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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1권, 세종 15년 7월 21일 임신 2번째기사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황희·맹사성·권진 등을 불러 강녕전·경회루·역상 등에 관해 논의하다

영의정 황희·좌의정 맹사성·우의정으로 치사(致仕)한 권진 등을 불러 일을 의논하였다.

1. "강녕전(康寧殿)은 나만이 가질 것이 아니고 그것이 만대에 전할 침전(寢殿)인데, 낮고 좁고 또 어두워서 만일 늙어서까지 이 침전에 거처하면 반드시 잔글씨를 보기가 어려워서 만 가지 정무를 처결할 수가 없을 것이니, 내가 고쳐 지어서 후세에 전해 주고자 하는데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 아뢰기를,

"좋습니다."

하였다.

1. "경회루(慶會樓)는 영건한 지 오래 되지 않았는데, 처마를 받친 도리[棟]가 벌써 눌리어 부러졌으니 처마받침을 수리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하니, 모두 아뢰기를,

"벌써 눌리어 부러졌으면 불가불 수리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1. "예로부터 제왕은 다 역상(曆象)을 중하게 여기어서, 요(堯)임금희씨(羲氏)·화씨(和氏)에게 명하여 백공(百工)을 다스리었고, 순(舜)임금은 선기옥형(璿璣玉衡)에 의거하여 칠정(七政)을 고르게 하였는지라, 내가 간의(簡儀) 만드는 것을 명하여 경회루 북쪽 담안에다가 대(臺)를 쌓고 간의를 설치하게 하였는데, 사복시(司僕寺) 문안에다가 집을 짓고 서운관에서 번들어 숙직하면서 기상을 관측하게 함이 어떻겠는가."

하니, 등이 아뢰기를,

"너덧 간 집을 짓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1. "장의동(藏義洞)에 있는 태종 잠저(潛邸)의 옛터가 이제 더부룩한 풀밭이 되어서 내가 차마 볼 수가 없으니, 다시 궁전을 지어서 부왕의 진영(眞影)을 모시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 아뢰기를,

"원묘(原廟)를 세워서 만대에 가도록 법전을 정하였으니, 따로 궁전을 설치할 수가 없사옵고, 다만 소나무나 심도록 하심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1. "경복궁에 4대문이 갖추지 못하여 태조 때에 북문을 두고 목책을 설치한 것을 그뒤에 막아 버리고 성을 쌓았는데, 내가 다시 북문을 낼까 하는데 어떤가."

하니, 모두가

"좋습니다."

하였다.

1. "근자에 글을 올리어 지리를 배척하는 사람이 더러 있으나, 우리 조종께서 지리로서 수도를 여기다 정하셨으니 그 자손으로서 쓰지 않을 수 없다. 정인지(鄭麟趾)는 유학자인데, 역시 지리를 쓰지 않는 것은 매우 근거 없는 일이라고 말하였고, 나도 생각하기를 지리의 말을 쓰지 않으려면 몰라도, 만일 부득이하여 쓰게 된다면 마땅히 지리의 학설을 따라야 할 것인데, 지리하는 자의 말에, ‘지금 경복궁 명당에 물이 없다. ’고 하니, 내가 궁성의 동서편과 내사 복시(內司僕寺)의 북지(北地) 등처에 못을 파고 도랑을 내어서 영제교(永濟橋)의 흐르는 물을 끌고자 하는데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 아뢰기를,

"좋습니다."

하였다.

1. "경복궁의 오른 팔은 대체로 모두 산세(山勢)가 낮고 미약하여 널리 헤벌어지게 트이어 품에 안는 판국이 없으므로, 남대문 밖에다 못을 파고 문안에다가 지천사(支天寺)를 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나는 남대문이 이렇게 낮고 평평한 것은 필시 당초에 땅을 파서 평평하게 한 것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이제 높이 쌓아 올려서 그 산맥과 연하게 하고 그 위에다 문을 설치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또 청파역(靑坡驛)에서부터 남산에까지 잇닿은 산맥의 여러 산봉우리들과 흥천사(興天寺) 북쪽 봉우리 등처에 소나무를 심어 가꿔서 무성하게 우거지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가

"좋습니다."

하였다.

1. "왼쪽 팔 되는 가각고(架閣庫) 서편 산맥이 냇물의 개갬으로 인하여 무너지고 떨어진 곳이 매우 많으므로 이양달(李陽達)이 여러 번 청하였거니와, 내가 성을 쌓고 냇물을 돌리고자 하는데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가,

"좋습니다."

하였다.

1. "궁성 북쪽 주산의 내맥이 행인의 통로가 됨이 마땅치 못하므로, 담을 쌓아 막고자 하는데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가

"좋습니다마는 무릇 이런 공사들을 일시에 한목에 시행하는 것이 불가하오니, 그 선후와 완급을 참작하여 순차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황희(黃喜)·노한(盧閈)·신상(申商)·김자지(金自知) 등이 지리 아는 사람을 데리고서 못을 팔 곳과 소나무 심을 곳을 가 보게 하라."

하였다. 또 의논해 말하기를,

"권도(權蹈)가 상서(上書)하여 말하기를, ‘혹시 호걸이 난다면 나라의 이익이 아니다.’ 하고, ‘이 말을 남에게서 들었다. ’고 하였는데, 그 소위 남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인지 도(蹈)에게 묻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가 아뢰기를,

"가 제 생각을 가지고 말씀 올린 것이라면 비록 옳지 않다라도 묻지 않는 것이 가하지만, 근거 없는 말을 남에게서 전해 듣고서 글을 올렸을 것 같으면, 그 말했다는 사람을 묻는 것이 가합니다."

하여, 를 불러 그것을 물으니, 가 아뢰기를,

"상호군 박연(朴堧)이 신한테 말하기를, ‘이제 승문원의 터를 살펴본 것은 필시 호걸이 날 것을 막으려고 살펴본 것이리라.’ 하기에, 신이 그 말을 듣고 상소한 것입니다."

하매, 을 불러서 물으니, 이 아뢰기를,

"한(漢)나라 역사에 ‘동방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 ’고 한 말이 기재되어 있으므로, 이제 승문원 터를 살펴본 것을 신의 망령으로 호걸의 날 것을 의심하여 살펴본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에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도 또한 서생으로서 어찌 사리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망령되게 간사한 생각을 내었느냐."

하니, 이 황공하고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는지라, 임금이 말하기를,

"을 요망스러운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게 한 죄로 벌하는 것이 마땅하나, 그러나 늙은 서생이 경중을 모르고서 망발한 것이고, 또 아악(雅樂)을 전문으로 맡아서 공이 없지 아니하므로 다만 그 벼슬만을 파직하고, 그대로 악학에 출사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61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94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과학-천기(天氣)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농업-임업(林業) / 건설-토목(土木) / 역사-고사(故事) / 인사-임면(任免)

○召領議政黃喜、左議政孟思誠、右議政仍令致仕權軫等議事。 一。 "康寧殿, 非予私有, 乃傳之萬世之寢殿也, 而卑陜且暗。 若至老耄居此殿 則必難見細札, 不能處決萬機, 予欲改造, 傳之後世, 如何?" 僉曰: "可。" 一。 "慶會樓營建未久, 補簷之棟已壓折, 欲改補簷, 如何?" 僉曰: "已壓折, 則不可不改。" 一。 "自古帝王, 皆重曆象, , 允釐百工; 在璣衡, 以齊七政。 予命製簡儀, 於慶會樓北垣墻之內, 築臺設簡儀, 欲構屋于司僕門內, 使書雲觀入直看候, 如何?" 等曰: "構四五楹爲便。" 一。 "藏義洞, 太宗潛邸舊址, 今爲茂草, 予不忍見, 復作宮室, 以安父王之眞, 如何?" 僉曰: "立原廟, 定爲萬世之典, 不可別置宮宇, 但令栽松爲便。" 一。 "景福宮未備四門, 太祖時置北門設木柵, 其後塞之而築城。 予欲復置北門, 如何?" 僉曰: "可。" 一。 "近者上書, 排斥地理者有之, 然我祖宗以地理而定都于此, 則其後嗣不可不用。 鄭麟趾儒者也, 亦曰: ‘不用地理, 甚爲無據。’ 予以爲地理之說, 不用則已, 如不得已而用之, 則宜從地理之(設)〔說〕 。 地理者曰: ‘今景福宮明堂無水。’ 予欲宮城東西及內司僕北池等處, 鑿池開川, 引流永濟橋, 如何?" 僉曰: "可。" 一。 "景福宮右臂, 大抵皆山勢低微, 廣闊通望, 無有抱局, 故於南大門外鑿池, 於門內置支天寺, 爲此也。 予以爲南大門如此低平者, 必初掘土平之也。 今欲高築, 連其山脈, 置門於上, 如何? 且自靑坡驛以至南山連脈諸峯及興天寺北峰等處, 栽植松木, 使之茂翳, 如何?" 僉曰: "可。" 一。 "左臂架閣庫西邊山脈, 爲川水所激, 頹落頗多, 李陽達屢請之。 予欲築城濬川, 如何?" 僉曰: "可。" 一。 "宮城北面主山來脈, 行人通路未便, 予欲築墻防塞, 如何?" 僉曰: "可。 凡此工役, 不可一時竝擧, 酌其先後緩急, 漸次除治。" 上曰: "明日黃喜盧閈申商金自知等, 率地理人, 往觀鑿池栽松之處。" 又議曰: "權蹈上書曰: ‘或生豪傑, 非社稷之利也。’ 此言聞之於人, 所謂人者何人, 問於何如?" 僉曰: "自出己意上言, 則雖不中, 不問可也。 無根之言, 傳聞於人而上書, 則問其所言之人可也。" 召問之, 曰: "上護軍朴堧與臣言曰: ‘今審承文院之基, 必是防豪傑之出而相之也。’ 臣聞此言而上書。" 召問之, 曰: "史載東方有天子氣之語, 今審視承文院之基, 臣妄意疑豪傑之出而相之也, 故言之於。" 上曰: "汝亦書生, 何不知事之根本, 而妄生邪意耶?" 惶惑無地。 上曰: "罪以妖言惑衆之律可矣。 然老書生不知輕重而妄發, 且專掌雅樂, 不無功焉, 只罷其職, 使之仍仕樂學。"


  • 【태백산사고본】 19책 61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94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과학-천기(天氣)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농업-임업(林業) / 건설-토목(土木) / 역사-고사(故事)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