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태종의 유복지친과 종척을 충의위에 붙일 것을 세 의정과 밀의하다
임금이 안숭선으로 하여금 세 의정에게 밀의(密議)시키기를,
"태조와 태종의 유복지친(有服之親)이 함흥 땅에 많이 사는데, 태조께서 개국(開國)하자 변고(變故)를 많이 당하여 생각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였고, 태종께서도 겸양(謙讓) 하시와 벼슬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과인에 이르러서도 복(服)을 다한 친족에게 벼슬을 다 주기 어려웠다. 당(唐) 고조(高祖)는 동성(同姓)을 널리 봉(封)하자 봉덕이(封德彝)가 그르다고 하였고, 송 신종(宋神宗)은 은혜가 단문(袒聞)의 친족에게 미쳐서 이름을 주고 벼슬을 제수하자,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일컬었으니, 지금 태조·태종의 유복지친에게도 모두 벼슬을 주고 또 전토를 줌이 어떨까. 또 한창수(韓昌壽)의 아우 융전(隆田)은 바로 신의 왕후(神懿王后)의 동생인데, 첨설 사재 부정(添設司宰副正)으로서 【다만 그 직(職)을 주고 그 벼슬에 근무하지 아니하는 것을 첨설이라고 한다. 】 함흥에 물러가서 늙었고, 그 형 검한성윤(檢漢城尹) 금강(金剛)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하여 죽은 뒤에 추증(追贈)하였으니, 지금 융전에게 동지돈녕(同知敦寧)을 주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옛날 환조(桓祖)의 후손이 종친의 반열(班列)에 있었는데, 하윤(河崙)이 태종조 때에 말하기를, ‘태조의 후손으로부터 종친의 반열에 두어 원근(遠近)과 친소(親疎)를 분별하소서.’ 하여, 태종께서 드디어 법을 세워 분별하였으나, 지금 생각하면, 종친으로 종친의 반열에 두기에 마땅하지 못한 사람을 내가 다 알지 못하여, 혹 임명해 쓸 때에 빠뜨렸으므로 충의위(忠義衛)에 붙이고자 하나, 만일 혹 불가하다면, 별도로 붙일 곳을 설립하는 것이 어떨까."
하니, 황희·권진 등이 아뢰기를,
"역대(歷代)를 상고하건대, 혹은 종척(宗戚)을 중히 하여 일과 권세를 전임하고, 혹은 친한 연고를 혐의하여 벼슬을 주지 아니하였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종친을 친목함은 천리(天理)와 인정에 합하는 지극한 도리입니다. 만일 재능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같이 서용하고, 진실로 그 재주가 없으면 작(爵)을 준 뒤에 시골에 한가롭게 물러가 살게 함이 가하옵니다. 또 함흥의 진황 전지(陳荒田地)를 한 사람마다 3, 4결(結) 혹은 4, 5결을 주고 전조(田租)를 없애어 특별한 은혜를 내리옵소서. 또 융전(隆田)에게 벼슬을 주는 일은, 또한 전하의 사의(私意)가 아니고, 실은 종척을 돈목(敦睦)하는 공의(公義)이오니, 마땅히 벼슬을 더하여 은의(恩義)를 보일 것입니다. 충의위(忠義衛)는 오로지 공신(功臣)의 후손을 위하여 설치한 것입니다. 또 별도로 붙일 곳을 설립하면 다른 날에 자손이 많아서 후폐(後弊)가 생길까 두렵사오니, 그것보다는 예전대로 재능(才能)이 있는 이를 골라서 쓰는 것이 가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그 말을 모두 좇고, 태조·태종의 유복지친을 기록해 아뢰도록 명하였다. 숭선이 아뢰기를,
"밖에 있는 사람을 혹 잊을까 두렵사오니, 원컨대 함길도 감사로 하여금 비밀히 물어서 아뢰게 하옵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조말생이 배사(拜辭)할 적에 내가 마땅히 친히 전교하겠다."
하고, 그 뒤에 또 내전(內傳)하기를,
"태조와 태종의 유복지친(有服之親)이 지위가 낮고 미약하다는 말을 들으니 충심으로 미안스럽다. 전일의 친교(親敎)에 의하여 당자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고, 재능(才能)과 고하(高下)를 비밀히 알아서 아뢰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59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52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군사-중앙군(中央軍) / 농업-전제(田制) / 역사-고사(故事)
○上令安崇善密議于三議政曰: "太祖、太宗有服之親, 多居咸興之地, 太祖開國, 多値變故, 念不及此。 太宗又謙讓, 不授官爵, 以至寡躬服盡之親, 難於盡授官爵。 唐 高祖廣封同姓, 封德彝非之。 宋 神宗恩及袒免之親, 賜名授爵, 人稱其美。 今欲太祖、太宗有服之親, 皆授官爵, 又給土田, 何如? 且韓昌壽之弟隆田, 卽神懿王后之(第)〔弟〕 也。 以添設司宰副正, 【只授其職牒, 不仕其官, 謂之添設。】 退老咸興, 其兄檢漢城尹金剛, 予未及知, 卒後追贈。 今欲授隆田同知敦寧, 何如? 昔日桓祖之後, 在宗親之列, 河崙言於太宗朝曰: ‘自太祖之後, 在宗親之列, 以別遠近親疎之分。’ 太宗遂立法以別之, 然今思之, 宗親不宜在宗親之列者, 予未盡知, 或遺於任用之時, 欲屬於忠義衛, 如或不可, 別立屬處何如?" 黃喜、權軫曰: "稽諸歷代, 或重宗戚, 專任事權, 或嫌親故, 不授以官。 臣等以爲敦睦親親, 合於天理人情之至, 如有才幹, 依他敍用, 苟無其才, 授爵之後, 退閑鄕曲可矣。 又於咸興陳荒田地, 每一人給三四結或四五結, 除田租以垂特恩。 且授職隆田, 亦非殿下之私意, 實是敦睦之公義, 宜加官爵, 以示恩義。 若忠義衛則全爲功臣之後而設也, 又別設屬處, 則他日字孫衆多, 恐生後弊, 莫若仍舊, 擇其才能而用之可也。" 上皆從之, 命錄太祖、太宗有服之親以啓。 崇善啓曰: "在外之人, 恐或有遺忘, 乞令咸吉道監司, 密問以啓。" 上曰: "趙末生之拜辭, 余當親敎。" 其後又內傳曰: "聞太祖、太宗有服之親, 卑微沈滯, 中心未安, 依前日親敎, 不使當身知之, 才幹高下, 密問以啓。"
- 【태백산사고본】 18책 59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52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군사-중앙군(中央軍) / 농업-전제(田制)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