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61권, 세종 15년 9월 17일 병신 2/5 기사 /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형조에서 의심스러운 죄를 조목으로 진술하니, 정부와 육조로 하여금 의논케하다
국역
이 앞서 형조에서 의심스러운 죄를 조목으로 진술하기를,
"진주(晉州) 죄수로 호장 강은(姜隱)의 종 대문(大文)이 도망해 나간 지 이미 3년이었는바, 은이 대문(大文)을 찾아서 붙잡으려 하니, 대문이 돌을 은에게 던져서 거역하고 도망했으며, 선산(善山) 죄수로 강달(姜達)이 본 주인을 배반하고 연창군(延昌君)의 집에 들어가 있으면서, 본 주인의 머리끄덩이를 부여잡아 땅에 자빠뜨리고 머리끄덩이를 짓밟으며, 옆구리와 다리를 집어 차면서 욕하기를, ‘개자식아, 내가 지금도 너의 종이 되느냐. ’고 했으며, 함양(咸陽) 죄수로 이숙번(李叔蕃)의 계집종 소비(小非)가 나이 15세인데, 본 주인이 간통하려는 것을 꺼리어서 칼날로 본 주인 이마빼기를 찔러 상하게 했으며, 전옥(典獄)의 죄수 천외(天外)는 그 주인인 김종혁(金從革)이 천외의 집에 가서 머리끄덩이를 부여잡고 작대기로 때리니, 천외가 빠져나가려고 찼던 칼을 빼어서 종혁의 손가락과 이마와 볼따귀를 찔러서 피가 나게 하고, 또 옷과 소매를 다섯 군데나 찢었으므로 신장(訊杖)을 다섯 차례나 문초하면서 치고, 다섯 차례나 압슬형(壓膝刑)을 가했는데, 모두가 빠져나가려고 그리 했을 뿐이고, 본디부터 살해할 마음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윗 항목의 대문과 강달과 소비 등의 죄는 의심스러워서, 은사하는 조문에 주인을 모살한 것으로 논할 것이 못되오며, 천외는 지금까지 실정을 잡지 못한 채로 의심스러운 죄에 관련되어 있사오니, 놓아서 내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정부와 육조로 하여금 함께 의논하여 아뢰게 하였다. 대문의 죄는, 황희·맹사성·허조·노한·안순·신상·최사강·조계생·김익정·권도·김맹성·정연·박신생·황보인 등이 아 뢰기를,
"그 사형은 감할 수 있겠습니다."
하고, 성억이 아뢰기를,
"비록 모살(謨殺)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돌을 본 주인에게 던지고 거역하였으니 마땅히 사형으로 논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강달의 죄는, 김익정·권도·김맹성·정연 등이 아뢰기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다."
하고, 허조·안순·노한·신상·조계생 등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고, 박신생·황보인은 아뢰기를,
"이미 본 주인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탁하였고, 또 본 주인을 보고도 조금도 두렵고 꺼리는 것이 없이 마음대로 구타하였으니 마땅히 모살(謀殺)로 논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고, 황희·최사강·성억은 아뢰기를,
"형조에 명하여 다시 그 실정을 알아 본 후에 논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다. 소비의 죄는 모두 아뢰기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다."
하였다. 천외의 죄는, 황희·맹사성·허조·안순·노한·최사강·김익정·김맹성·정연 등이 아뢰기를,
"찼던 칼을 빼어서 주인을 찌른 것은 모살하려는 실정이 이미 보이는데, 어찌 가히 형벌을 참고서 자복하지 아니한 예로써 경하게 논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조계생·성억·신상 등은 아뢰기를,
"도망간 종이 주인에게 잡혔으면 울면서 애처롭게 사정하는 것이 가할 것이어늘, 칼을 빼어서 찌르기를 한 번만 한 것도 아니니, 그 본정이 어찌 모살하려는 것과 다름이 있겠습니까. 의당 모살죄에 처하여 종과 주인의 명분을 엄정히 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 천외와 강달의 옥사를 본다면 모두 모살하려던 증거는 없고, 단지 칼과 손발의 차이가 있을 뿐이나 그 주인을 구타한 죄는 같은 것이다. 모두 마땅히 제 집의 어른을 구타한 죄로써 참형으로 논죄할 것인데, 본 조문에, ‘칼을 썼으면 형을 더한다. ’는 말이 없으니, 비록 칼을 썼어도 만약 죽기에 이르지 아니하였다면 본 조목의 법을 내놓고 따로 다른 조문을 찾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칼과 손발에 비록 깊고 얕은 것은 있다 하여도 법에 의하여 죄를 정하는 데에는 의당 경중이 없을 것이니, 만약 이 법을 쓴다면 두 종이 다 은사 받을 예에 해당한 것인데, 이제 의논하기를 칼을 써서 주인을 상해한 자는 은사를 논할 것 없이 극형에 처하려 하고, 손발로 주인을 구타한 자는 은사를 입도록 하여 석방하고 죄주지 않으려 하지마는, 그러나 그 주인을 구타하여 어른을 능멸한 죄악은 같은 것이요, 처음부터 모살하려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역시 같은데, 혹은 용서를 받고 혹은 형벌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말하기를, ‘모두 다 마땅히 모살한 것으로 논하자.’ 하지만, 나는 그 역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니, 가령 은사가 없으면 모살한 것으로 논하여서 참형에 처할 것인가, 주인을 구타한 것으로 논하여 참형에 처할 것인가. 반드시 주인을 구타한 것으로 논할 것이니, 그렇다면 은사(恩赦)를 만나도 반드시 죽이고자 하여 따로 다른 법조문을 찾는다면 가하겠는가. 다시 의논하여서 아뢰게 하라."
하였다.
원문
○先是, 刑曹條陳疑罪曰:
晋州囚戶長姜隱奴大文, 逃出已三年, 隱尋大文欲捕之, 大文以石投隱, 拒而逃之。 善山囚姜達背本主, 投于延昌君之第, 扶執本主頭髮, 使之仆地, 踏頭髮(就)〔蹴〕 脥脚罵曰: "狗子! 吾今亦爲汝奴乎?" 咸陽囚李叔蕃婢小非年十五, 憚本主私焉, 以刃落本主頭頂而傷。 典獄囚天外, 其主金從革到天外戶, 扶執頭髮而杖之, 天外欲脫而走, 拔佩刀刺從革手指及額腮, 傷破出血, 亦裂衣袖五處, 訊杖五次, 押膝五次, 皆曰: "欲其脫走而已, 本無殺害之心。" 上項大文、(姜連)〔姜達〕 、小非等罪疑, 不可以赦文謀殺主論之也。 天外時未得情, 干於疑罪, 放出何如?
令政府諸曹同議以啓。 大文之罪, 黃喜、孟思誠、許稠、盧閈、安純、申商、崔士康、趙啓生、金益精、權蹈、金孟誠、鄭淵、朴信生、皇甫仁曰: "可貸其死。" 成抑曰: "雖非謀殺, 以石投本主而拒之, 則宜以死論。" 姜達之罪, 金益精、權蹈、金孟誠、鄭淵曰: "可宥。" 許稠、安純、盧閈、申商、趙啓生曰: "不可宥。" 朴信生、皇甫仁曰: "旣厭本主, 投托于他。 又見本主, 暫無畏忌, 恣行毆打, 宜以謀殺論。" 黃喜、崔士康、成抑曰: "令刑曹更覈元情後, 更議何如?" 小非之罪, 僉議曰: "可宥。" 天外之罪, 黃喜、孟思誠、許稠、安純、盧閈、崔士康、金益精、金孟誠、鄭淵曰: "拔佩刀刺其主, 謀殺情迹已見, 豈可以忍刑不服輕論乎?" 趙啓生、成抑、申商曰: "逃奴被執於主, 涕泣哀辭可也。 拔刀衝刺非一處, 則其情豈異謀殺? 依謀殺律, 以嚴奴主之分。" 上曰: "看此天外、姜達之獄, 皆無謀殺之迹, 但刃與手足有異, 其毆主之罪一也, 皆當以毆家長律, 論斬矣。 本條無用刃加等之文, 雖用刃, 若不至死, 則不可捨本律別求他條也。 然則刃與手足, 雖有深淺, 依律定罪, 宜無輕重。 若用此律, 則二奴皆在赦例, 今議以用刃傷主者, 勿論赦宥, 欲置極刑; 手足毆主者, 俾蒙赦宥, 釋不治罪。 然其毆主陵犯之惡, 一也; 初無謀殺之心, 亦一也, 而或蒙宥或受刑, 何也? 或曰: ‘皆當以謀殺論也。’ 予亦以爲不然。 假令無赦宥, 則以謀殺論斬乎? 以毆主論斬乎? 必以毆主論矣。 然遇赦宥而必欲殺之, 別求他律可乎? 更議以聞。"
세종실록61권, 세종 15년 9월 17일 병신 2/5 기사 /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형조에서 의심스러운 죄를 조목으로 진술하니, 정부와 육조로 하여금 의논케하다
국역
이 앞서 형조에서 의심스러운 죄를 조목으로 진술하기를,
"진주(晉州) 죄수로 호장 강은(姜隱)의 종 대문(大文)이 도망해 나간 지 이미 3년이었는바, 은이 대문(大文)을 찾아서 붙잡으려 하니, 대문이 돌을 은에게 던져서 거역하고 도망했으며, 선산(善山) 죄수로 강달(姜達)이 본 주인을 배반하고 연창군(延昌君)의 집에 들어가 있으면서, 본 주인의 머리끄덩이를 부여잡아 땅에 자빠뜨리고 머리끄덩이를 짓밟으며, 옆구리와 다리를 집어 차면서 욕하기를, ‘개자식아, 내가 지금도 너의 종이 되느냐. ’고 했으며, 함양(咸陽) 죄수로 이숙번(李叔蕃)의 계집종 소비(小非)가 나이 15세인데, 본 주인이 간통하려는 것을 꺼리어서 칼날로 본 주인 이마빼기를 찔러 상하게 했으며, 전옥(典獄)의 죄수 천외(天外)는 그 주인인 김종혁(金從革)이 천외의 집에 가서 머리끄덩이를 부여잡고 작대기로 때리니, 천외가 빠져나가려고 찼던 칼을 빼어서 종혁의 손가락과 이마와 볼따귀를 찔러서 피가 나게 하고, 또 옷과 소매를 다섯 군데나 찢었으므로 신장(訊杖)을 다섯 차례나 문초하면서 치고, 다섯 차례나 압슬형(壓膝刑)을 가했는데, 모두가 빠져나가려고 그리 했을 뿐이고, 본디부터 살해할 마음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윗 항목의 대문과 강달과 소비 등의 죄는 의심스러워서, 은사하는 조문에 주인을 모살한 것으로 논할 것이 못되오며, 천외는 지금까지 실정을 잡지 못한 채로 의심스러운 죄에 관련되어 있사오니, 놓아서 내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정부와 육조로 하여금 함께 의논하여 아뢰게 하였다. 대문의 죄는, 황희·맹사성·허조·노한·안순·신상·최사강·조계생·김익정·권도·김맹성·정연·박신생·황보인 등이 아 뢰기를,
"그 사형은 감할 수 있겠습니다."
하고, 성억이 아뢰기를,
"비록 모살(謨殺)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돌을 본 주인에게 던지고 거역하였으니 마땅히 사형으로 논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강달의 죄는, 김익정·권도·김맹성·정연 등이 아뢰기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다."
하고, 허조·안순·노한·신상·조계생 등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고, 박신생·황보인은 아뢰기를,
"이미 본 주인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탁하였고, 또 본 주인을 보고도 조금도 두렵고 꺼리는 것이 없이 마음대로 구타하였으니 마땅히 모살(謀殺)로 논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고, 황희·최사강·성억은 아뢰기를,
"형조에 명하여 다시 그 실정을 알아 본 후에 논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다. 소비의 죄는 모두 아뢰기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다."
하였다. 천외의 죄는, 황희·맹사성·허조·안순·노한·최사강·김익정·김맹성·정연 등이 아뢰기를,
"찼던 칼을 빼어서 주인을 찌른 것은 모살하려는 실정이 이미 보이는데, 어찌 가히 형벌을 참고서 자복하지 아니한 예로써 경하게 논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조계생·성억·신상 등은 아뢰기를,
"도망간 종이 주인에게 잡혔으면 울면서 애처롭게 사정하는 것이 가할 것이어늘, 칼을 빼어서 찌르기를 한 번만 한 것도 아니니, 그 본정이 어찌 모살하려는 것과 다름이 있겠습니까. 의당 모살죄에 처하여 종과 주인의 명분을 엄정히 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 천외와 강달의 옥사를 본다면 모두 모살하려던 증거는 없고, 단지 칼과 손발의 차이가 있을 뿐이나 그 주인을 구타한 죄는 같은 것이다. 모두 마땅히 제 집의 어른을 구타한 죄로써 참형으로 논죄할 것인데, 본 조문에, ‘칼을 썼으면 형을 더한다. ’는 말이 없으니, 비록 칼을 썼어도 만약 죽기에 이르지 아니하였다면 본 조목의 법을 내놓고 따로 다른 조문을 찾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칼과 손발에 비록 깊고 얕은 것은 있다 하여도 법에 의하여 죄를 정하는 데에는 의당 경중이 없을 것이니, 만약 이 법을 쓴다면 두 종이 다 은사 받을 예에 해당한 것인데, 이제 의논하기를 칼을 써서 주인을 상해한 자는 은사를 논할 것 없이 극형에 처하려 하고, 손발로 주인을 구타한 자는 은사를 입도록 하여 석방하고 죄주지 않으려 하지마는, 그러나 그 주인을 구타하여 어른을 능멸한 죄악은 같은 것이요, 처음부터 모살하려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역시 같은데, 혹은 용서를 받고 혹은 형벌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말하기를, ‘모두 다 마땅히 모살한 것으로 논하자.’ 하지만, 나는 그 역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니, 가령 은사가 없으면 모살한 것으로 논하여서 참형에 처할 것인가, 주인을 구타한 것으로 논하여 참형에 처할 것인가. 반드시 주인을 구타한 것으로 논할 것이니, 그렇다면 은사(恩赦)를 만나도 반드시 죽이고자 하여 따로 다른 법조문을 찾는다면 가하겠는가. 다시 의논하여서 아뢰게 하라."
하였다.
원문
○先是, 刑曹條陳疑罪曰:
晋州囚戶長姜隱奴大文, 逃出已三年, 隱尋大文欲捕之, 大文以石投隱, 拒而逃之。 善山囚姜達背本主, 投于延昌君之第, 扶執本主頭髮, 使之仆地, 踏頭髮(就)〔蹴〕 脥脚罵曰: "狗子! 吾今亦爲汝奴乎?" 咸陽囚李叔蕃婢小非年十五, 憚本主私焉, 以刃落本主頭頂而傷。 典獄囚天外, 其主金從革到天外戶, 扶執頭髮而杖之, 天外欲脫而走, 拔佩刀刺從革手指及額腮, 傷破出血, 亦裂衣袖五處, 訊杖五次, 押膝五次, 皆曰: "欲其脫走而已, 本無殺害之心。" 上項大文、(姜連)〔姜達〕 、小非等罪疑, 不可以赦文謀殺主論之也。 天外時未得情, 干於疑罪, 放出何如?
令政府諸曹同議以啓。 大文之罪, 黃喜、孟思誠、許稠、盧閈、安純、申商、崔士康、趙啓生、金益精、權蹈、金孟誠、鄭淵、朴信生、皇甫仁曰: "可貸其死。" 成抑曰: "雖非謀殺, 以石投本主而拒之, 則宜以死論。" 姜達之罪, 金益精、權蹈、金孟誠、鄭淵曰: "可宥。" 許稠、安純、盧閈、申商、趙啓生曰: "不可宥。" 朴信生、皇甫仁曰: "旣厭本主, 投托于他。 又見本主, 暫無畏忌, 恣行毆打, 宜以謀殺論。" 黃喜、崔士康、成抑曰: "令刑曹更覈元情後, 更議何如?" 小非之罪, 僉議曰: "可宥。" 天外之罪, 黃喜、孟思誠、許稠、安純、盧閈、崔士康、金益精、金孟誠、鄭淵曰: "拔佩刀刺其主, 謀殺情迹已見, 豈可以忍刑不服輕論乎?" 趙啓生、成抑、申商曰: "逃奴被執於主, 涕泣哀辭可也。 拔刀衝刺非一處, 則其情豈異謀殺? 依謀殺律, 以嚴奴主之分。" 上曰: "看此天外、姜達之獄, 皆無謀殺之迹, 但刃與手足有異, 其毆主之罪一也, 皆當以毆家長律, 論斬矣。 本條無用刃加等之文, 雖用刃, 若不至死, 則不可捨本律別求他條也。 然則刃與手足, 雖有深淺, 依律定罪, 宜無輕重。 若用此律, 則二奴皆在赦例, 今議以用刃傷主者, 勿論赦宥, 欲置極刑; 手足毆主者, 俾蒙赦宥, 釋不治罪。 然其毆主陵犯之惡, 一也; 初無謀殺之心, 亦一也, 而或蒙宥或受刑, 何也? 或曰: ‘皆當以謀殺論也。’ 予亦以爲不然。 假令無赦宥, 則以謀殺論斬乎? 以毆主論斬乎? 必以毆主論矣。 然遇赦宥而必欲殺之, 別求他律可乎? 更議以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