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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3권, 세종 3년 8월 30일 경신 2번째기사 1421년 명 영락(永樂) 19년

판황주목사 정효문이 곡식을 세납하는 방식의 폐해를 고한 상소문

판황주목사(判黃州牧事) 정효문(鄭孝文)이 상소하기를,

"신이 외람하게도 용렬한 자품으로, 벼슬이 2품에 이르게 되었으나, 일찍이 보답한 공효가 없는데, 이제 외람하게도 백성 다스리는 책임을 주시니, 낮이나 밤이나 조심하고 공경하여, 성상의 은총을 보답하기를 생각하여, 삼가 좁은 소견으로 다음과 같이 몇가지 조목을 나열하여 올리나이다.

1. 한 해 동안에 풍년 든 곳도 있고, 흉년 든 곳도 있어, 손실(損實)의 수가 같지 아니하나, 그러나 세납한 곡식은 반드시 얼음이 얼기 전에 배로 운반하게 되므로, 수령들이 제 기간에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여, 지난해의 바친 세납 액수대로 나누어서 백성에게 받아들이므로, 손실이 혹 가감이 있게 되고, 새로 묵은 밭을 개간한 것이 같지 아니한 것도 있거늘, 이제 모두 그전 수대로 받아들이니, 어찌 틀리지 않을 것인가. 또 벼는 아직 마당에 들여오지도 못하였는데, 세납을 실어 내기를 독촉하여, 소란스러운 폐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벼농사 답험하는 것은 매년 9월 초순에 시작하여, 총수의 마감이 10월 보름께로 끝나니, 이때에는 벌써 추위가 닥쳐와서, 얼음이 굳게 얼 때가 되니, 비록 조운(漕運)할 수 없다 하여도 어찌하겠습니까. 신은 청하건대, 답험하기를 이미 끝나거든 그 실수를 세전에 다 정리해서 거두어 가지고 다음해 봄에 수송하도록 하고, 정월에 주는 녹미(祿米)는 군량미로 우선 대용하여, 그 폐단을 개혁할 것이외다.

1. 전토에 대한 결복(結卜)이 결정 되고, 벼곡식의 손실이 분간되면, 손(損)한 것은 손한 대로, 실(實)한 것은 실한 대로 처리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어늘, 해마다 손실 경차관을 보내오나, 그들이 토지 전부를 답험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맞아들이고 보내는 폐단만 있게 되니, 신은 원하건대, 이 일은 각도의 감사가 오로지 맡아서, 수령 가운데 강직하고 분명한 자를 가려서 차사원(差使員)으로 분정하여 검험(檢驗)하게 하고, 감사(監司)와 수령관(首領官)이 구역을 분담하여 살펴서 검찰하게 할 것이요,

1. 옛날 주(周) 나라 때에, 백성으로서 직업이 없이 노는 자는 힘으로 역사하는 부역에 나오게 되고, 집안 터전에 빈 땅으로 놀리는 자에게는 부리(夫里)의 베[布]로 세금을 바치게 하였으니, 이것은 백성에게 일하도록 권면하고 노는 자를 징계하는 좋은 법입니다. 이 법이 한 번 폐지되고서, 어느 집이나 일체로 같이 받아들이고, 지금은 저화(楮貨)를 가지고 호포(戶布) 세를 대신하여 받게 되니, 민간에서 만드는 것은 그래도 바칠 수가 있지마는, 저화는 백성들이 만들 수가 없는 것이고, 반드시 쌀이나 다른 곡식을 팔아서 바치게 되므로, 백성들이 모두 감당하기가 어렵다 하니, 신의 생각으로는, 이것을 영구히 감면하지 못할 때에는 풍년들기를 한정하여 그 때까지라도 정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외다.

1. 근년 이래로 수재와 한재가 계속하여, 풍년이 들지 않고, 백성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며, 또 금년에는 수재가 더욱 심하여, 민생들이 가엾게 되었으니, 신은 원하건대, 금년 조세(祖稅)의 반을 감면하여 민생을 구휼하게 할 것이며,

1. 지나간 경인년부터 해적들이 작란하기 시작하여, 변방 백성이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가, 근래에 전함의 수비로 인하여 해적들도 가라앉게 되고, 변방 백성들도 편히 잠자게 되었으나, 수군의 용맹한 자가 백 명에 1, 2명도 없는 실정이니, 실로 염려되는 바이외다. 기해년 동정(東征)한 뒤에 대마도 왜(倭)들이 날마다 원망하며 보복하려 한다 하니, 우리는 실로 준비가 없을 수 없는 것이외다. 잘 싸우는 군사는 피차 인원수의 다과를 가지고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 우리 군함 한 척에 용감한 군사 4, 5 명씩만 있으면, 가히 여러 사람을 막을 수가 있을 것이므로, 지금부터 강건하고 용감한 자를 뽑아 군함 한 척에 4, 5명씩만 두고, 부사정(副司正)으로부터 호군(護軍)에까지 올라가도록 벼슬을 시키고, 그 이름을 선갑사(船甲士)라고 하여, 부병갑사(府兵甲士)의 예에 비하여, 매년 연말에 시험을 마치고서 자격에 따라 들어 쓸 것이외다.

1. 우리 동방의 문물(文物)이 중국에까지 풍동(風動)하게 되기가 오래외다. 여러 주(州)나 현(縣)의 학교(學校)에 혹 대성전(大成殿)이 없기도 하니, 만일 중국 문신이 사절(使節)로 왔을 때에, 만일 성묘(聖廟)에 알현(謁見)하려고 한다면, 우리 조정의 유교를 존숭하고 무겁게 여기는 뜻이 어디에 있다고 하겠습니까. 신의 의견으로는 의주(義州)로부터 개성 유후사(留後司)에 이르는 도로 부근의 계수관(界首官)에 딸린 학사(學舍)에는 더욱 고쳐서 성묘를 구조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만일 계수관이 자기 힘으로 하기가 어려우면, 그 지역 내에 있는 여러 관원들과 협력하여 조성케 할 것이외다.

1. 대소(大小) 인민들이 의창(義倉)에서 꾸어다 먹은 곡식이, 매호에 많으면 한두 섬이 된다 하니, 만일 반드시 본색(本色)이 쌀과 조로 받아들인다면, 비록 10년이 가도 용이하게 다 갚지 못할 것이니, 청컨대, 포목으로 대납하게 하여 민생을 편리하도록 할 것이외다.

1. 서울로부터 의주(義州)에까지 조정(朝廷)의 사신들이 내왕하게 되는데, 길가에 있는 주(州)·군(郡)의 관노비(官奴婢)가 다른 고을보다 그 고역이 배가 되어, 한집안의 노약과 남녀들을 있는 수대로 사역하게 되어, 그들의 수심과 탄식이 없지 아니하니, 청컨대, 유사(有司)에 명하여 그들의 많고 적은 수효를 상고하여, 적은 주나 군에는 전농시(典農寺)에 속하는 것을 개혁하여, 내보낸 사사노비(寺社奴婢)를 적당하게 더 내어 주게 할 것이외다."

하였다. 정부(政府)와 제조(諸曹)에 명하여 의논하게 하였으나, 마침내 그대로 시행되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49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신분-천인(賤人) / 정론(政論)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재정-창고(倉庫) / 교통-수운(水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농업-농작(農作)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기(軍器) / 금융-화폐(貨幣)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判黃州牧事鄭孝文上疏曰:

臣猥以庸資, 位至二品。 曾無報効, 今叨爲牧民, 夙夜戰兢, 思報上德, 謹將管見, 條列于左。

一, 歲有豐歉, 損實之數, 固不同也。 然貢稅漕轉, 必及於氷凍前, 故守令恐不及期, 以其前年實數, 分徵於民, 損實或有加減, 起陳或有不同。 今乃一切以前數而分徵, 豈不誤乎? 且禾未登場, 而督輸騷擾, 弊不可勝言。 然禾穀踏驗, 每始於九月之初, 摠數磨勘, 或終於十月之望。 於是, 冱寒堅氷至矣, 雖無漕轉, 何及哉? 臣謂, 踏驗旣畢, 以其實數, 歲前收齊, 開春漕轉, 正月頒祿, 代以軍資, 以革其弊。

一, 田地之結卜定矣, 禾穀之損實分矣。 損則損之, 實則實之者, 斯亦不難矣。 每年遣損實敬差官, 然未能盡驗, 但有迎送之弊。 臣願俾各道監司全掌之, 擇守令剛明者, 分定差使員以檢驗, 而監司首領官分道審檢。

一, 成周之時, 民無職事, 則出力役之征; 宅不毛, 則有夫里之布, 此勸懲之良法也。 此法一廢, 一切取之。 今以楮貨, 代戶布之征, 民間所造, 猶可爲也。 楮貨則民不自造, 必以米粟交易而納, 故民皆不堪。 臣以爲, 若不永減, 則限豐年停之。

一, 近年以來, 水旱相繼, 年不登稔, 民不足食, 又今年水災尤甚, 民生可惜。 臣願減今年租稅之半, 以恤民生。

一, 自庚寅之歲, 海寇作耗, 邊民漂散。 近因戰艦之備, 海寇息而邊民奠枕。 然水軍勇者, 百無一二, 是可慮也。 己亥年東征之後, 對馬島 日欲報怨, 固不可不備也。 善戰者, 不以彼我之衆寡爲勝負, 故一艦之中, 有勇者四五人, 則可以禦衆。 願自今擇募强勇者, 每一船屬四五人, 以副司正, 遷至護軍, 而名之曰船甲士, 比府兵甲士例, 每年終取才敍用。

一, 吾東方文風, 動於中華者久矣。 諸州縣學校, 或有無聖殿者。 倘中國文臣奉使而來, 如欲謁聖, 則我聖朝崇重斯文之意安在? 臣以謂, 自義州至留後司, 路傍界首官學舍, 尤不可不改構也。 若界首官不能獨辦, 令領內各官幷力造成。

一, 大小人民貸糶義倉, 一戶多至一二斛。 若必以本色米粟還徵, 則雖十歲, 未能易納。 願令代以布物, 以便民生。

一, 自京城至義州, 朝廷使臣往來, 路傍州郡官奴婢勞苦, 倍於他邑。 一家老弱男女, 盡數供役, 不無愁嘆。 願令有司, 考其多寡, 數少州郡, 以典農寺屬, 革去寺社奴婢, 量宜加給。

命政府、諸曹議之, 竟不行。


  •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449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신분-천인(賤人) / 정론(政論)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재정-창고(倉庫) / 교통-수운(水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농업-농작(農作)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기(軍器) / 금융-화폐(貨幣)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