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시에서 세자 출입시 안마를 바칠 때 임금의 명을 기다리도록 하다
임금이 명하기를,
"사복시(司僕寺)에서는 이제부터 세자(世子)의 출입(出入)에 반드시 나의 명(命)을 기다려서 이에 안마(鞍馬)를 바치라."
하고, 우빈객(右賓客) 변계량(卞季良)을 불러서 전교(傳敎)하기를,
"서연(書筵)의 빈객(賓客) 등은 누구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조용(趙庸)·김여지(金汝知)·탁신(卓愼)과 신(臣)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들을 버리고 다시 달리 구할 수가 없다. 중국에서 구한다면 얻을 수 있을지라도, 본국(本國)에서 구한다면 다시 얻을 수가 없다. 옛날에 그 어미를 사사(賜死)하고도 아들을 태자(太子)로 삼은 경우가 있었는데, 김한로(金漢老)가 비록 죄가 있더라도 숙빈(淑嬪)이야 무슨 죄가 있느냐? 전(殿)에 도로 들이게 하고 싶다."
하니, 변계량이,
"부인(婦人)은 남편 집[夫家]을 내조(內助)하므로 남편을 중하게 여깁니다. 숙빈(淑嬪)의 정(情)이야 어찌 세자의 허물을 드러내고자 하였겠습니까? 숙빈(淑嬪)의 한짓은 부도(婦道)에 합당하니, 숙빈(淑嬪)을 전(殿)에 돌아오게 함은 심히 지당합니다. 김한로가 비록 중한 죄를 입었더라도 숙빈(淑嬪)에게야 무슨 해로움이 있겠습니까? 신이 일찍이 이 뜻을 가지고 계달하고자 하였으나 감히 아뢰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세자의 언세(言勢)도 또한 경(卿)의 말과 같았다. 옛날에도 또한 숙위(宿衛)를 많이 설치할 수 없다는 의논이 있었으니, 숙위사(宿衛司)의 속모치(速毛赤)336) 등을 혁파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니, 변계량이,
"상교(上敎)가 옳습니다. 숙위사(宿衛司)의 속모치(速毛赤)는 세자에게 무익(無益)하니 이를 혁파하였다가, 스스로 새 사람이 되기를 기다려서 다시 세워도 가(可)할 것입니다. 다만 오래도록 서연(書筵)을 파하는 것은 불가(不可)하니, 세자가 허물이 있다면 더욱 강경(講經)에 부지런하여야 합니다. 청컨대, 속히 다시 설치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내가 마땅히 다시 설치하겠다. 그 요속(僚屬)은 정밀히 선택(選擇)을 더하여 조극관(趙克寬)·조모(趙慕)와 같은 자를 차하(差下)하지 말라. 효우(孝友)와 온인(溫仁)을 가르치는 것이 가(可)하다. 세자가 병조의 관원(官員)이 전교(傳敎)하는 날을 당하여 성언(聲言)하기를, ‘백성의 집에 거처하고자 한다.’고 하였으니, 그의 불공(不恭)하기가 이와 같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입에서 족히 책할 말이 나오지 않았으나, 그러나 경으로 하여금 가서 그 허물을 말하게 하고자 하는데, 경이 경숙(經宿)337) 하면서 수고스럽게 가야 할 것을 염려하여 7월 이후로 연기하여 보내겠다. 지금은 최한(崔閑)으로 하여금 한경(漢京)에 가서 숙빈(淑嬪)을 전(殿)에 돌아오게 하겠으나, 그 본가(本家)의 노비(奴婢)는 1구(口)도 전(殿)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니, 경은 그리 알라."
하니, 변계량이 대답하기를,
"세자가 백성의 집에 거처하고 싶다는 것은 어찌 다른 마음이 있겠습니까? 세자가 이미 사리를 알기 때문에 그가 하늘을 속이고 종묘(宗廟)를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임금을 속일까 두려워하여 스스로 원망하고 스스로 꾸짖다가 이러한 말을 발(發)하였을 것입니다. 세자가 어리(於里)에 대하여 끔찍이 사랑하다가 질고(疾苦)를 이루었다면 염려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지 않다면 먼 지방에 내쳐서 비밀히 통(通)하지 못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난번에 이와 같이 하였다면 반드시 이러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삼성(三省)에서 김한로의 죄를 청(請)하는데, 내가 마땅히 법대로 처치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세자로 하여금 절연(絶緣)하여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하니, 변계량이 아뢰기를,
"비록 지친(至親)이라도 큰 죄를 지으면 절연하여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예(例)인데, 하물며 장인[舅]이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경의 말이 옳다. 나도 마땅히 이를 처치하겠다."
하고, 최한을 한경(漢京)에 보내어 숙빈(淑嬪)을 본전(本殿)에 도로 들어가게 하고, 또 명하여 서연(書筵)을 다시 열게 하였다. 최한이 이르러 빈객(賓客) 조용(趙庸)·탁신(卓愼) 등에게 전지(傳旨)하기를,
"이미 지나간 것은 허물하지 않겠으니, 비록 후회하더라도 미칠 수가 있겠는가? 세자로 하여금 속히 전날의 허물을 고쳐서 스스로 새 사람이 되는 단서(端緖)를 속히 나에게 들리게 하라."
하니, 조용 등이 서연(書筵)에 나아가서 강(講)하기를 청(請)하자, 세자가 발의 종기를 가지고 사양하였다. 굳이 청하니, 또 사양하였다. 다시 청하기를,
"비록 편찮으시더라도 잠깐 서연청(書筵廳)에 나와서 저희들[某等]의 말을 들으소서."
하였으나, 또한 병이라 하여 사양하였다. 조용과 탁신과 서연관(書筵官)과 대간(臺諫)에서 사연을 같이하여 굳이 청하여 두 번 세 번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나오지 않았다. 조용 등이 또 청하기를,
"저희들에게 교지(敎旨)가 있었으니, 편복(便服) 차림으로 서연청(書筵廳)에 나오소서."
하여, 상교(上敎)를 가지고 고(告)하였으나 끝내 몸이 아프다고 하여 사양하니, 사람들이 모두 실망하였다. 뒤에 며칠 만에 내관(內官) 김순(金淳)이 서연관(書筵官)에게 말하기를,
"세자께서 복통(腹痛)으로 능히 청강(聽講)하지 못합니다."
하니, 빈객(賓客)과 서연관(書筵官)·대간(臺諫)에서 사연을 같이하여 굳이 청하였으나 몸이 아프다고 사양하였다. 조용이 눈물을 흘리며,
"내가 빈객(賓客)의 자리에 있은 지 이미 여러 해인데도 보도(補導)한 공효가 없으니, 통분(痛憤)하고 통분(痛憤)합니다. 청컨대, 잠깐 나와서 상교(上敎)를 들으소서. 만약 저희들을 상접하지 않겠다면 저하(邸下)의 뉘우치는 마음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니, 성상의 뜻을 움직일까 두렵습니다."
하였으나, 세자가 마침내 병이라 하여 사양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5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26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命司僕寺: "自今世子出入, 必待予命, 乃進鞍馬。" 召右賓客卞季良, 傳敎曰: "書筵賓客等誰歟?" 對曰: "趙庸、金汝知、卓愼及臣也。" 上曰: "捨此更無他求。 求之中國則可得, 求於本國則更不得也。 古者有賜死其母, 而子爲太子者。 金漢老雖有罪, 淑嬪何罪? 欲還納殿。" 季良啓曰: "婦人內夫家, 以夫爲重也。 淑嬪之情, 豈欲彰世子之過乎? 淑嬪所爲, 於婦道得矣, 淑嬪還殿甚當。 漢老雖被重罪, 於淑嬪何害? 臣嘗有此意, 欲啓而不敢也。" 上曰: "世子之言, 勢亦如卿之言也。 古者亦有不可多設宿衛之議, 罷宿衛司速毛赤等何如?" 季良曰: "上敎是矣。 宿衛司速毛赤無益於世子, 罷之, 以待自新而復立可也。 但久罷書筵不可。 世子有過, 尤勤講經, 請速復設。" 上曰: "予當復設, 其僚屬精加選擇, 毋以如趙克寬、趙慕者而差下, 敎以孝友溫仁可也。 世子當兵曹官員傳敎之日聲言曰: ‘欲處百姓之家。’ 其不恭如此。 予聞此言, 口不足責, 然欲使卿往言其過, 而慮卿經宿勞行, 期以七月後遣之。 今則欲使崔閑往漢京, 還淑嬪于殿, 而其本家奴婢, 不許一口得入于殿, 卿其知之。" 季良對曰: "世子之欲處百姓家者, 豈有他心? 世子已爲識理, 故恐其欺天、欺宗廟、欺父、欺君, 而自怨自責, 發此言也。 世子向於里昵愛成疾, 則不可不慮, 不然則屛諸遐方, 不使密通。 曩若如此, 必無此事。" 上曰: "三省請漢老之罪, 予當不置於法, 然欲使世子, 絶不爲親。" 季良啓曰: "雖至親, 若有大罪, 則絶不爲親例也, 況外舅乎?" 上曰: "卿之言是, 予當處之。" 遣崔閑于漢京, 還入淑嬪于本殿, 且命復書筵。 閑至, 傳旨於賓客趙庸、卓愼等曰: "旣往不咎, 雖悔可追? 俾世子速改前日之愆, 以自新之端, 速聞於予。" 庸等詣書筵請講, 世子辭以足腫。 固請又辭, 復請曰: "雖未寧, 暫出書筵廳, 以聽某等之言。" 亦辭以疾。 庸、愼及書筵官臺諫同辭固請, 至再至三, 尙不出。 庸等又請曰: "於某等有敎旨, 以便服出書筵廳, 告以上敎, 終以未寧辭, 人皆缺望。" 後數日, 內官金淳語書筵官曰: "世子以腹病, 未能聽講。 賓客及書筵官、臺諫同辭固請, 辭以未寧。" 趙庸涕泣曰: "吾在賓師之位, 已有年矣, 而無補導之效, 痛憤痛憤。 請暫出以聽上敎。 若不接某等, 則邸下悔悟之心未著, 恐動上意。" 世子終以疾辭。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5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26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