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 5월 5일 계미 1번째기사
1413년 명 영락(永樂) 11년
공조 판서 박자청에게 직임에 나오도록 명하다
공조 판서 박자청(朴子靑)에게 명하여 직임에 나오도록 하였다. 처음에 시정(市井)의 무리들이 단오(端午)라 하여 광통가(廣通街)에 모여서 척석희(擲石戲)171) 를 하였는데, 군기 소감(軍器少監) 최해산(崔海山)이 별군(別軍) 30여 인을 거느리고 곁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와 승세(勝勢)를 타고 추격하매, 박자청이 대장(隊長)·대부(隊副)를 거느리고 갑자기 척석(擲石)놀이 하는 장소로 들어가다가 말이 뛰어 오르며 치는 바람에 땅에 떨어지니, 대장(隊長) 1인이 돌에 맞아 죽었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비루(鄙陋)하게 여기고, 이르기를,
"판서의 직임이 가석(可惜)하다."
하니, 헌부(憲府)에서 듣고 그를 탄핵하였었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25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70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풍속-풍속(風俗)
- [註 171]척석희(擲石戲) : 오월 단오날에 시정(市井)의 무리들이 두 패로 나누어서 승부를 겨루던 돌싸움. 일종의 무술 연마로서 행하여졌으나, 사상자가 많이 나서 조선조에서 금지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