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28권, 태종 14년 7월 21일 임진 1/1 기사 / 1414년 명 영락(永樂) 12년
도성에 행랑을 건축할 것을 명하다
국역
도성(都城)의 좌우 행랑(左右行廊)을 지으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종루(鐘樓)에서 남대문(南大門)에 이르기까지 종묘(宗廟) 앞 누문(樓門)에서 동대문(東大門) 좌우에 이르기까지 행랑(行廊)을 짓고자 한다. 내가 이미 백성들에게 원망을 들었으니, 오히려 조성(造成)하기를 끝마쳐서 자손을 연익(燕翼)210) 하겠다. 마땅히 충청도·강원도 양도의 연례로 작취(斫取)하는 재목(材木)을 가지고 짓도록 하라."
박신(朴信)·한상경(韓尙敬)·정탁(鄭擢)·황희(黃喜) 등이,
"연례의 제목(材木)으로는 두루 족(足)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마땅히 충청도·강원도의 물가 각 고을에 적당히 혜아려 분정(分定)하여야 합니다."
하고, 박신이 또 별요(別窯)를 다시 두어서 개와(蓋瓦)를 준비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모두 허락하였다. 박자청(朴子靑)에게 명하여 그 역사를 감독하게 하고, 양계(兩界)·각도(各道)의 승군(僧軍) 6백 명과 경기(京畿)·풍해도(豐海道)의 선군(船軍) 1천명을 징발하여서 그 역사에 나오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8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8면
- 【분류】군사-지방군(地方軍) / 건설-건축(建築) / 재정-역(役) / 사상-불교(佛敎) / 상업-시장(市場)
- [註 210] 연익(燕翼) : 조상이 자손을 도와 평안하게 함.
원문
태종 14년 (1414) 7월 21일
국역
도성(都城)의 좌우 행랑(左右行廊)을 지으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종루(鐘樓)에서 남대문(南大門)에 이르기까지 종묘(宗廟) 앞 누문(樓門)에서 동대문(東大門) 좌우에 이르기까지 행랑(行廊)을 짓고자 한다. 내가 이미 백성들에게 원망을 들었으니, 오히려 조성(造成)하기를 끝마쳐서 자손을 연익(燕翼)210) 하겠다. 마땅히 충청도·강원도 양도의 연례로 작취(斫取)하는 재목(材木)을 가지고 짓도록 하라."
박신(朴信)·한상경(韓尙敬)·정탁(鄭擢)·황희(黃喜) 등이,
"연례의 제목(材木)으로는 두루 족(足)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마땅히 충청도·강원도의 물가 각 고을에 적당히 혜아려 분정(分定)하여야 합니다."
하고, 박신이 또 별요(別窯)를 다시 두어서 개와(蓋瓦)를 준비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모두 허락하였다. 박자청(朴子靑)에게 명하여 그 역사를 감독하게 하고, 양계(兩界)·각도(各道)의 승군(僧軍) 6백 명과 경기(京畿)·풍해도(豐海道)의 선군(船軍) 1천명을 징발하여서 그 역사에 나오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8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8면
- 【분류】군사-지방군(地方軍) / 건설-건축(建築) / 재정-역(役) / 사상-불교(佛敎) / 상업-시장(市場)
- [註 210] 연익(燕翼) : 조상이 자손을 도와 평안하게 함.
원문
원본
태종 14년 (1414) 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