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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5권, 세종 16년 8월 5일 기유 4번째기사 1434년 명 선덕(宣德) 9년

내이포 등지에 사는 왜인의 처리 문제를 논의하다

임금이 말하기를,

"허조가 아뢰기를, ‘내이포(乃而浦) 등처에 왜인이 많이 와서 사는데, 만호(萬戶) 남우량(南友良)이 부임하는 길에 그 수효를 기록하여 보내라고 청하였더니, 우량이 써서 보내기를, 「갑진년 이후에 와서 사는 수가 남녀 합하여 3백 60명 가량이라.」고 하였사오니, 이것으로서 보면 전에 온 것은 얼마인지 알 수 없사오며, 지금 비록 위엄을 두려워하여 투항하였사오나 마침내 믿을 수는 없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뜰에서 자고 가기를 애걸하는 자가 안방을 꾀한다.」고 하오니, 이제 우리 나라가 융성하게 다스려지는 때를 당하여 왜적의 침노를 족히 염려할 것은 없사오나, 천지의 기운도 오히려 상하고 쇠함이 있고, 제왕(帝王)의 정치도 다스려지고 어지러움이 서로 바뀌어지옵나니, 이제 우리 조정이 극히 다스려졌다 할지라도 천년 후에는 오늘과 같지 않을는지를 어찌 아오리까. 후환을 막고자 하면 마땅히 드러나기 전에 이를 도모하소서.’ 하였으니, 내가 허조의 말을 옳다고 여기나, 그 처리할 적당한 방법을 알지 못하니 어떻게 하면 가할까."

하니, 황희 등이 의논하기를,

"그들이 와서 살기를 허락한 것이 이미 오래었는데, 이제 이르러 거절하고 들이지 아니하기는 때가 늦었습니다. 또 각도에 나누어 두려면 저들이 반드시 싫어할 것이니, 진퇴(進退)가 어렵습니다. 아직 그대로 두되, 신 등이 다만 원하는 것은 금년에 먼저 김해 읍성을 쌓고 다음에 내이포 현성(縣城)을 쌓아서, 만일 왜적의 변이 있거든 백성들로 하여금 옮겨 들어와서 피난하게 하옵소서."

하니, 최윤덕이 아뢰기를,

"현성은 우도(右道) 수군들을 뽑아 쌓게 함이 가합니다."

하였다. 또 의논하기를,

"선대로부터 전하는 문서를 어느 곳에 간직할지 알지 못하겠다."

하니, 황희 등이 아뢰기를,

"선원전(璿源殿)에 간직하여 뒤에 상고하는 증빙(證憑)이 되게 하옵소서."

하매, 모두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65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85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부방(赴防) / 역사(歷史) / 왕실(王室)

○上曰: "許稠啓: ‘乃而浦等處, 倭人多來居之, 因萬戶南友良之赴任, 請書其數以送, 友良書送甲辰年以後來居之數, 男婦共三百六十許。 以此觀之, 已前之來, 未知幾許。 今雖畏威投降, 其心詐諼, 終不可信。 諺曰: 「乞宿門庭者, 謀諸閨房。」 今當盛治之日, 之爲寇, 無足慮矣, 然天地之氣, 尙有盛衰; 帝王之治, 理亂相乘。 今我盛朝, 雖曰極治, 千載之下, 安知不如今日乎? 欲杜後患, 當於不顯是圖。’ 予以言爲是, 然未領其處置之宜, 如之何則可乎?" 等議曰: "許其來居, 今已久矣, 及今拒而不納, 晩矣。 且分置各道, 則彼必生厭, 進退難斷, 姑仍其舊。 臣等但願今年先築金海邑城, 次築乃而浦縣城, 脫有變, 使民移入避患可也。" 崔閏德啓曰: "縣城, 令抄右道水軍築之可也。" 又議曰: "先世相傳文書, 未知藏之何處?" 等曰: "宜藏璿源殿, 以憑後考。" 皆從之。


  • 【태백산사고본】 21책 65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85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부방(赴防) / 역사(歷史) /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