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조·대간에서 김한로·황희의 죄를 청하다
형조·대간(臺諫)에서 김한로(金漢老)·황희(黃喜)의 죄를 청하였다. 임금이 상소를 읽어보고 말하기를,
"아직 그대로 두라. 황희의 죄는 내가 이를 덮어두려고 하였는데, 김한로의 죄로 인하여 아울러 이를 논의함이 이미 지극한데 다시 청하지 말도록 하라. 황희의 사람됨은 나를 오랫동안 섬겨서 그가 승선(承宣) 노릇을 하였으나 나라를 속이지는 아니하였다. 근년에 이르러 그 자손(子孫)을 위하여 세자에게 아부하고자 하여 물음에 대답하기를 바르게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친근(親近)한 대신(大臣)도 또한 황희의 정직하지 않은 것을 말하여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다. 그 김한로의 죄는 어리석고 비루(卑陋)하기가 심하니, 구종수(具宗秀)의 일이 발각되지 아니하였을 때 변계량(卞季良)을 증인(證人)으로 삼고서 김한로가 눈물을 흘리며 갖추 아뢰기를, ‘비록 세자가 그 행동하는 바에 지나침이 있다면 감히 아뢰지 않겠습니까?’ 하였는데, 이말은 순량(順良)하였으나 그 뒤에 범한 바는 심히 비루하였다. 또 바르게 대답하지 않으므로, 내가 김경재(金敬哉)의 초사(招辭)를 받아서 김한로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김경재로 하여금 돌아가서 노모(老母)를 봉양(奉養)하게 하는 것도 또한 인정(人情)이다. 그러나, 노모(老母)가 나의 노모가 아닌데, 내가 어찌 불쌍히 여기겠는가? 김경재가 근기(近畿) 지방에 거주(居住)하면 숙빈(淑嬪)으로 인연하여 내왕(來往)이 없지 않을 것이니, 다른 곳에다 안치(安置)하고자 한다. 너희들은 그리 알라."
하고, 이에 최한(崔閑)에게 명하여 승정원(承政院)에 전지(傳旨)하기를,
"마땅히 김경재에게는 전날 세자의 말을 받들어 그 아비에게 고(告)한 언사(言辭)와 그 아비가 회답(回答)한 일을 물어서 취초(取招)하고, 마땅히 이효인(李孝仁)에게는 전날 명(命)을 받들고 김한로를 선유(宣諭)한 일과 김한로의 회답한 사연을 물어서 취초(取招)하여서 후일의 고찰(考察)에 증거가 되게 하라. 그 김경재는 과천(果川)의 조모(祖母) 집으로 도로 나아가도록 허락하되, 출입(出入)하지 말도록 하라. 만약 근신하지 않는 바가 있다면 성명(性命)이 가석(可惜)할 것이니, 삼가도록 하라. 김한로를 임용(任用)한 지가 오래 되고, 또 세자의 처부(妻父)이기 때문에 내가 중한 형벌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하고, 즉시 김경재에게 전지(傳旨)하니, 김경재가 초사(招辭)하기를,
"이달 12일에 세자가 나에게 공초(供招)하여 말하기를, ‘너의 아비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므로, 불가(不可)한 것을 알지 못하였다고 질문에 대답하였다. 이제 내가 이미 아뢰었으니, 숨기지 말고 바른 대로 계문(啓聞)하는 것이 가(可)하다. 내가 연화동댁(蓮花洞宅)으로 나갔을 때 판서(判書)가 나와 말하기를, 「새 여자이면 불가(不可)하나, 어리(於里)는 새 여자가 아니니, 전(殿)에 들어가도 방해될 것이 없습니다. 그 전(殿)에 들어가는 일은 어머니와 아내[妻]가 출입(出入)할 때 가히 도모할 수가 있습니다.」고 하였다. 또 지난해 나의 생일 날에 나와 어리(於里)가 같이 앉았는데, 판서가 친히 이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받들고 아버지에게 갖추 고(告)하니, 아버지가 말하기를, ‘지난해 생일에 전(殿) 안에 들어갔다가 종전에 알지 못하던 한 여자가 장지[障子]335) 안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가이(加伊)에게 물으니, 가씨(加氏)가 답하기를,「이것이 그 여자입니다.」고 한 뒤에야 나도 또한 이를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나머지 사연(辭緣)은 아버지가 대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고, 이효인이 초사(招辭)하기를,
"이달 14일에 교지(敎旨)를 받들고 김한로를 만나서 김경재가 전하여 말하였던 말을 묻기를, ‘경은 알고 있는가? 유사(攸司)에서 전라도의 먼 지방에 부처(付處)하기를 청하나, 내가 이에 충청도에 부처하게 하였다. 근관(近官)이 또한 김경재를 충청도의 먼 지방에 부처하기를 청하나, 내가 이에 조모(祖母)와 한곳에 부처하게 하였는데, 경은 그것을 알고 있는가?’고 하니, 김한로가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신의 죄가 열 번 죽어도 마땅한데, 장(杖) 1대도 받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내려 보낸 은혜를 한 마디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하고 이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니, 대언(代言) 등이 이를 갖추어서 아뢰었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26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 / 정론(政論)
- [註 335]장지[障子] : 방에 간을 막아 끼우는 제구. 미닫이와 비슷하나 운두가 높고 문지방이 낮게 된 문.
○刑曹、臺諫請漢老、黃喜之罪, 上覽疏曰: "姑留之。 黃喜之罪, 予欲掩之, 因漢老之罪而幷論之已極, 毋令更請。 喜之爲人, 事予久矣。 其爲承宣, 不欺國, 至于近年, 爲其子孫欲附世子, 對問不直, 親近大臣亦言喜之不直, 乃至於此, 其(漢於)〔漢老〕 之罪, 則庸陋爲甚。 具宗秀事之未發也, 以卞季良爲證, 而漢老墮淚具啓曰: ‘雖世子, 其所行有過, 則敢不啓乎?’ 此言爲良。 其後所犯甚陋, 又不直對。 予欲取敬哉之招, 以示漢老, 使敬哉歸養老母, 亦是人情。 然老母非予老母, 予何恤乎? 敬哉居近畿, 因緣淑嬪, 不無來往, 欲於他處安置, 爾等其知之。" 乃命崔閑傳旨承政院曰: "當敬哉問, 前日承世子之言, 告其父之言辭及其父回答之事而取招。 又當李孝仁問, 前日承命宣諭漢老之事及漢老回答之辭而取招, 以憑後考。 其敬哉許令還就果川祖母家, 毋得出入, 如有所不謹, 則性命可惜, 愼之。 漢老任用久矣, 且以世子妻父之故, 予不欲用重典。" 卽傳旨於敬哉, 敬哉招辭曰: "今月十二日, 世子招我言: ‘汝父以已知之事, 對問以不知不可。 今吾已啓, 毋諱而以直啓聞可也。 吾出蓮花洞宅時, 判書與吾言: 「新女則不可, 於里非新女, 入殿不妨。 其入殿之事, 母及妻出入時可圖。」 又於前年吾生日, 吾與於里同坐, 判書親見之。’ 承此具告于父, 父曰: ‘前年生日進殿內, 得見有一從前未知女坐在障子內, 問於加伊, 加氏答曰: ‘此其女也。’ 然後我亦知之。" 餘辭父不答。
李孝仁招辭曰: "今月十四日, 奉旨當漢老問: ‘子敬哉傳說之言, 卿其知乎? 攸司請付處全羅遐方, 予乃付處忠淸。 近官亦請付處敬哉于忠淸道遐方, 予乃付處祖母一處, 卿其知乎?’ 漢老伏地曰: ‘臣已知之, 臣罪當十死, 不受一杖, 近處下送之恩, 一口難言。’ 仍墮淚。"
代言等具此以啓。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26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