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 사신 규주 등이 가하를 구류하여 심문한 후 예조에게 서장으로 알리다
규주(圭籌)와 범령(梵齡) 등이 가하(加賀)를 구류하여 잡아매어 놓고 심문하니, 가하가 그 연고를 갖추어 고하기를,
"규주 등이 어소(御所)에 보고할 서장(書狀)에 이르기를, ‘조선 국왕이 경판(經板)을 허락하지 아니하니, 배[船] 수천 척을 정비하여 조선을 침략하면서 경판을 약탈하자. ’고 하였다. 이 글을 통사(通事) 이춘발(李春發)에게 전했다."
하니, 규주 등이 이 말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나서, 서장을 만들어 감호관(監護官) 이승(李升)에게 말하기를,
"방금 임금의 성덕이 융성하시어 두 나라의 화호(和好)함이 더욱 두터운데, 뜻하지 않게 소승(小僧) 가하가 이러한 부언(浮言)을 지어내어 장차 화호함을 끊으려 하니, 감호관께서 이 서장을 예조에 바쳤으면 다행하겠나이다."
라고 하니, 이승이 답하기를,
"처음 가하를 결박하였을 때에 우리들에게 이르기를, ‘가하가 여러 번 절도죄를 범하여 결박해서 심문한다.’ 하더니, 지금 도리어 부언을 만들어 내었다고 말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또 이 말이 어디로부터 나오게 된 말이냐."
하였다. 규주 등이 이것을 보고 발연히 얼굴빛을 변하면서 말하기를,
"이는 바로 가하와 같은 마음이로구나."
하고, 즉시 반인(伴人) 10여 명을 거느리고 모두 도보로 예조의 조방(朝房)에 가서 서장을 올리기를,
"일본국 봉사(日本國奉使) 중[釋] 규주·범령 등은 삼가 서간을 예조 열공 각하(禮曹列公閣下)에 올리나이다. 저희들이 전하의 두터운 대우를 입사와 이미 가장 좋은 법보(法寶)를 내려 주시어 즐겁기 한량없나이다. 장차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던 중인데, 그 사이 화승(畫僧) 주문(周文)이란 자가 망령된 말을 하기를, ‘호군(護軍) 윤인보(尹仁甫)가 우리 나라 조정과 요약(要約)이 있어서 17척의 배를 이끌고 갔다 오려고 한다.’ 하니, 조선에는 오직 윤인보 한 사람이 오로지 국정(國政)을 잡고 있는 것입니까. 별통사(別通事) 이춘발(李春發)이 부질없이 이 말을 아뢰어서, 인보가 드디어 그 책망을 받게 되었으니, 이것은 저희들로는 일찍이 알지 못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 반인(伴人)에 가하(加賀)란 자가 있어 이따금 도적질을 하였는데, 저희들에게 따라온 사람이나 뱃사공들이 비록 이것을 알고 있으나, 이 가하도 반인의 열에 끼어 있으므로 저희들에게는 알리지 아니하고 지냈더니, 서평관(西平館)으로 사관(舍館)을 정하기에 이르러서는 이 사람이 또 공물(公物)을 절취한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 때문에 여러 사람들은 먼저번에 저지른 죄까지 고발하게 되어 무려 10여 가지 사건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나라 국법 조목에는 도적질한 자는 먼저 단단히 수족을 묶어 놓고 차근차근 국문하여, 법에 의하여 판결한 뒤에 형을 집행합니다. 그러나 지금 귀국에 봉사(奉使)하여 있으니 공경히 이 나라 법을 따르려 하므로 아직 베어 죽이지 아니하였더니, 또 의심되는 일을 만들어 나불나불 말하므로, 전일에 사람을 시켜 특별히 힐문하여 보았더니, 그가 말하기를, ‘오직 별통사 이춘발이 나를 뒤집어씌워 죽이려고 무근한 말을 낸 것이다. ’고 하였으나, 대개 이러한 큰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제 나라에 돌아가도 반드시 죽을 것이니, 차라리 몸을 귀국에 두고자 하여, 이를 빙자하여 서장을 갖추어 올려서 오직 자신이 두터운 관록을 도모하려는 것이고, 그 밖의 말 같지 않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소인들을 해롭힘이 이 같으니 너무 심합니다. 진실로 군자는 그들을 멀리해야 하겠습니다. 조선 같은 나라는 위로 밝으신 군왕이 계시고, 보좌하는 신하가 모두 현량한 사람이며, 그리고 또 문장과 법헌(法憲)이 옛날 성세(盛世)를 따라 혐의스런 말도 쓰지 아니하고, 망령된 사람을 가까이하지도 아니하여, 밝고 밝기가 비록 이와 같다 하여도, 지혜로운 자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 실수는 있는 것이요, 어리석은 자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쯤은 얻음이 있다 하니, 만약 이 일이 명백하게 되지 못하면 저희들을 의오(疑誤)하게 여길 것이므로 시말(始末)을 갖추어 진술하는 바입니다.
저희들이 처음에 사명(使命)을 받던 날에 사사(私舍)로 돌아와 홀로 길게 한숨을 내어 쉬니, 시봉(侍奉)하던 중이 묻기를, ‘무슨 일이 있기에 그다지 오래도록 앙앙(怏怏)하여 기뻐하지 아니하는가.’ 하므로 얼마 동안 있다가 일러주기를, ‘봉사(奉使)하는 일이란 지극히 큰 일이다. 능히 하지 못하면 길이 충신효의(忠信孝義)의 이름을 떨어뜨릴 것이니, 충의(忠義)가 서지 아니하면 어찌 사람이라 하겠는가. 너희들을 두 번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니, 답답하고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이 말이 우리 전하께 들어가게 되었나이다. 절하고 하직하던 날에 조용히 말하기를, ‘우리가 조선과 오랫동안 이웃 나라로서 좋게 지내어 왔으니 숨김 없이 경판(經板)을 청구하여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찌 사자(使者)의 실수라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명령을 듣고 대답하고 나왔습니다. 무릇 한 나라의 임금노릇 하는 것은 만승(萬乘) 천자와 같은 높은 자리입니다. 어찌 작은 일을 가지고 여러 해 동안 날로 쌓은 맹세를 배반해 버릴 수 있겠습니까. 전일에 저희들이 절식(絶食)하여 죽으려 하였던 것은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법보(法寶)를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전하께서 저희들의 정성을 살펴 주셨나이다. 옛날에 설산동자(雪山童子)002) 는 반게(半偈)를 구하려고 운명(殞命)하기에 이르렀고, 예상아인(翳桑餓人)은 한 번 밥 얻어 먹은 것을 갚으려고 바로 도과(倒戈)하게 되었고, 포서(包胥)는 진(秦)나라 뜰에서 7주야(晝夜)를 울어서 초(楚)나라를 보존하였고, 소경(蘇卿)은 호지(胡地)의 구덩이에 들어가 있다가 19년 만에 한(漢)나라로 돌아왔으며, 혹 한여름에도 서리가 내리게 되고, 혹 한겨울에도 죽순이 나오게 되니, 이와 같은 따위가 사책에 실려 있음은 충의(忠義)와 효신(孝信)이 넓게 미쳐 귀신과 천지를 감동시킨 것이 명백합니다. 저희들도 이것을 본받은 것이오나 드디어 임금의 명령을 받게 되어 칙사(勅使)가 권한 찬품(饌品)에 순응하였던 것입니다. 뜻하지 않게 저 요망하고 용렬한 두 사람이 망령되고 의혹스러운 말을 하여, 바로 국가에서 의심하고 괴이한 일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만약 저희들의 진술함이 시원하지 않으시면 청하건대, 관선(官船)을 보내어 물어 알아보시고 저희들은 여기에 머물러 있게 하시면, 옳고 그른 것이 결정되기까지 두어 달 동안이라도 발을 돋우고 기다리겠나이다. 만일 거짓으로 빈말을 꾸며 대었다면 신명(神明)이 죽여 줄 것이요, 조종(祖宗)이 죄줄 것이며, 삼세여래(三世如來)와 시방불타(十方佛陀)와 당왕화남산신(當旺化南山神)과 일본 현화천조대신(日本顯化天照大神)과 천만대자재천신(天滿大自在天神)과 일체 대소 천신(天神)·지지(地祗)들이 밝게 통감하시어, 저희들을 벌 줄 것입니다. 아아, 창창한 저 하늘과 교교(皎皎)한 저 해님이 저희들의 붉은 마음을 비춰 주실 것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아니하고 나라의 법금을 알지 못하나 대강 줄거리만 진술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각하(閣下)께서는 바로 당상(堂上)에게 올려 주소서. 속히 조서(詔書)로써 허락하심을 입지 못하게 되면, 어느 날에 가슴의 답답함을 쓸어 없애겠나이까. 공손히 바라노니 살펴 주소서. 할 말을 다하지 못하나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74면
- 【분류】외교-왜(倭)
- [註 002]설산동자(雪山童子) : 석가여래의 별명.
○己亥/圭籌、梵齡等拘繫加賀訊問, 加賀具告其故云: "圭籌等報御所狀曰: ‘朝鮮國不許經板, 粧船數千艘, 侵掠朝鮮, (槍)〔搶〕 奪經板。’ 等事, 書傳于通事李春發是實。" 圭籌等聽此恐懼, 乃爲書呈于監護官李升曰: "方今上德隆盛, 兩國和好益厚, 不意小僧加賀構此浮言, 將絶和好。 願監護官, 齎此書, 轉呈禮曹幸甚。" 李升答曰: "初繫加賀之時, 謂某等曰: ‘加賀屢犯竊盜, 結縛訊問。’ 今反以構說浮言爲言何哉? 且此言從何而出?" 圭籌等勃然變色曰: "是與加賀同心也。" 卽率伴人十餘名, 竝皆徒行到禮曹朝房, 呈書曰:
日本國奉使釋圭籌、梵齡等謹上書禮曹列公閣下。 某等厚蒙殿下遇對, 旣賜法寶之最者, 懽欣交甚, 將畢事而還歸。 日者, 畫僧周文者妄發言曰: "護軍尹仁甫於我本朝, 有要約引連十七隻船復。" 朝鮮唯有仁甫一人, 專秉國政乎? 別通事李春發謾採摭此言奏之, 仁甫遂蒙其責。 噫! 是某等未嘗知之也。 爰亦有伴人加賀者往往狗偸矣。 我從人舟子雖知之, 以夫備伴人之列, 不使某等知之。 及舍于西平館, 猶至犯取公物, 以故衆等告向所侵, 殆洎十有餘件。 我本朝之憲條, 爲盜者先堅枷械手足, 漸加鞫問, 依款結案, 然後處刑。 方今奉使于貴國, 敬順國法之故, 不肯斬殺, 又有疑故喋喋。 前日, 令人特加難問, 彼亦曰: "我唯爲別通事李春發賺殺, 設無根之說語焉。" 蓋蒙大恥, 而歸國必殺也, 不如投身於貴國, 憑玆撝具狀呈上, 惟圖躬蒙厚祿耳。 其他不偸言不言也。 甚哉, 小人之害物! 信哉, 君子之遠(馬)〔焉〕 ! 夫如朝鮮, 上有明君, 而輔佐咸賢良也。 然又文章法憲, 追稱曩古, 不用嫌疑, 不近妄侫也, 昭昭乎! 雖如是, 智者之千慮, 必有一失; 愚者之千計, 必有一得。 此事若不明白, 某等爲疑誤矣。 由是, 具陳始末。 某等初奉承使命之日, 退于私室, 獨自長息。 侍奉僧問: "有何事, 怏怏然不喜久之哉?" 良久謂曰: "奉使之節至大也, 不能之, 永墜忠信孝義之名。 忠義不立, 安爲人哉? 再相見於汝等, 不可得乎! 故鬱怏耳。" 斯言轉展達我殿下, 當拜辭之日, 從容曰: "我與朝鮮久修隣好, 以不秘情, 請經板, 寧不給之? 豈有使者之失耶?" 某等聽命唯唯。 凡王于一國, 必萬乘之尊也。 焉因瑣細事, 背累歲積日之盟耶? 且某等前日絶食, 殆欲至死者, 無別志, 偏爲法寶也, 我殿下照察某等精誠。 昔雪山童子求半偈, 將殞命; 翳桑餓人酬一餐, 輒倒戈; 包胥哭于秦庭七晝夜, 而存楚; 蘇卿陷於胡坑十九年, 而歸漢。 或盛夏降霜, 或祁冬抽筍, 如是之類, 載諸史籍。 忠義孝信之覃者, 感鬼神、動天地也, 炳乎煥乎, 某等亦效顰也。 遂膺睿命之故, 順勑使侑膳矣。 不意彼二人妄庸之徒, 有妄惑之言, 正爲國家遭疑怪。 若某等所陳, 猶有冘豫, 則請先遣官船令問知之, 欄留某等, 可否之決, 在數月之間, 翹足而可待哉。 右若飾虛食言, 明神殛之, 祖宗咎之。 三世如來、十方佛陀, 當旺化南山神、日本顯化天照大神、天滿大自在天神及一切大小天神地祇等, 垂洞鑑罰某等。 嗚呼! 蒼蒼彼天, 皎皎彼日, 照臨某等丹忱。 言音不通, 方禁不識, 粗述綱槪, 伏希閣下能聞于堂上, 怏不被詔許, 何日芟平胸次之茅塞耶? 恭惟照及, 不宣。
- 【태백산사고본】 8책 23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74면
- 【분류】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