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이 세자로서 입조했을 때의 군신간의 예를 대신들과 논의하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원민생(元閔生)에게 들으니, 양녕(讓寧)이 세자가 되어 중국에 입조(入朝)했을 때에, 따라간 재상이 혹 세자의 뒤에 앉기도 하고 혹 앞에 서기도 했었는데, 중국 사람이 보고 웃더라고 하였다. 재상이 세자를 공경하여 꿇어앉아 말하면 세자 역시 공경하여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에도 태자가 뜰에 내려서 사대부가 절하는 것을 답례한 일이 있으니, 이로써 말한다면 서거나 앉거나 상관없을 것 같은데, 우리 나라 재상이 이로써 웃음을 당했다. 만약 세자가 친왕(親王)·군왕(郡王)·요동 도사(遼東都司)와 상대해 섰을 적에는 재상이 꿇어앉아 말함이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하니, 영의정 이직(李稷)과 이조 판서 허조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하고, 허조가 또 계하기를,
"신이 전에 양녕 대군을 따라 중국에 입조(入朝)하였는데, 예궐(詣闕)할 때에 말[馬]이 없어서 도보로 다녀왔기 때문에, 몸이 곧 피곤하여 물러나와 꿇어앉았더니, 군사들이 같은 소리로 비웃더이다. 그러나 꿇어앉는 예는 주문공(朱文公)이 말한 것이니 신의 마음에 의혹되지 않습니다. 또 중국의 예법이 옛적과 합치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장례(葬禮)만 하더라도 ‘허수아비로라도 순장(殉葬)하면 후손이 끊어진다. ’는 옛말은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것인데, 지금 태종 황제의 장사에 궁녀 15인을 순장(殉葬)하고, 반우(反虞)하는 날에 풍악을 울려 시체를 즐겁게 했다고 하니, 이와 같은 것은 비록 중국의 일이라도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30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9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上曰: "吾曾聞於元閔生, 曰: ‘讓寧爲世子入朝時, 隨從宰相, 或坐於世子後, 或立於前, 中朝人笑之。’ 凡宰相者, 敬世子跪而言之, 則世子亦敬而答之, 故古有太子下庭答士大夫之拜者。 以此言之, 或坐或立, 似無妨也, 而我國宰相以此見笑。 若世子與親王、郡王、遼東都司相對而立, 宰相跪而言之, 吾以爲得矣。" 領議政李稷及吏曹判書許稠對曰: "唯。" 稠因啓曰: "臣昔從讓寧入朝, 當詣闕之時, 因無馬徒行, 身卽勞困, 退而危坐, 軍士同聲笑之。 然危坐之禮, 朱文公言之, 臣心不惑。 且中朝之禮, 有不合於古者多矣。 至於葬禮, 雖童稚, 猶知作俑無後之語, 而今太宗皇帝之葬, 殉以宮女十五人, (反)〔返〕 虞之日, 動樂娛尸。 如此者, 雖中朝不足法也。"
- 【태백산사고본】 10책 30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9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