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3권, 세종 1년 1월 11일 병진 2/5 기사 /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중국 황제 법도를 따르라는 김점과 반드시 그럴 것은 없다고 허조가 공방하다
국역
편전에서 정사를 보고 술상을 마련하여, 여섯 순배를 나누고 파하였다. 참찬 김점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하시는 정사는 마땅히 금상 황제(今上皇帝)의 법도를 따라야 될 줄로 아옵니다."
하니, 예조 판서 허조는 아뢰기를,
"중국의 법은 본받을 것도 있고 본받지 못할 것도 있습니다."
하였다. 김점은 아뢰기를,
"신은 황제가 친히 죄수를 끌어 내어 자상히 심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하께서도 본받아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하니, 허조는 아뢰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관을 두어 직무를 분담시키므로서 각기 맡은 바가 있사온데, 만약 임금이 친히 죄수를 결제하고 대소를 가리지 않는다면, 관을 두어서 무엇하오리까."
하였다. 김점은 아뢰기를,
"온갖 정사를 전하께서 친히 통찰하시는 것이 당연하옵고 신하에게 맡기시는 것은 부당하옵니다."
하니, 허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진이를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인재를 얻으면 편안해야 하며, 맡겼으면 의심을 말고, 의심이 있으면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전하께서 대신을 선택하여 육조의 장을 삼으신 이상, 책임을 지워 성취토록 하실 것이 마땅하며, 몸소 자잘한 일에 관여하여 신하의 할 일까지 하시려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였다. 김점은,
"신은 뵈오니, 황제는 위엄과 용단이 측량할 수 없이 놀라와, 6부의 장관이 정사를 아뢰다 착오가 생기면, 즉시 금의(錦衣)의 위관(衛官)을 시켜 모자를 벗기고 끌어 내립니다."
고 하니, 허조는,
"대신을 우대하고 작은 허물을 포용하는 것은 임금의 넓으신 도량이거늘, 이제 말 한 마디의 착오 때문에 대신을 주륙(誅戮)하며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는다면, 너무도 부당한 줄 아옵니다."
고 하였다. 김점은,
"시왕(時王)의 제도는 따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황제는 불교를 존중하고 신앙하여, 중국의 신하들은 《명칭가곡(名稱歌曲)》을 외고 읽지 않는 자 없습니다. 그 중에는 어찌 이단으로 배척하는 선비가 없겠습니까마는, 다만 황제의 뜻을 본받기 위해서 그렇지 않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하니, 허조는,
"불교를 존중하고 신앙하는 것은 제왕의 성덕이 아니옵기로, 신은 적이 취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김점은 발언할 적마다 지리하고 번거로우며, 노기만 얼굴에 나타나고, 허조는 서서히 반박하되, 낯빛이 화평하고 말이 간략하니, 임금은 허조를 옳게 여기고 김점을 그르게 여겼다.
원문
○御便殿視事, 仍置酒, 六行而罷。 參贊金漸進曰: "殿下爲政, 當一遵今上皇帝法度。" 禮曹判書許稠進曰: "中國之法, 有可法者, 亦有不可法者。" 漸曰: "臣見, 皇帝親引罪囚, 詳加審覈, 願殿下効之。" 稠曰: "不然。 設官分職, 各有攸司, 若人主親決罪囚, 無問大小, 則將焉用法司?" 漸曰: "萬機之務, 殿下宜自摠覽, 不可委之臣下。" 稠曰: "不然。 勞於求賢, 逸於得人, 任則勿疑, 疑則勿任。 殿下當愼擇大臣, 俾長六曹, 委任責成, 不可躬親細事, 下行臣職。" 漸曰: "臣見, 皇帝威斷莫測, 有六部長官奏事失錯, 卽命錦衣衛官, 脫帽曳出。" 稠曰: "體貌大臣, 包容小過, 乃人主之洪量。 今以一言之失, 誅戮大臣, 略不假借, 甚爲不可。" 漸曰: "時王之制, 不可不從。 皇帝崇信釋敎, 故中國臣庶, 無不誦讀《名稱歌曲》者。 其間豈無儒士不好異端者? 但仰體帝意, 不得不然。" 稠曰: "崇信釋敎, 非帝王盛德, 臣竊不取。" 漸每發一言, 支離煩碎, 怒形於色, 稠徐徐折之, 色和而言簡, 上是稠而非漸。
세종실록3권, 세종 1년 1월 11일 병진 2/5 기사 /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중국 황제 법도를 따르라는 김점과 반드시 그럴 것은 없다고 허조가 공방하다
국역
편전에서 정사를 보고 술상을 마련하여, 여섯 순배를 나누고 파하였다. 참찬 김점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하시는 정사는 마땅히 금상 황제(今上皇帝)의 법도를 따라야 될 줄로 아옵니다."
하니, 예조 판서 허조는 아뢰기를,
"중국의 법은 본받을 것도 있고 본받지 못할 것도 있습니다."
하였다. 김점은 아뢰기를,
"신은 황제가 친히 죄수를 끌어 내어 자상히 심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하께서도 본받아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하니, 허조는 아뢰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관을 두어 직무를 분담시키므로서 각기 맡은 바가 있사온데, 만약 임금이 친히 죄수를 결제하고 대소를 가리지 않는다면, 관을 두어서 무엇하오리까."
하였다. 김점은 아뢰기를,
"온갖 정사를 전하께서 친히 통찰하시는 것이 당연하옵고 신하에게 맡기시는 것은 부당하옵니다."
하니, 허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진이를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인재를 얻으면 편안해야 하며, 맡겼으면 의심을 말고, 의심이 있으면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전하께서 대신을 선택하여 육조의 장을 삼으신 이상, 책임을 지워 성취토록 하실 것이 마땅하며, 몸소 자잘한 일에 관여하여 신하의 할 일까지 하시려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였다. 김점은,
"신은 뵈오니, 황제는 위엄과 용단이 측량할 수 없이 놀라와, 6부의 장관이 정사를 아뢰다 착오가 생기면, 즉시 금의(錦衣)의 위관(衛官)을 시켜 모자를 벗기고 끌어 내립니다."
고 하니, 허조는,
"대신을 우대하고 작은 허물을 포용하는 것은 임금의 넓으신 도량이거늘, 이제 말 한 마디의 착오 때문에 대신을 주륙(誅戮)하며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는다면, 너무도 부당한 줄 아옵니다."
고 하였다. 김점은,
"시왕(時王)의 제도는 따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황제는 불교를 존중하고 신앙하여, 중국의 신하들은 《명칭가곡(名稱歌曲)》을 외고 읽지 않는 자 없습니다. 그 중에는 어찌 이단으로 배척하는 선비가 없겠습니까마는, 다만 황제의 뜻을 본받기 위해서 그렇지 않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하니, 허조는,
"불교를 존중하고 신앙하는 것은 제왕의 성덕이 아니옵기로, 신은 적이 취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김점은 발언할 적마다 지리하고 번거로우며, 노기만 얼굴에 나타나고, 허조는 서서히 반박하되, 낯빛이 화평하고 말이 간략하니, 임금은 허조를 옳게 여기고 김점을 그르게 여겼다.
원문
○御便殿視事, 仍置酒, 六行而罷。 參贊金漸進曰: "殿下爲政, 當一遵今上皇帝法度。" 禮曹判書許稠進曰: "中國之法, 有可法者, 亦有不可法者。" 漸曰: "臣見, 皇帝親引罪囚, 詳加審覈, 願殿下効之。" 稠曰: "不然。 設官分職, 各有攸司, 若人主親決罪囚, 無問大小, 則將焉用法司?" 漸曰: "萬機之務, 殿下宜自摠覽, 不可委之臣下。" 稠曰: "不然。 勞於求賢, 逸於得人, 任則勿疑, 疑則勿任。 殿下當愼擇大臣, 俾長六曹, 委任責成, 不可躬親細事, 下行臣職。" 漸曰: "臣見, 皇帝威斷莫測, 有六部長官奏事失錯, 卽命錦衣衛官, 脫帽曳出。" 稠曰: "體貌大臣, 包容小過, 乃人主之洪量。 今以一言之失, 誅戮大臣, 略不假借, 甚爲不可。" 漸曰: "時王之制, 不可不從。 皇帝崇信釋敎, 故中國臣庶, 無不誦讀《名稱歌曲》者。 其間豈無儒士不好異端者? 但仰體帝意, 不得不然。" 稠曰: "崇信釋敎, 非帝王盛德, 臣竊不取。" 漸每發一言, 支離煩碎, 怒形於色, 稠徐徐折之, 色和而言簡, 上是稠而非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