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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25권, 세종 6년 7월 11일 갑신 2번째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부원군 문충공 하윤에게 교서를 보내 태종의 배향 공신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다

태종의 배향 공신(配享功臣)에게 그 집 사당(祠堂)에 제사를 내리었다.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문충공(文忠公) 하윤(河崙)에게 제사하는 교서(敎書)에,

"왕은 말하노라. 원수(元首)와 고굉(股肱)이 그 큰 사업을 이루었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죽은 뒤에라도 의당 만대에 배향(配享)할 것이라. 이는 고금의 좋은 법칙이요, 국가의 의당한 법규이라. 경은 산천의 영기(靈氣)를 탔고 동량(棟樑)의 큰 재목이라. 학문은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다 알았고, 식견은 하늘과 땅을 통하였다. 치고 때리는 것을 진정(鎭定)하는 데에는 태산과 같이 높고 무거웠으며, 크고 작은 것을 함유(涵濡)함에는 창해(滄海)와 같은 넓은 포용(包容)이라. 깊고 부드러우면서도 지키는 것이 있고, 바르고 곧아서 부화(浮華)한 것이 없었다. 오직 근본을 안에서 북돋운 것이 확실하게 굽히지 않는 지조가 있으므로 사업에 나타난 것이 넉넉히 여유가 있는 것이다. 이미 정사(定社)할 때에 공을 세우고, 또 좌명(佐命)030) 하던 날에 맹세에 참여하여, 우리 태종께서 의지하고 중하게 여기시어, 경진년부터 국가의 책임을 맡고 문형(文衡)을 주장하여, 네 번 영상(領相)이 되어 더욱 좋은 계획을 펴서, 무릇 임금을 높이고 백성을 덮어 줄 수 있는 것은 시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고, 경제(經濟)의 계책으로 임금을 돕고 밝히는 공적을 거두어서 20년 동안에 백성이 은성(殷盛)하고 물질이 풍부하여 국가를 반석같이 든든한 데에 올려놓았다. 더군다나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글을 올려 사명을 다하니, 천자가 아름답게 여기어 명령을 내려 내가 왕통을 이을 것을 승인하여 주셨으니, 진실로 시기를 알고 변통할 줄 아는 자가 아니면 능히 이 같을 수가 있겠는가. 참으로 세상을 맡을 수 있는 재주이고 제왕을 도울 수 있는 그릇이라. 이제 장차 우리 태종을 종묘에 부묘(祔廟)하여 모실 때에 배향할 신하를 널리 물으니, 모두가 말하기를 경(卿)이라 하니, 진실로 내 마음에 합하는지라, 이에 경을 묘정(廟庭)의 제사에 배향하게 하니, 아아, 아름다운 공적을 길이 세상 떠난 뒤에도 잊을 수 없어, 이 밝은 제사를 누리게 하여 하늘에 다하기까지 변함이 없게 하리라."

하였고, 한산 부원군(漢山府院君) 충무공(忠武公) 조영무(趙英武)를 제사하는 교서에,

"왕은 말하노라. 계획을 짜서 나라를 안정하는 것은 실로 장상(將相)의 큰 공로요, 덕을 높이고 공을 갚는 것은 제왕으로서 좋은 법전이라. 경은 천품이 영특하고 굳세며, 그릇이 크고 깊었다. 성질이 충성되고 부지런하여, 오직 나라만을 생각하고 몸은 돌보지 아니하는 절개가 있고, 몸가짐이 엄격하고 신중하여 웅대하고 의젓한 옛사람의 풍도가 있었다. 진실로 가히 나라에 이익되고 백성이 편할 것이라면 모두 다 몸을 버리고 힘을 다하였다. 일찍부터 태조를 좇아서 길이 한 마음을 바쳤었고, 〈위화도에서〉 회군(回軍)할 때에는 대의(大義)에 참가하여 거사하였고, 개국할 때에는 기특한 공로를 성취시켰다. 무인년에는 권력을 가진 간신들이 서로 연결하여 어린 것[李芳碩]을 내세워, 화기(禍機)가 헤아릴 수 없고 나라 형세가 위태하였는데, 의리로서 계획에 협력하여 난(難)을 평정하고 바른 길로 돌려서, 천륜(天倫)이 다시 서고 종사(宗社)가 다시 안정되었다. 경진년에 이르러서 또 하나의 큰 간사한 자가 가만히 역모를 품고 나의 종실(宗室)을 이간(離間)하고 우리 국가를 동요하였는데, 경이 또 다시 난(亂)에 임하여 기이한 계획으로 정성을 다하여 천명을 도와서 비록 창졸(倉卒)한 때를 당하였으나, 처치(處置)의 적당함을 잃지 아니하였으므로 간신이 복주(伏誅)되었고, 왕실의 운수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었다. 재상의 자리에 있어야 하고 삼군(三軍)의 권한을 겸임함이 의당하였다. 그 처음과 끝을 보면 항상 왕실에 마음을 두어 더욱 황고(皇考)에 충성을 바쳤다. 이제 종묘에 모시는 일을 당하여 배향할 신하를 널리 물으니, 모두 경이라고 말하여 태종에게 배향하여 만세(萬世)에 종사(從祀)할 것을 기(期)하노니, 아아, 그 아름다운 공적을 가상히 여겨, 더욱 오래 될수록 잊기 어려우니, 우리 선왕을 돕는 데에 어찌 유명(幽明)의 다름이 있으리오."

하고, 우의정 익경공(翼景公) 정탁(鄭擢)에게 제사를 내리는 교서에는 말하기를,

"왕은 말하노라. 일대(一代)의 정치가 흥왕하려면 반드시 일대의 영특한 인재가 있고, 만세의 큰 공을 세웠으면 반드시 만세의 특이한 은총이 있는 것이니, 이는 고금의 공론(公論)이요, 국가의 당연한 법규이다. 경은 지벌(地閥)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벼슬한 집의 후손이다. 이치에 밝고 실용에 적합한 학문으로 세상을 건지고 백성을 편안하 게 하려는 계획을 품었다. 고려의 말년에 스스로 망할 때를 당하니, 우리 태종을 잠저(潛邸)에서 만나서 처음으로 큰 계책을 세워 우리 성조(聖祖)031) 를 추대하여, 집을 변하여 나라를 만들어 억만년의 큰 규모를 열었으니, 그 높은 공, 위대한 수고는 진실로 황하수(黃河水)가 허리띠만 하게 되고, 태산이 숫돌같이 되도록 영원히 잊기 어렵도다. 무인년에 간신이 난(亂)을 일으켰거늘, 또 여러 대신과 함께 의리를 세워 평정하여 종사를 편안하게 하였으니, 경은 우리 집에 있어서는 당나라배적(裵寂)·유문정(劉文靜)송나라석수신(石守信)고회덕(高懷德)과 다를 것이 없는지라, 이제 우리 태종을 종묘에 들여 모시는데 배향할 신하를 조정에서 의논하니, 공(功)으로나 덕(德)으로나 경과 같은 이가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그러므로 경을 묘정(庭定)에 배향하게 하여 큰 공을 기념하게 하였으니, 아아, 그 아름다운 공적을 가상히 여겨 제사지내는 것으로 표창하고 높여 주노니, 우리 선왕을 도와서 아름답고 돈독하게 하라."

하고, 완산 부원군(完山府院君) 양도공(襄度公) 이천우(李天祐)에게 제사를 내리는 교서에 말하기를,

"왕은 말하노라. 힘을 내어서 충성을 바쳤으니 능히 인신(人臣)의 위대한 공적을 나타내었고, 공을 기념하여 제사지내게 하는 것은 실로 국가의 의당한 법규이라. 경은 종실의 지친으로 간성(干城)의 대장이 되어, 용맹은 침략을 막아내고 지혜는 계획을 꾸며낼 수 있었다. 무진년에 권간(權奸)이 어린 것을 내세웠을 때에 의기(義氣)로써 평정하였고, 경진년에 간신들이 담 안에서 다투는 일[鬩墻]032) 을 가만히 얽어 만들 때에 경이 태종과 협력하여 평정해서 적(嫡)과 서(庶)의 명분을 바르게 하고, 국가의 운수를 창성하게 하였다. 소고(昭考)를 좌우에서 모시어 처음과 끝이 한마음이었다. 위대한 공은 모두 맹부(盟府)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제 태종을 종묘에 모실 때를 당하여 배향할 신하를 널리 물으니, 여러 신들의 말이 모두 내 마음에 과연 합치되므로, 배향하게 하여 큰 공에 힘 입었음을 보답하노니, 아아, 수훈(殊勳)을 생각하여 구천(九泉)에 있는 장한 넋을 위로하노니, 우리 아버님을 도와서 만세의 깨끗한 제사를 흠향하라."

하고, 계성군(鷄城君) 경절공(景節公) 이내(李來)에게 제사를 내리는 교서에 말하기를,

"왕은 말하노라. 의(義)를 좇아 천명을 도와서 비상한 공을 세웠으니 마땅히 비상한 은총을 보일 것이라. 경은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여 명철(明哲)함이 기미를 알았는지라, 경진년에 간신이 간사한 꾀를 품고 가만히 종친(宗親)을 유혹하여 골육을 이간하고 국가를 어지럽게 하려 할 때에, 화(禍)가 측량할 수 없을 지경에, 경은 이방간(李芳幹)의 친척이면서도 사사(私私)를 제쳐버리고 의리에 따라 일에 앞서 고발하여, 간흉들의 계획을 막아서 종사를 편안하게 하고 신자(臣子)033) 의 큰 절개를 나타내어 그 아버지의 높은 풍도(風度)를 계승하였으니, 진실로 충의의 실상이 속에 쌓여서 밖에 나타나는 바가 아니면 능히 이같을 수 있겠는가. 영특한 이름과 위대한 공적이 맹부(盟府)에 기록되어 있으니, 어찌 배향하는 식전에 올려 큰 공을 갚지 아니하리오. 이제 선왕을 종묘에 모시는 때를 당하여 특별히 배향하는 열(列)에 올렸으니, 아아, 그대의 큰 공을 생각하면 실로 영세(永世)에 잊지 못할지니, 우리 태종을 도와서 하늘이 끝날 때까지 변함 없으리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5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11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물(人物)

  • [註 030]
    좌명(佐命) : 임금이 되는 천명(天命)을 도왔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태종이 그의 형제들과 왕위 쟁탈로 싸우던 것을 말함.
  • [註 031]
    성조(聖祖) : 태조.
  • [註 032]
    담 안에서 다투는 일[鬩墻] : 형제간에 싸운다는 말.
  • [註 033]
    신자(臣子) : 이내의 부친인 고려 말년의 충신 이존오(李存吾).

○賜祭太宗配享功臣于其家祠堂。 祭晋山府院君 文忠公 河崙敎書:

王若曰。 元首股肱, 旣共成其大勳, 始終存沒, 宜配享於萬世。 此古今之令典, 而國家之恒規。 惟卿嶽瀆英靈, 樑棟大材。 學際天人, 識通經緯。 鎭定擊撞, 巍乎泰山之崇重; 涵濡巨細, 廣矣滄海之包容。 邃沖而有守, 正直而無華。 惟根本培埴於內者, 確乎不拔, 故措諸事業者, 綽乎有餘。 旣樹功於定社之時, 又與盟於佐命之日, 大爲我太宗所倚重。 自歲庚辰, 秉國鈞、主文衡, 四爲上相, 益展嘉猷。 凡可以尊主庇民者, 靡不設施, 克盡經濟之略, 以收弼亮之効。 二十年間, 民殷物阜, 措國家於盤石之安, 況復奉使中朝, 上章專對, 天子是嘉, 錫命撫封, 苟非識時知變者, 能若是乎? 眞可謂命世之才、王佐之器也。 今將祔我太宗于宗廟也, 廣詢配享之臣, 僉曰卿哉, 允協予意, 是用俾卿從祀廟庭。 於戲! 嘉乃丕勳, 永難忘於沒世; 享玆明祀, 宜勿替於終天。

漢山府院君 忠武公 趙英武敎書:

王若曰。 訏謨定命, 實將相之殊勳; 崇德報功, 乃帝王之令典。 惟卿天資英毅, 器宇宏深。 秉性忠勤, 懷蹇蹇匪躬之節; 持身嚴重, 有落落古人之風。 苟可利國而安民, 率皆委質而竭力。 嘗從太祖, 永肩一心。 回軍之時, 參擧大義; 開國之際, 克成奇功。 歲在戊寅, 權姦相依, 幼孼是挾, 禍機不測, 國步斯危。 乃能仗義以協謀, 遂致定難而反正, 天倫復敍, 宗祏再安。 逮夫庚辰, 亦有大姦潛圖不軌, 離間我宗室, 動搖我邦家。 卿又臨亂出奇, 推誠佐命。 雖當倉卒之際, 不失處置之宜。 奸人於是乎伏誅, 王業以之而永固。 宜居太宰之位, 兼任三軍之權。 原其終始, 恒乃心於王家, 益効忠於皇考。 今當祔廟之擧, 廣詢配享之臣, 僉曰卿哉, 肆躋配於太宗, 期從祀於萬世。 於戲! 嘉乃丕績, 愈永久而難忘; 相我先王, 豈幽明之有間?

祭右議政翼景公 鄭擢敎書:

王若曰。 興一代之治, 必有一代之英材; 立萬世之功, 宜膺萬世之異寵。 此古今之公論, 而國家之恒規。 惟卿閥閱之門, 纓紱之胤。 以明體適用之學, 懷濟世安民之略。 當季自絶之時, 遇我太宗于潛邸, 首建大策, 推戴我聖祖, 化家爲國, 開億載之鴻圖, 其隆功偉烈, 固帶礪而難忘。 加以(戊辰)〔戊寅〕 之歲, 姦臣構亂, 又與群公仗義戡定, 以安宗社。 卿於我家, 實與唐室, 宋氏無以異也。 今玆祔我太宗于宗廟也, 廷議配享之臣, 以功以德, 如卿幾人? 是用俾卿配食廟庭, 以敉大功。 於戲! 嘉乃丕績, 庸作祀以褒崇; 相我先王, 庶咸休而篤弼。

完山府院君 襄度公 李天祐敎書:

王若曰。 宣力効忠, 克著人臣之偉績; 紀功作祀, 實爲國家之恒規。 惟卿以宗室之親, 爲干城之將, 勇足以禦侮, 智足以運籌。 當戊辰權奸挾幼之時, 奮義戡定。 及庚辰潛構鬩墻之日, 協謀削平, 以正嫡庶之名, 以昌國家之業。 左右昭考, 終始一心, 蔚有豐功, 咸在盟府。 今屬太宗之祔, 廣詢躋配之臣, 惟時僉言, 允孚予意, 是用從祀, 庸示服功。 於戲! 念玆殊勳, 以慰九泉之壯魄; 相我皇考, 與享萬世之精禋。

鷄城君 景節公 李來敎書:

王若曰。 (絢)〔徇〕 義佐命, 克成不世之勳; 崇德報功, 當示非常之寵。 惟卿稟性純粹, 燭微明哲。 歲當庚辰, 奸臣懷詐。 陰誘宗親, 離間骨肉, 謀亂邦家, 禍在不測。 卿以芳幹之戚, 忘私徇義, 先事首告。 式遏奸凶, 載寧宗社, 以著臣子之大節, 克紹乃父之高風。 苟非忠義之實, 蘊於中而形於外者, 其能若是哉? 英名偉績, 播在盟辭, 盍登從祀以酬膚功? 爰當祔廟之辰, 特陞配食之列。 於戲! 念爾茂烈, 實永世而難忘; 相我太宗, 庶終天而勿替。


  • 【태백산사고본】 8책 25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11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