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33권, 태종 17년 4월 25일 신사 3번째기사
1417년 명 영락(永樂) 15년
완산 부원군 이천우의 졸기
완산 부원군(完山府院君) 이천우(李天祐)가 졸(卒)하니, 쌀·콩 아울러 70석을 치부(致賻)하고, 3일 동안 철조(輟朝)하며, 시호(諡號)를 양도(襄度)라 하였다. 이천우는 소시적부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고, 풍의(風儀)가 아름다운데다가 기도(器度)274) 가 있었다. 태조(太祖)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부터 종사하여 여러 번 전공(戰功)이 있어, 명하여 원종 공신(原從功臣)을 삼았더니, 무인년(戊寅年)275) ·경진년(庚辰年)276) 에도 정사 공신(定社功臣)·좌명 공신(佐命功臣)의 반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임금이 그에게 일을 위임하니, 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를 거쳐 이조(吏曹)·병조 판서(兵曹判書), 의정부 찬성(議政府贊成)으로서 오랫동안 병정(兵政)을 전장(典掌)하였다. 그러나 많은 시첩(侍妾)을 두었고, 자식들에 대하여 은혜가 적었다. 아들이 둘이니, 이굉(李宏)·이완(李完)이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59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