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과 숙위사 장무를 가두다
명하여 서연(書筵)과 숙위사(宿衛司) 장무(掌務)를 가두었다. 의금부(義禁府) 부진무(副鎭撫) 이효인(李孝仁)을 한경(漢京)에 보내어 어리(於里)를 내쫓아 그 부모에게 맡겨서 세자전(世子殿)과 서로 통(通)할 수 없게 하고, 서연(書筵) 장무(掌務) 정자(正字) 조극관(趙克寬)·숙위사(宿衛司) 장무(掌務) 지통례문사(知通禮門事) 조모(趙慕) 등을 잡아 와서 의금부에 가두었다. 세자(世子)가 유후사(留後司)에서 한경(漢京)으로 돌아갈 적에 조모와 조극관이 따라갔는데, 세자가 빠르게 말을 달려서 한경(漢京)에 이르러 연화동(蓮花洞) 김한로(金漢老)의 집에 들어가서 숙빈(淑嬪)과 어리(於里)를 만나니, 종자(從者)인 호군(護軍) 정중수(鄭中守)가 이를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았었다. 정중수가 드디어 달려와서 고(告)하니, 임금이 노하여 즉시 이효인을 보내고, 또 병조 정랑(兵曹正郞) 서성(徐省)을 경도(京都)321) 에 보내어 세자를 힐책하기를,
"중궁(中宮)과 자녀(子女)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를 말하고 나도 차마 법대로 처치하지 못하여, 너의 처부(妻父)로 하여금 가볍게 죄를 받게 하였다. 처부(妻父)가 아직 한강(漢江)을 넘지 않았는데, 네가 또 뉘우치지 못하여 바로 전(殿)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숙빈(淑嬪)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갔으니, 그 마음보가 무엇인가? 정중수는 오히려 들어가 만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나에게 불효(不孝)하는가?"
하고, 이어서 서연(書筵)과 숙위(宿衛)를 파하고, 사람들이 전(殿) 안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임금이 좌우(左右) 신하들에게 일렀다.
"숙빈(淑嬪)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이를 사제(私第)로 내쫓은 것은 그 아비를 미워한 때문이다. 내가 세자가 돌아갈 적에 숙빈(淑嬪)의 일을 말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내가 사람을 보내어서 이를 처리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니, 세자가 대답하기를, ‘장차 환관(宦官)으로 이를 지키소서.’하고 하였으므로, 내가 꾸짖었다. 이제 김한로의 죄가 무겁고 한강(漢江)을 넘지 않았는데,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이 없고, 또 그 집에 들어갔는데, 그 뜻이 어찌 숙빈(淑嬪)을 위한 것이겠느냐? 바로 어리(於里)를 사랑하는 때문이니, 내가 심히 이를 미워한다. 정중수는 무부(武夫)인데도 또한 그 불가(不可)한 것을 알았는데, 시종(侍從)하는 관원이 어찌 간(諫)하여 정지시키지 않았는가? 내가 이 말을 듣고 이미 사람을 보내어 조극관과 조모를 잡아서 왔다. 내가 세자에게 김한로의 죄를 나라에 알리고자 한다고 말하니, 세자가 드러내지 말라고 굳이 청하였던 까닭으로 실행하지 아니하였다. 이제 내가 차마 입을 다물고 있지 못하여 여러 경(卿)들에게 알리니, 경들은 이를 들어라.
내가 세자에게 말하기를, ‘시속(時俗)에서 처부(妻父)를 칭하기를 장인(丈人)이라고 한다. 너의 장인이 바르지 못하여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니, 형문(刑問)322) 하도록 하는 것이 가(可)하겠다.’하니, 세자가 말하기를, ‘지난번에 책망을 당하고 숙빈(淑嬪)의 본집에 다다르니, 숙빈(淑嬪)과 부모(父母)·조모(祖母)가 함께 있었고 어리(於里)도 또한 옆에 있었습니다. 김한로가 술잔을 잡아서 위로하면서 말하기를, 「새 첩을 들인다면 서계(誓戒)를 저버리는 것이니 불가합니다. 이 여자는 전하가 아시는 바이니, 도로 들이는 것이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만약 비밀히 들이고자 한다면 가인(家人)과 우리 어머니가 전(殿) 안에 출입할 적에 계집종[婢女]인 것처럼 만든다면 몰래 데리고 출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하였다. 내가 묻기를, ‘김한로가 먼저 말하였는가? 네가 김한로에게 이러한 흉계를 청하였는가?’고 하니, 세자가 대답하기를, ‘내가 어리(於里)를 보고 싶다고 말하니, 전(殿) 안에 출입하는 음모를 장인이 말하였습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간휼한 음모를 김한로가 한 것이다. 안문(按問)하기에 이르러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기 때문에 그 아들 김경재(金敬哉)에게 명하여 세자의 말한 바를 전(傳)하여 타이른 뒤에야 김한로가 복초(服招)하였다. 처부(妻父)로서 사위의 첩(妾)을 들여 주고, 사위로서 처부(妻父)에게 말하여 첩(妾)을 들이었으니, 심히 인정(人情)에 거슬렸다. 김한로로서 해야 할 바는 나를 칭탁하고 대답하지 않는 것이 가(可)한데, 간휼한 음모가 이와 같이 심하였다. 김한로는 나와 급제(及第)의 동년(同年)이요, 서로 안 지도 가장 오래된다. 태조(太祖) 때에 있어서는 침체(沈滯)되었다가, 내가 즉위하자 이에 승선(承宣)을 제수(除授)하여서 재보(宰輔)에 이르렀고, 또 혼인(婚姻)을 하였는데, 금일에 이에 이러한 행동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또 사람들이 모두 황희(黃喜)를 간사하다고 하나, 나는 간사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심복(心腹)에 두었는데, 이제 김한로의 죄가 이미 발각되고, 황희도 또한 죄를 면하지 못하니, 지금이나 뒷날에 곧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황희는 이미 늙었으니, 오로지 세자에게 쓰이기를 바라지는 않겠으나 다만 자손(子孫)의 계책을 위해서 세자에게 아부하고 묻는 데 바른 대로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폐(廢)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으니, 인신(人臣)으로서 어찌 두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겠느냐? 지난번에 유양(柳亮)·이숙번(李叔蕃)이 세자를 항상 보기를 원하였으나, 내가 곧 이를 금지시키고 말하기를, ‘지금 내가 위에 있는데 어찌 세자를 섬기겠느냐?’ 하였다. 이것은 인신(人臣)의 의(義)가 아니다."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김한로와 황희의 죄를 청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24면
- 【분류】사법-법제(法制)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왕실-종친(宗親)
○甲子/命囚書筵及宿衛司掌務。 遣義禁府副鎭撫李孝仁于漢京, 黜於里, 囑其父母, 不得與世子殿相通。 執書筵掌務正字趙克寬、宿衛司掌務知通禮門事趙慕等來, 囚于義禁府。 世子自留後司還漢京, 慕及克寬從之。 世子疾馳而至京, 歷入蓮花洞 漢老家, 見淑嬪及於里, 從者護軍鄭中守止之不聽。 中守遂奔告, 上怒, 卽遣孝仁, 又遣兵曹正郞徐省于京都, 責世子曰: "中宮與子女涕泣道之, 予不忍置之於法, 使汝妻父受罪以輕。 妻父不過漢江, 而汝又不悛, 不直還殿, 橫入淑嬪家, 其心何哉? 中守猶以入見爲非, 汝何不顧宗社, 不孝於我乎?" 乃罷書筵及宿衛, 禁人出入殿內。 上謂左右曰: "淑嬪有何罪焉? 黜之私第者, 疾其父也。 予於世子之還, 說淑嬪之事, 仍曰: ‘待予送人以處之。’ 世子答曰: ‘將以宦守之。’ 予叱之。 今漢老罪重, 而不過漢江, 略無憂色, 又入其家, 其意豈爲淑嬪乎? 乃愛於里也。 予甚疾之。 中守武夫也, 亦知其不可, 侍從之官何不諫止? 予聞此言, 已遣人拿克寬與趙慕以來。 予語世子, 以欲布漢老之罪於國家, 世子固請勿露, 故不果。 今予不忍含默, 以告諸卿, 卿等聽之。 予語世子: ‘俗稱妻父爲丈人, 汝丈人不直, 而對以不知, 可令刑問。’ 世子言曰: ‘向者被責, 到淑嬪本第, 淑嬪及父母祖母咸在, 而於里亦在側。 漢老把酒慰之曰: 「納新妾, 則背誓戒, 不可。 此女則殿下之所知, 何害還納? 如欲密納, 則家人與吾母出入殿內, 若作婢子, 則可潛率出入矣。」’ 予問曰: ‘漢老先言乎? 汝請漢老以此計乎?’ 世子答曰: ‘吾說欲見於里耳。 出入殿內之謀, 丈人說之。’ 然則譎謀漢老爲之也。 至於按問, 對以不知, 故命其子敬哉, 以世子所言傳諭, 然後漢老服招。 以妻父納壻妾, 以壻說妻(夫)〔父〕 而納妾, 甚拂人情。 爲漢老計者, 託予莫對可也, 譎謀如此甚矣。 漢老與予, 及第同年, 相知最久。 在太祖時沈滯, 及予卽位, 乃授承宣, 以至宰輔, 且爲婚姻, 不意今日, 乃爲此行。 且人皆以黃喜爲奸, 予則不以爲奸, 置之腹心, 今漢老之罪已發, 喜亦不免, 而今而後乃知其實。 喜已老矣, 端不望於世子, 但爲子孫之計, 附於世子, 而對問不直, 故今廢爲庶人。 人臣豈可有二心哉? 曩者, 柳亮、李叔蕃欲常見世子, 予乃止之曰: ‘今予在上, 何事世子乎?’ 此皆非人臣之義也。" 於是, 左右皆請漢老、黃喜之罪。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24면
- 【분류】사법-법제(法制)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