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를 사모하는 내용의 시를 지은 서견을 임금이 용서하다
의정부에서 전 사헌 장령(司憲掌令) 서견(徐甄)을 힐문(詰問)하기를 청하니, 묻지 말라고 명하였다. 서견이 금주(衿州)에 살 때 시를 지었었다.
‘천 년(千年)의 신도(新都)가 한강(漢江)을 사이하는데, 충량(忠良)들이 성하게 밝은 임금도웁네. 삼한(三韓)을 하나로 통일한 공이 어데 있는고? 도리어 전조(前朝)의 왕업이 길지 못한 것이 한(恨)스럽도다.’
한스럽다[恨]는 글자를 탄식한다[嘆]는 글자로 고쳐서 전가식(田可植)에게 보이니, 전가식이 참찬(參贊) 김승주(金承霔)에게 고(告)하였다. 김승주가 정부에 말하니, 서견을 잡아서 시를 지은 뜻을 묻도록 청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전조(前朝)의 신하가 전조를 잊지 못하는 것은 인정이다. 옛적에 장양(張良)이 한(韓)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갚았는데, 군자가 옳게 여기었다. 우리 이씨(李氏)도 어찌 능히 천지(天地)와 더불어 무궁할 수 있겠는가? 만일 이씨의 신하에 이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다. 마땅히 내버려두고 묻지 말라."
그 뒤에 광연루(廣延樓)에서 정사를 보는데,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서견의 지은 시는 물을 것이 없다."
하니, 대사헌 유정현(柳廷顯)이 대답하기를,
"신 등은 묻고자 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서견의 전조의 신하로서 추모하여 시를 지었으니, 또한 착하지 않은가?"
하니, 사간(司諫) 이육(李稑)이 나와서
"서견이 비록 전조의 신하이나 몸은 아조(我朝)에 있으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서견이 북면(北面)하여 나를 섬기지 않으니, 어찌 우리 신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경 등이 반드시 묻고자 한다면 백이(伯夷)의 도를 그르다고 한 뒤에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니, 대언(代言) 한상덕(韓尙德)이 나와서
"이 시의 위 구절은 비록 아조를 아름답게 여겼으나, 아래 구절은 전조를 사모하여 지은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서견이 전조에서 벼슬이 장령(掌令)에 이르렀는데, 지금은 쓰이지 못하였으니, 추모하는 것이 무엇이 불가한가? 만일 서견을 죄준다면, 길재(吉再)는 바야흐로 관직을 제수하였는데도 가버렸으니, 이것도 또한 불가한가?"
일이 드디어 정지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3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36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역사-전사(前史)
○庚子/議政府請詰前司憲掌令徐甄, 命勿問。 甄居衿州, 有詩云: "千載新都隔漢江, 忠良濟濟佐明王。 統三爲一功安在! 却恨前朝業不長。" 改恨字書嘆字, 示田可植, 可植以告參贊金承霔, 承霔言於政府, 請執甄問作詩之意。 上曰: "前朝之臣, 不忘前朝, 其情也。 昔張良爲韓復讎, 君子是之。 吾李氏豈能與天地無窮哉? 儻李氏之臣, 有如此者, 可嘉也, 宜置而勿問。" 厥後御廣延樓視事, 顧左右曰: "徐甄所作詩, 不足問也。" 大司憲柳廷顯對曰: "臣等欲問。" 上曰: "甄以前朝之臣, 追慕作詩, 不亦善乎!" 司諫李稑進曰: "甄雖前朝之臣, 身在我朝, 不可不問。" 上曰: "甄不北面朝我, 豈可謂我之臣乎! 卿等必欲問之, 則以伯夷之道爲非, 然後可問。" 代言韓尙德進曰: "此詩上句, 雖美我朝, 下句則慕前朝而發。" 上曰: "甄於前朝, 官至掌令, 不見用於今而追慕之, 奚爲不可! 若罪甄, 則吉再方除職而去之, 是亦不可乎?" 事遂寢。
- 【태백산사고본】 10책 23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36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