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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50권, 세종 12년 11월 24일 신유 1번째기사 1430년 명 선덕(宣德) 5년

허조가 형조에서 형을 집행하는 것을 신중히하게 할 것을 건의하다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찬성 허조(許稠)가 아뢰기를,

"지금 중앙과 지방에서 옥(獄)을 다루는 관리가 형을 경하게 하려고는 힘쓰지 않고 지나치게 그 족속들에게까지 파급하여 죄가 없는 자도 태장(笞杖)을 맞는 수가 있으며, 경범자도 중한 형을 받게 됩니다. 신이 밤중에 일어나 앉아서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습니다마는 형이란 것은 벗어날 수가 없고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형조에서 직원을 더 늘려서 법조문을 상세히 조사하여 형을 집행하는 것을 신중히 하여 백성의 생명을 중히 여기게 하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의 말이 옳도다. 형벌은 성인이 매우 중히 여기어 어쩔 수 없을 때에 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덕으로 감화시키는 정치를 하지도 못하고, 또 형벌을 쓰지도 않는다면 질서가 무너질까 염려된다."

하였다. 조(稠)가 아뢰기를,

"전혀 형벌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밝게 하여 신중히 할 것을 노력할 뿐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수긍하였다.

조(稠)가 아뢰기를,

"공사 비자(公私婢子)로서 갑오년 6월 28일 이후에 양민에게 시집가서 출생한 자를 3개년마다 한 번씩 호적을 만들게 하고 있사온데, 지금 기일을 정하여 서류를 올려서 추고(推考)하도록 허락하고 있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그들이 스스로 소청(訴請)하기를 기다려서 이를 처리한다면 좋겠사오나, 기한을 정하여 소청하기를 권유하면 곧 집집마다 노예와 주인이 서로 고소하는 풍속이 생길 것이오며, 또한 사람을 여덟 달 만에 낳는 수도 있사오니, 양민의 남편에게 시집가서 출생한 일자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가 매우 어려워, 소송을 처결하는 관리가 이로 인하여 죄를 범하는 자도 많을 것이며, 노예와 주인이 서로 고소하는 자가 벌떼처럼 일어나서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풍속은 백성이 수령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공경하지 아니하며, 어린이가 어른을 공경하지 아니하며, 천한 사람이 귀한 사람을 공경하지 아니하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니 아니하니 극히 한심한 노릇입니다. 이제 또 주인을 고발하기를 권유하는 것은 작은 실수가 아닙니다. 옛 사람도 말하기를, ‘집안이 잘되어야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 하였습니다. 집집마다 주인을 고발하는 풍속이 생긴다면 아무리 식량이 풍족한들 어떻게 잘 먹게 되겠습니까. 신은 밤중이라도 이런 데에 생각이 미치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찍 일어나서 아뢰는 바입니다. 바라옵건대, 임금께서는 깊이 생각하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한 바는 옳도다. 그러나 양민에게 시집간 사람에 대하여 그 시기의 전후를 밝히는 것이 어찌 어렵겠는가. 이번 기회에 밝게 구별하여 두면 뒤에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매, 허조가 아뢰기를,

"그러면 갑오년 이전으로 다시 2, 3년을 물려서 기한을 정하옵소서. 기한을 멀리 두면 곧 천민이 양민이 되기로서니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하였다. 조(稠)가 물러나 가니, 임금이 대언(代言)들에게 이르기를,

"의 말이 옳도다. 기한을 정하는 법은 사실 옳지 못하니, 다시 토의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50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73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법(司法) / 신분(身分)

○辛酉/受常參, 視事。 贊成許稠啓: "今中外治獄之吏, 不務省刑, 濫延支黨, 無罪者或被笞杖, 輕罪者亦被重刑。 臣中夜而坐, 反覆思之, 刑者不可復脫, 死者不可復生。 願於刑曹加設官員, 精考律文, 克愼用刑, 以重民命。" 上曰: "卿言是矣。 刑罰, 聖人所甚重, 不(待)〔得〕 已然後用之。 然旣不能以德治之, 又不用刑, 吾恐紀綱陵夷。" 曰: "豈可專不用刑? 但務明愼而已。" 上然之。 又啓: "公私婢子甲午六月二十八日以後嫁良夫所生, 三年一次成籍, 今許令限日納狀推考。 臣以爲待其自訴, 然後聽理則可矣, 定限勸訴, 則家家有奴主相訴之風。 且人或有八朔而生者, 嫁良夫所生日限眞僞, 甚爲難辨。 聽理之官, 因此亦多有犯罪者, 而奴主相訴者蜂起, 不可遏矣。 當今風俗, 民不畏守, 卑不敬尊, 幼不敬長, 賤不敬貴, 下不敬上, 深可痛也。 今又勸訴主, 則非小失也。 古人有曰: ‘家齊則國治。’ 家家有訴主之風, 則雖有粟, 惡得而食諸? 臣中夜興懷, 耿耿不能寐, 夙興以啓, 請上深思之。" 上曰: "所言是矣。 然嫁良夫者, 辨其限前後, 豈難哉? 此時明辨, 則後無難矣。" 曰: "然則甲午年以前, 更退二三年爲限。 期限寬則雖賤爲良, 何害?" 退, 上謂代言等曰: "言是矣。 定限之法, 實非也, 更議以聞。"


  • 【태백산사고본】 15책 50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73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법(司法) / 신분(身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