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에 야인이 침입하니, 황제에게 주달할 것인지를 의논하다
평안도 감사가 치보(馳報)하기를,
"야인(野人) 20여 명이 7월 초10일 여명(黎明)에 강을 건너와서 소훈두(小薰豆) 땅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곧 도승지 신인손(辛引孫)을 명하여 황희(黃喜)·최윤덕(崔閏德)·노한(盧閈) 등에게 가서 의논하기를,
"두서너 해 전에 그들을 정토(征討)한 후에, 황제께서 특별히 조칙을 내려 두 나라가 서로 잘 지내고 서로 침벌(侵伐)하지 않도록 개유(開諭)했으므로, 나는 삼가 황제의 조칙을 받들어, 매양 야인이 우리 나라에 올 때마다 그들을 전과 같이 대우하고 혹은 쌀 양식을 내려 주어서 굶주림을 도와주었는데, 저들은 무휼(撫恤)하는 은혜를 돌아보지도 않고 지난봄에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노략하고 지금 또 이와 같이 하니, 그들이 변경(邊境)을 침범한 근본의 이유를 자세히 갖추어 황제에게 진달(進達)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옛날에 태종(太宗) 때에 야인이 변경을 침범하매, 변장(邊將)이 그들을 다 죽여서 아뢰니, 태종께서 놀라고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야인은 모두 중국에서 관직을 받은 사람인데, 지금 황제에게 주문(奏聞)하지도 않고 다 죽였으니 범죄의 책임이 없을 수가 없다.’ 하면서, 이에 권 황후(權皇后)의 족친되는 박돈지(朴惇之)를 명하여 황제에게 주달(奏達)했더니, 황제께서 주달한 바를 윤허하면서 말하기를, ‘야인이 나에게 대해서도 오히려 무례했는데, 그대 나라에 대해서도 또 침략을 마음대로 행하니, 그 죄는 마땅히 주륙(誅戮)해야 될 것이다. ’고 했으므로, 태종께서 매우 감사히 여겨 기뻐했었다. 지금 대행 황제(代行皇帝)께서 야인의 땅에 한 번 조칙을 내려 개유하여 우리 나라의 인구와 재산을 능히 낱낱이 돌려보내지 못하게 되매, 두 번 조칙을 내려 개유하여 야인의 가재(家財)와 가축(家畜)을 모두 빠짐 없이 돌려보내게 하니,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야인에게는 짐승으로써 대우하고 우리 나라에게는 예의(禮義)로써 대우한 까닭으로, 그 야인에게는 소원하고 박하게 하고, 우리 나라에게는 친근하고 후하게 함이 이와 같았다. 야인 등이 말을 꾸며 연달아 우리 나라를 헐뜯는데, 우리 나라는 야인의 침략을 한 번도 황제에게 주달(奏達)하지 않으니, 마음에 미안한 점이 있다. 그러나, 야인의 처치(處置)를 만약 낱낱이 황제에게 주청(奏請)한다면, 후에는 반드시 으레 떳떳한 일로 삼게 되어 처치가 곤란한 것 같으니, 어찌하면 옳겠는가."
하니, 여러 사람이 아뢰기를,
"의리상으로는 마땅히 황제에게 주문(奏聞)해야 되겠지마는, 그러나 주문하는 내용에 처치한다는 말은 없애고 다만 변경(邊境)을 침범한 사유만 갖추어 아뢸 것이니, 혹시 급변이 있어 비록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묻더라도 황제께서는 반드시 장차 조선이 다시 주문(奏聞)할 것이며, 야인이 노략하기 때문에 부득이하여 이를 했다고 할 것입니다."
하였다. 또 의논하기를,
"전일에 야인 10여 명이 굶주려서 구걸하여 우리 나라에 왔으므로, 나는 그들에게 진휼(賑恤)하고 강변(江邊)에 머물러 두게 하고는 이내 명하기를, ‘저들이 청한다면 모두 다 돌려보내
라. ’고 했는데, 지금 야인들이 와서 우리의 경계를 침범했는데도 오히려 마땅히 돌려보내야 되겠는가."
하니, 여러 사람이 아뢰기를,
"필경에는 마땅히 돌려보내야 되겠지마는, 지금은 저들이 이미 변경을 침범했으니, 의리상 가벼이 내줄 수가 없습니다. 잠깐 머물러 두어 후일을 기다릴 것입니다."
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6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42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平安道監司馳報: "野人二十餘名, 今七月初十日質明越江, 戰于小薰豆地面。" 上卽命都承旨辛引孫, 往議于黃喜、崔閏德、盧閈等曰: "年前征討後, 皇帝特降勑諭, 兩國交好, 不相侵伐。 予欽奉勑諭, 每野人到國, 待之如初, 或賜米糧, 以資飢乏。 彼乃不顧撫恤之恩, 去春率兵來掠, 今又如此。 開具犯邊根由(奉)〔奏〕 達何如? 昔太宗朝, 野人犯邊, 邊將盡殺以聞, 太宗驚恐曰: ‘野人, 皆中朝受職人, 今不奏聞盡殺, 不無罪責。’ 爰命權皇后族親朴(敦)〔惇〕 之奏達, 皇帝允許所奏曰: ‘野人向我, 尙且無禮, 於汝國, 又肆侵掠, 罪當誅戮。’ 太宗極感喜。 今大行皇帝於野人地面, 一降勑諭, 本國人口財産, 未能一一刷還本國, 則再降勑諭, 野人家財頭畜, 悉令無遺刷還。 此無他, 待野人以禽獸, 待我國以禮義, 故其疎數厚薄如此。 野人等構辭, 連訴本國, 本國則野人侵掠, 一不奏達, 於心未安。 然野人處置, 若一一奏請, 則後必例以爲常, 似難處置, 如之何則可?" 僉曰: "義當奏聞, 然奏聞內除處置之辭, 但具犯邊事由。 脫有變急, 雖興兵問罪, 皇帝必將以爲: ‘朝鮮再奏野人虜掠, 不得已而爲之耳。’" 又議曰: "前日野人十數名, 以飢饉丐乞到國, 予使賑恤, 留置江邊, 仍命彼若請之, 竝皆遣還。 令野人來犯我境, 猶當送還乎?" 僉曰: "終當送還, 今則彼已犯邊, 義不可輕與, 姑留以待後日。"
- 【태백산사고본】 22책 6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42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