장의동(藏義洞)에 쌓아 둔 소나무를 흥천사 중들에게 주어 땔나무로 쓰게 한다고 하오니, 이는 진실로 적은 물건이므로 이까울 것이 없으나, 저 중들은 무슨 인연으로 이 자그마한 일을 가지고 천총(天聰)을 모독하옵니까.

신 등이 또 듣자옵건대, 성균관의 생도들의 상소에 이르기를, ‘주옥과 비단으로 법의(法衣)를 만들고 불자(拂子)와 선봉(禪棒)을 금은으로 꾸미며, 또 금은으로 식기와 염주를 만들어서 행호에게 하사하셨다. ’고 하오니, 이는 비록 주착없는 선비들의 믿기 어려운 말이오나, 과연 이런 하사가 있었다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본받는 것을 어찌 족히 괴이하게 여기겠습니까. 신 등은 또 듣건대, 장차 대장경(大藏經)을 박아서 흥천사에 안치하려고 한다 하는데, 연화(緣化)하는 무리들이 드디어 권문(勸文)을 만들어서 의친(懿親)에게 서명(署名)을 받아서는, 각도에 나누어 가서 종이를 뜨고 먹을 만들면서 민간을 소란하게 하여, 해가 매우 심하다고 하옵니다.

신 등은 생각하건대, 대장경은 예전에 박은 것도 적지 아니하온데, 어찌 비용을 허비하여 쓸데없는 물건을 만들겠습니까. 하물며 인경(印經)을 금하는 법이 《원전(元典)》에 실려 있는 데이겠습니까. 도승(度僧)의 법도 《영전(令典)》에 실려 있어서 금지함이 심히 엄하오나, 무오년부터 금년까지 부역하는 중에게 도첩(度牒)을 준 것이 무려 8천여 명입니다. 저 중들은 금하는 법을 무릅쓰고 머리를 깎았으니 진실로 이미 죄가 있사온데 어찌 놓아두고 논하지 아니하며, 또 따라서 도첩을 주어 이룩한 법을 무너뜨리겠습니까. 군인(軍人)의 액수(額數)가 줄고 백성의 식량이 소모되는 것이 주로 여기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신 등은 가만히 엎드려 생각하건대, 절약해 쓰고 백성을 사랑함은 왕도(王道) 정치에 먼저 해야 할 바이온데, 재물을 허비하고서 백성에게 은혜가 미치는 바가 있지 아니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남쪽으로 섬 오랑캐[島夷]가 있고 북쪽으로 야인과 잇닿아서, 싸우고 지키는 준비와 관곡(館穀)의 수요(需要)는 진실로 오늘날의 급한 일입니다. 그런데 놀고 먹으며 부역(賦役)을 도피하는 자들이 무리를 이루고 떼를 지어서 백성을 해롭게 하고 재물을 좀먹거늘, 위로는 종척(宗戚)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풍속에 휩쓸려서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듯하오니, 이를 두고 금하지 아니하면 그 유행(流行)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구학(溝壑)에 굴러 떨어질 지경에 이른 뒤에야 그만둘 것이오니, 성상의 문명(文明)한 정치에서 어찌 흠이 되지 아니하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봄부터 여름까지 연달아 비가 오지 아니하여 풍년의 기약을 아직 알 수 없사오므로, 성상께서 진념하사 반찬을 감하시고 비를 근심하사 신(神)마다 기우제를 행하지 아니함이 없사옵니다. 하늘의 경계함을 삼가는 바가 지극하시거늘, 어찌하여 홀로 승도들이 재물을 허비하고 백성들을 해롭게 하는 일은 금하지 아니하십니까. 금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열흘 사이에 중을 위하는 뜻이 많았사옵니다. 사유(事由)는 비록 작다 하더라도 관계되는 바는 가볍지 아니하오니, 이것이 신 등의 자나깨나 편하지 못하여 감히 천위(天威)를 모독하는 바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유음(兪音)을 발하사 예지(睿旨)의 결단을 내리시어, 흥천사흥덕사 두 절에 있는 중들에게 대간(臺諫)으로 하여금 예전과 같이 규찰하게 하옵고, 안거회(安居會)와 대장경 인쇄를 즉시 정파(停罷)하기를 명하시오며, 행호가 받은 물건과 홍조에게 꾸어 준 쌀도 도로 바치게 하시며, 혜회(惠會)가 정철(正鐵) 바치기를 자원하는 일도 허락하지 마시고 도승(度僧)의 법을 일체 이룩된 법에 의해 시행하여, 신 등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고 간하는 말을 좇는 아름다운 덕을 밝히시옵소서."

하니, 임금이 글을 보고 이르기를,

"금은 염주(金銀念珠)의 일은 태학생(太學生)들이 이미 말하였으나, 이는 내가 준 물건이 아니다. 처음에는 죄를 주려 하였으나 나중에는 관대히 용서하였는데, 너희들이 어찌 듣지 못하여 오히려 이런 말을 하느냐. 대장경을 박는 폐는, 만약 모든 일을 준비하기 전에 말하였으면 내가 마땅히 정지시킬 것이나, 이제는 모든 일이 이미 준비되었으니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안거회는 외방(外方)의 모든 절이 다 그러하거늘, 어찌하여 경중(京中)에서만 금하겠는가. 절이 있으면 중이 있고 중이 있으면 안거회가 있는데, 만약 안거회를 엄하게 금하고자 하면, 먼저 절을 없앤 뒤에라야 가할 것이다."

하였다. 지평 정효강(鄭孝康)과 헌납 황보공(皇甫恭)이 아뢰기를,

"태학생들로서 상소한 자가 무려 6백여 명이나 됩니다. 신 등은 간절히 생각하건대, 이 무리가 비록 어리나 모두 선비의 집 자제로서 듣고 본 것이 매우 많사온데, 어찌 없는 일을 가지고 상언(上言)하였겠사옵니까. 그러므로 신 등이 감히 말한 것입니다. 과연 유학생들의 말한 바와 같다면 금은은 바로 우리 나라에서 금하는 물건이오니, 청하건대, 도로 거두게 하소서."

하였다. 효강이 또 아뢰기를,

"그 대장경을 박는 일을 신 등이 만약 일찍 들었사오면, 어찌 참고 잠잠히 있었겠습니까. 요즈음 안거회의 사유를 선종승(禪宗僧) 해란(海蘭)에게 물었더니, 해란의 말에서 대장경을 박는 일에 말이 미쳤으며, 또 집현전의 상소에 대장경을 박은 폐를 진술한 것이 있었으므로, 신 등이 이로 인하여 비로소 얻어 알았습니다. 외방의 안거회는 신 등이 미처 다 알지 못하오나, 도성 안의 불사(佛事)를 만약 지금 금지하지 아니한다면, 저 외방의 일을 어찌 금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금·은 염주는 내가 이미 말하기를, ‘내가 준 것이 아니라. ’고 하였는데, 이제 너희들이 말하기를, ‘과연 유생들의 말한 바와 같으면 도로 거두기를 청합니다.’ 하였으니, 이는 도리어 내 말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다. 옛날에 신하가 임금에게 나아가 간하는 자가 이와 같이 거만함이 있지 아니하였다."

하고, 잠시후 또 승정원에 이르기를,

"승지가 잘못 들었느냐, 말을 전하는 자가 잘못 전하였느냐. 과연 대간에서 참으로 이러한 말이 있었느냐."

하니, 좌부승지 허후(許詡)가 아뢰기를,

"신이 처음에는 황보공이 이러한 뜻으로 계청(啓請)하였다고 생각하였사옵니다. 이제 상교(上敎)를 듣고 다시 생각하오니, 공(恭)의 말이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옵니다. 신이 그때에 일찍 다시 질문하지 못하였사오니, 실은 신의 죄이옵니다."

하매, 임금이 이르기를,

"네가 잘못 들은 것을 아뢰었으니, 어찌 다시 대간에게 물어 보겠느냐."

하였다.

원문

○司憲府司諫院交章曰:

釋氏以無父無君之敎、離世絶俗之道, 蟊賊我良民, 蓁蕪我正道, 誤人國家, 固非一端。 近者興天寺僧妄謂舍利閣之修, 乃吾道復興之機, 爭言禍福, 扇惑人衆, 不計豐歉, 多聚米布, 乃於大都之中, 特設安居之會, 大小人民, 惑於邪說, 爭趨舍施, 其不畏邦憲, 耗民作弊, 不可勝言也。 而殿下命臣等若曰: "今興天興德兩寺, 如有作拿推詰事, 必須取旨, 而後乃問, 臺諫使令, 不得入門。" 臣等以爲僧徒旣非八議, 不必奉旨而後句問。 使令專是禁亂, 固無不入之處, 苟僧徒無可詰之罪, 則使令亦無恐動之理, 未審何爲而有是命歟? 且軍資米穀, 本爲餉軍賑飢而設也, 其斂散之方, 不可不謹, 舍利閣幹事僧洪照所貸米五十石, 悉令勿徵。 臣等以爲上項之米, 實是民膏, 不可輕與遊手之徒, 以爲無名之費也。 分土作貢, 國有典則。 山陰陜川二郡所納鐵器, 從僧惠會自願, 代以正鐵, 臣等慮恐收直之際, 姦僧憑藉天威, 貽弊不貲矣。 藏義洞積在松木, 給付興天寺僧, 以爲炊爨之柴, 此誠微物, 不足惜也。 彼僧何緣將此瑣事, 以瀆天聰乎? 臣等又聞太學生徒上書有曰: "以珠玉錦繡造成法衣, 拂子禪棒, 飾用金銀。 又以金銀, 鑄成食器念珠, 以賜行乎。" 此雖狂僭之士難信之言, 果有此賜, 愚民則效, 尙何足怪? 臣等又聞, 將印《藏經》, 以安興天, 緣化之徒, 遂成勸文, 受押懿親, 分往各道, 化楮造墨, 搔擾民間, 爲害滋甚。 臣等以爲經之舊印, 亦且不少, 豈可糜費, 以成無用之物? 況印經之禁, 載在《元典》乎? 度僧之法, 亦在令典, 防禁甚嚴, 歲自戊午以至今年, 役僧給牒, 無慮八千餘人。 維彼緇徒冒禁剃髮, 固已有罪, 豈可縱釋不論, 又從而度之, 以毁成法乎? 軍額之減、民食之耗, 職此之由。 臣等竊伏惟念, 節用愛民, 王政之所先, 未有傷財而惠及於民者也。 惟我國家, 南有島夷, 北連野人, 戰守之備、館穀之需, 誠今日之所急也。 然而遊手逃賦之輩, 成群結隊, 耗民蠹財, 上自宗戚, 下至黎庶, 靡然從風, 如恐不及。 捨此不禁, 其流至於蕩盡資産, 轉于溝壑而後已也, 豈不有累於聖上文明之治乎? 矧今自春徂夏, 連月不雨, 豐稔之期, 尙未可知? 聖上軫慮, 減膳閔雨, 靡神不擧, 其所以謹天戒者至矣, 何獨於僧徒費財害民之事, 莫之禁歟? 非徒不禁, 旬日之間爲僧之旨多矣。 事由雖細, 所係匪輕, 此臣等所以寤寐不寧, 而敢冒天威者也。 伏望殿下渙發兪音, 特垂睿斷, 興天興德二寺居僧, 許令臺諫糾察如舊, 安居之會、《藏經》之印, 卽命停罷; 行乎所受之物、洪照所貸之米, 亦令還納; 惠會納鐵, 不許從願; 其度僧之法, 一依成憲施行, 以副臣等之望, 以著從諫之美。

上覽疏謂曰: "金銀念珠之事, 太學生已言之, 此非予所賜之物, 初欲罪之, 終乃優容, 爾等豈不聞之而猶以此爲說乎? 印經之弊, 若於諸事未辦之前言之, 則吾當停之, 今則諸事已辦, 何可已乎! 安居之會, 外方諸寺, 無不皆然, 何奈獨禁於京中乎? 有寺則有僧, 有僧則安居。 若欲痛禁安居, 則先毁寺社, 然後乃可。" 持平鄭孝康、獻納皇甫恭啓曰: "太學生上疏者, 無慮六百餘人矣。 臣等竊意此輩雖童稚, 皆士家子弟, 聞見甚廣, 豈以虛事上言哉? 故臣等敢言耳。 果如儒生所言, 則金銀乃我國禁物, 請令還收。" 孝康又啓曰: "其印《大藏》, 臣等若早聞, 則何忍含默! 近以安居事由, 問諸禪宗僧海蘭, 海蘭語及印經之事, 又於集賢殿上疏, 有陳藏經摸印之弊, 臣等因此始得知之。 外方安居則臣等未及悉知, 然都下佛事, 若今不禁, 則彼外方何以禁諸?" 上曰: "金銀念珠, 予旣曰非予所賜, 今爾等曰: ‘果如儒生所言, 請令還收。’, 則是反以予言爲不信也。 古之人臣進諫於君者, 未有若是其慢也。" 俄而又謂承政院曰: "承旨誤聽耶? 將命者誤傳耶? 果臺諫眞有是言耶?" 左副承(百)〔旨〕 許詡啓曰: "臣初意皇甫恭乃以此意啓請, 今聞上敎, 更思之, 言必不如此。 臣於其時, 不曾更質, 實臣之罪也。" 上曰: "以爾誤聽啓之, 何必更問於臺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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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85권, 세종 21년 4월 22일 기해 3/3 기사 / 1439년 명 정통(正統) 4년

사헌부·사간원에서 흥천사의 역사와 불교의 폐단을 상소하다

국역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연명으로 상소하기를,

"석씨(釋氏)는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교(敎)이며, 세상을 등지고 속세(俗世)와 인연을 끊는 도(道)입니다. 우리 양민들을 해롭게 하고 우리의 정도(正道)를 방해하여, 남의 나라를 그르치는 일이 진실로 한 가지만이 아니옵니다. 요즘 흥천사(興天寺)의 중이 망령되게 이르기를, ‘사리각을 수리하는 것은 바로 우리 불도(佛道)를 다시 일으키는 기회이다. ’라고 하면서, 화복(禍福)을 다투어 말하고 대중을 선동 유혹하여 풍년과 흉년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쌀과 베를 많이 모으고, 바로 큰 도시 가운데서 특별히 안거회를 베푸오니, 대소 인민들이 요사한 말에 유혹되어 다투어 나아가서 시주하옵니다. 그들이 나라의 법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여, 백성을 해롭게 하고 폐를 끼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사옵니다. 전하께서 신 등에게 명하시기를, ‘이제 흥천사흥덕사 두 절에서 만일 〈중들을〉 잡아다가 심문할 일이 있거든, 취지(取旨)한 뒤에 구문(句問)하도록 하라.’ 하셨으므로, 대간의 사령(使令)들이 문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신 등은 생각하건대, 승도들은 이미 팔의(八議)가 아닌데 반드시 왕지(王旨)를 받든 뒤에 구문(句問)할 것이 없사옵니다. 사령은 오로지 난동을 금하는 것이오니, 진실로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사옵니다. 승도들이 진실로 심문할 죄가 없다면 사령들도 공동(恐動)할 이치가 없을 것이온데, 무엇 때문에 이러한 명령이 계시온지 알지 못하겠사옵니다.

그리고 군자 미곡(軍資米穀)은 본래 군사를 먹이고 굶주림을 구제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옵니다. 그 거두고 흩어 주는 방법을 삼가지 아니 할 수 없거늘, 사리각(舍利閣) 간사승(幹事僧) 홍조(洪照)에게 꾸어 준 쌀 50석을 모두 징수하지 못하게 하셨으나 신 등은 생각하건대, 위의 쌀은 진실로 백성의 고혈(膏血)이오니, 놀고 먹는 무리들에게 가볍게 주어 명색 없는 허비를 할 수 없사옵니다. 지방에 나누어서 공물(貢物)을 바치게 한 것은 나라에 법이었거늘, 산음(山陰)합천(陜川) 두 고을에서 바치는 철기(鐵器)를 중 혜회(惠會)의 자원에 좇아 정철(正鐵)로 대납(代納)하게 하셨사오니, 신 등이 염려되는 것은 값을 거둘 즈음에 간사한 중들이 천위(天威)를 빙자하여 폐를 끼침이 적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 장의동(藏義洞)에 쌓아 둔 소나무를 흥천사 중들에게 주어 땔나무로 쓰게 한다고 하오니, 이는 진실로 적은 물건이므로 이까울 것이 없으나, 저 중들은 무슨 인연으로 이 자그마한 일을 가지고 천총(天聰)을 모독하옵니까.

신 등이 또 듣자옵건대, 성균관의 생도들의 상소에 이르기를, ‘주옥과 비단으로 법의(法衣)를 만들고 불자(拂子)와 선봉(禪棒)을 금은으로 꾸미며, 또 금은으로 식기와 염주를 만들어서 행호에게 하사하셨다. ’고 하오니, 이는 비록 주착없는 선비들의 믿기 어려운 말이오나, 과연 이런 하사가 있었다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본받는 것을 어찌 족히 괴이하게 여기겠습니까. 신 등은 또 듣건대, 장차 대장경(大藏經)을 박아서 흥천사에 안치하려고 한다 하는데, 연화(緣化)하는 무리들이 드디어 권문(勸文)을 만들어서 의친(懿親)에게 서명(署名)을 받아서는, 각도에 나누어 가서 종이를 뜨고 먹을 만들면서 민간을 소란하게 하여, 해가 매우 심하다고 하옵니다.

신 등은 생각하건대, 대장경은 예전에 박은 것도 적지 아니하온데, 어찌 비용을 허비하여 쓸데없는 물건을 만들겠습니까. 하물며 인경(印經)을 금하는 법이 《원전(元典)》에 실려 있는 데이겠습니까. 도승(度僧)의 법도 《영전(令典)》에 실려 있어서 금지함이 심히 엄하오나, 무오년부터 금년까지 부역하는 중에게 도첩(度牒)을 준 것이 무려 8천여 명입니다. 저 중들은 금하는 법을 무릅쓰고 머리를 깎았으니 진실로 이미 죄가 있사온데 어찌 놓아두고 논하지 아니하며, 또 따라서 도첩을 주어 이룩한 법을 무너뜨리겠습니까. 군인(軍人)의 액수(額數)가 줄고 백성의 식량이 소모되는 것이 주로 여기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신 등은 가만히 엎드려 생각하건대, 절약해 쓰고 백성을 사랑함은 왕도(王道) 정치에 먼저 해야 할 바이온데, 재물을 허비하고서 백성에게 은혜가 미치는 바가 있지 아니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남쪽으로 섬 오랑캐[島夷]가 있고 북쪽으로 야인과 잇닿아서, 싸우고 지키는 준비와 관곡(館穀)의 수요(需要)는 진실로 오늘날의 급한 일입니다. 그런데 놀고 먹으며 부역(賦役)을 도피하는 자들이 무리를 이루고 떼를 지어서 백성을 해롭게 하고 재물을 좀먹거늘, 위로는 종척(宗戚)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풍속에 휩쓸려서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듯하오니, 이를 두고 금하지 아니하면 그 유행(流行)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구학(溝壑)에 굴러 떨어질 지경에 이른 뒤에야 그만둘 것이오니, 성상의 문명(文明)한 정치에서 어찌 흠이 되지 아니하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봄부터 여름까지 연달아 비가 오지 아니하여 풍년의 기약을 아직 알 수 없사오므로, 성상께서 진념하사 반찬을 감하시고 비를 근심하사 신(神)마다 기우제를 행하지 아니함이 없사옵니다. 하늘의 경계함을 삼가는 바가 지극하시거늘, 어찌하여 홀로 승도들이 재물을 허비하고 백성들을 해롭게 하는 일은 금하지 아니하십니까. 금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열흘 사이에 중을 위하는 뜻이 많았사옵니다. 사유(事由)는 비록 작다 하더라도 관계되는 바는 가볍지 아니하오니, 이것이 신 등의 자나깨나 편하지 못하여 감히 천위(天威)를 모독하는 바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유음(兪音)을 발하사 예지(睿旨)의 결단을 내리시어, 흥천사흥덕사 두 절에 있는 중들에게 대간(臺諫)으로 하여금 예전과 같이 규찰하게 하옵고, 안거회(安居會)와 대장경 인쇄를 즉시 정파(停罷)하기를 명하시오며, 행호가 받은 물건과 홍조에게 꾸어 준 쌀도 도로 바치게 하시며, 혜회(惠會)가 정철(正鐵) 바치기를 자원하는 일도 허락하지 마시고 도승(度僧)의 법을 일체 이룩된 법에 의해 시행하여, 신 등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고 간하는 말을 좇는 아름다운 덕을 밝히시옵소서."

하니, 임금이 글을 보고 이르기를,

"금은 염주(金銀念珠)의 일은 태학생(太學生)들이 이미 말하였으나, 이는 내가 준 물건이 아니다. 처음에는 죄를 주려 하였으나 나중에는 관대히 용서하였는데, 너희들이 어찌 듣지 못하여 오히려 이런 말을 하느냐. 대장경을 박는 폐는, 만약 모든 일을 준비하기 전에 말하였으면 내가 마땅히 정지시킬 것이나, 이제는 모든 일이 이미 준비되었으니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안거회는 외방(外方)의 모든 절이 다 그러하거늘, 어찌하여 경중(京中)에서만 금하겠는가. 절이 있으면 중이 있고 중이 있으면 안거회가 있는데, 만약 안거회를 엄하게 금하고자 하면, 먼저 절을 없앤 뒤에라야 가할 것이다."

하였다. 지평 정효강(鄭孝康)과 헌납 황보공(皇甫恭)이 아뢰기를,

"태학생들로서 상소한 자가 무려 6백여 명이나 됩니다. 신 등은 간절히 생각하건대, 이 무리가 비록 어리나 모두 선비의 집 자제로서 듣고 본 것이 매우 많사온데, 어찌 없는 일을 가지고 상언(上言)하였겠사옵니까. 그러므로 신 등이 감히 말한 것입니다. 과연 유학생들의 말한 바와 같다면 금은은 바로 우리 나라에서 금하는 물건이오니, 청하건대, 도로 거두게 하소서."

하였다. 효강이 또 아뢰기를,

"그 대장경을 박는 일을 신 등이 만약 일찍 들었사오면, 어찌 참고 잠잠히 있었겠습니까. 요즈음 안거회의 사유를 선종승(禪宗僧) 해란(海蘭)에게 물었더니, 해란의 말에서 대장경을 박는 일에 말이 미쳤으며, 또 집현전의 상소에 대장경을 박은 폐를 진술한 것이 있었으므로, 신 등이 이로 인하여 비로소 얻어 알았습니다. 외방의 안거회는 신 등이 미처 다 알지 못하오나, 도성 안의 불사(佛事)를 만약 지금 금지하지 아니한다면, 저 외방의 일을 어찌 금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금·은 염주는 내가 이미 말하기를, ‘내가 준 것이 아니라. ’고 하였는데, 이제 너희들이 말하기를, ‘과연 유생들의 말한 바와 같으면 도로 거두기를 청합니다.’ 하였으니, 이는 도리어 내 말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다. 옛날에 신하가 임금에게 나아가 간하는 자가 이와 같이 거만함이 있지 아니하였다."

하고, 잠시후 또 승정원에 이르기를,

"승지가 잘못 들었느냐, 말을 전하는 자가 잘못 전하였느냐. 과연 대간에서 참으로 이러한 말이 있었느냐."

하니, 좌부승지 허후(許詡)가 아뢰기를,

"신이 처음에는 황보공이 이러한 뜻으로 계청(啓請)하였다고 생각하였사옵니다. 이제 상교(上敎)를 듣고 다시 생각하오니, 공(恭)의 말이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옵니다. 신이 그때에 일찍 다시 질문하지 못하였사오니, 실은 신의 죄이옵니다."

하매, 임금이 이르기를,

"네가 잘못 들은 것을 아뢰었으니, 어찌 다시 대간에게 물어 보겠느냐."

하였다.

원문

○司憲府司諫院交章曰:

釋氏以無父無君之敎、離世絶俗之道, 蟊賊我良民, 蓁蕪我正道, 誤人國家, 固非一端。 近者興天寺僧妄謂舍利閣之修, 乃吾道復興之機, 爭言禍福, 扇惑人衆, 不計豐歉, 多聚米布, 乃於大都之中, 特設安居之會, 大小人民, 惑於邪說, 爭趨舍施, 其不畏邦憲, 耗民作弊, 不可勝言也。 而殿下命臣等若曰: "今興天興德兩寺, 如有作拿推詰事, 必須取旨, 而後乃問, 臺諫使令, 不得入門。" 臣等以爲僧徒旣非八議, 不必奉旨而後句問。 使令專是禁亂, 固無不入之處, 苟僧徒無可詰之罪, 則使令亦無恐動之理, 未審何爲而有是命歟? 且軍資米穀, 本爲餉軍賑飢而設也, 其斂散之方, 不可不謹, 舍利閣幹事僧洪照所貸米五十石, 悉令勿徵。 臣等以爲上項之米, 實是民膏, 不可輕與遊手之徒, 以爲無名之費也。 分土作貢, 國有典則。 山陰陜川二郡所納鐵器, 從僧惠會自願, 代以正鐵, 臣等慮恐收直之際, 姦僧憑藉天威, 貽弊不貲矣。 藏義洞積在松木, 給付興天寺僧, 以爲炊爨之柴, 此誠微物, 不足惜也。 彼僧何緣將此瑣事, 以瀆天聰乎? 臣等又聞太學生徒上書有曰: "以珠玉錦繡造成法衣, 拂子禪棒, 飾用金銀。 又以金銀, 鑄成食器念珠, 以賜行乎。" 此雖狂僭之士難信之言, 果有此賜, 愚民則效, 尙何足怪? 臣等又聞, 將印《藏經》, 以安興天, 緣化之徒, 遂成勸文, 受押懿親, 分往各道, 化楮造墨, 搔擾民間, 爲害滋甚。 臣等以爲經之舊印, 亦且不少, 豈可糜費, 以成無用之物? 況印經之禁, 載在《元典》乎? 度僧之法, 亦在令典, 防禁甚嚴, 歲自戊午以至今年, 役僧給牒, 無慮八千餘人。 維彼緇徒冒禁剃髮, 固已有罪, 豈可縱釋不論, 又從而度之, 以毁成法乎? 軍額之減、民食之耗, 職此之由。 臣等竊伏惟念, 節用愛民, 王政之所先, 未有傷財而惠及於民者也。 惟我國家, 南有島夷, 北連野人, 戰守之備、館穀之需, 誠今日之所急也。 然而遊手逃賦之輩, 成群結隊, 耗民蠹財, 上自宗戚, 下至黎庶, 靡然從風, 如恐不及。 捨此不禁, 其流至於蕩盡資産, 轉于溝壑而後已也, 豈不有累於聖上文明之治乎? 矧今自春徂夏, 連月不雨, 豐稔之期, 尙未可知? 聖上軫慮, 減膳閔雨, 靡神不擧, 其所以謹天戒者至矣, 何獨於僧徒費財害民之事, 莫之禁歟? 非徒不禁, 旬日之間爲僧之旨多矣。 事由雖細, 所係匪輕, 此臣等所以寤寐不寧, 而敢冒天威者也。 伏望殿下渙發兪音, 特垂睿斷, 興天興德二寺居僧, 許令臺諫糾察如舊, 安居之會、《藏經》之印, 卽命停罷; 行乎所受之物、洪照所貸之米, 亦令還納; 惠會納鐵, 不許從願; 其度僧之法, 一依成憲施行, 以副臣等之望, 以著從諫之美。

上覽疏謂曰: "金銀念珠之事, 太學生已言之, 此非予所賜之物, 初欲罪之, 終乃優容, 爾等豈不聞之而猶以此爲說乎? 印經之弊, 若於諸事未辦之前言之, 則吾當停之, 今則諸事已辦, 何可已乎! 安居之會, 外方諸寺, 無不皆然, 何奈獨禁於京中乎? 有寺則有僧, 有僧則安居。 若欲痛禁安居, 則先毁寺社, 然後乃可。" 持平鄭孝康、獻納皇甫恭啓曰: "太學生上疏者, 無慮六百餘人矣。 臣等竊意此輩雖童稚, 皆士家子弟, 聞見甚廣, 豈以虛事上言哉? 故臣等敢言耳。 果如儒生所言, 則金銀乃我國禁物, 請令還收。" 孝康又啓曰: "其印《大藏》, 臣等若早聞, 則何忍含默! 近以安居事由, 問諸禪宗僧海蘭, 海蘭語及印經之事, 又於集賢殿上疏, 有陳藏經摸印之弊, 臣等因此始得知之。 外方安居則臣等未及悉知, 然都下佛事, 若今不禁, 則彼外方何以禁諸?" 上曰: "金銀念珠, 予旣曰非予所賜, 今爾等曰: ‘果如儒生所言, 請令還收。’, 則是反以予言爲不信也。 古之人臣進諫於君者, 未有若是其慢也。" 俄而又謂承政院曰: "承旨誤聽耶? 將命者誤傳耶? 果臺諫眞有是言耶?" 左副承(百)〔旨〕 許詡啓曰: "臣初意皇甫恭乃以此意啓請, 今聞上敎, 更思之, 言必不如此。 臣於其時, 不曾更質, 實臣之罪也。" 上曰: "以爾誤聽啓之, 何必更問於臺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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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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