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승 성석린이 사직을 청하니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다
좌정승(左政丞) 성석린(成石璘)이 사직하여 상언하였다.
"조영무(趙英茂)는 나이가 아직 쇠하고 늙지도 않았으니 직임을 감당할 만하지마는, 신은 나이 74세여서 이미 치사(致仕)할 때가 지났습니다. 지난번에 상서하여 사면하였으나, 유윤(兪允)을 얻지 못하여, 드디어 대간의 비방과 국인(國人)의 무시를 당하였습니다. 어제 대언(代言)을 보내어 신으로 하여금 출사(出仕)하게 하였으므로 부득이하여 나오기는 하였으나, 몹시 부끄러워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또 조사(朝士)가 대간(臺諫)의 기강(紀綱)을 꺼리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풍속입니다. 신이 대간의 무시를 당하고도 버젓이 직사에 나오면 또한 녹을 탐하고 은총을 생각한다는 비방이 있는 것이니, 물러가 숨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이미 직사에 나오게 하였는데, 대간의 말을 두려워하는가? 경중(輕重)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성석린이 말하였다.
"대간의 말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전(傳)》에 말하기를, ‘여러 신하를 내 몸과 같이 여긴다.’라고 하였으니, 원컨대, 노신(老臣)의 마음을 알아주시어 신의 여년(餘年)을 편안히 지내도록 해 주시고, 풍교(風敎)를 세워서 후세에 녹을 생각하고 은총을 굳게 하는 사람을 경계하소서."
임금이,
"경이 물러가기를 원한 지가 여러 해이나, 이런 까닭으로 사면할 수는 없으니, 가서 일을 보도록 하라."
하였다. 대간에서 또 상언하였다.
"정부(政府)에서 진언(進言)한 것이 다만 피혐(避嫌)하는 일이고, 손흥종(孫興宗) 등의 일에 대하여 가부를 말한 것이 없으니, 청컨대, 전일에 올린 일을 육조(六曹)에 내리어 그 죄를 밝히어 이론(異論)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할 줄을 알게 하소서."
또 성석린(成石璘)·조영무(趙英茂)와 공신 조온(趙溫)·안경공(安景恭)·정탁(鄭擢)·조견(趙狷)·한상경(韓尙敬)·유창(劉敞) 등이 말감(末減)을 따르기를 청한 연유를 탄핵하고 상서하였다.
"남은(南誾)은 공이 있어 홀로 면하고 손흥종(孫興宗)·황거정(黃居正)이 또한 성명(性命)을 보전하였으니, 이것은 죄는 같은데 벌은 다른 것입니다. 또 조영무가 공신 조온 등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와 감(減)하기를 청하였으니, 이것도 또한 손흥종의 당(黨)입니다. 성석린이 또한 조영무에게 붙어서 시비를 돌아보지 않고 대궐에 나와 감하기를 청하였으니, 이는 또한 무슨 생각입니까?"
임금이 힐문하였다.
"여러 해 된 일이 족히 징계되었는데, 어째서 다시 말하는가? 또 조정 사신을 앞으로 누가 대접하라고 정부를 내보내겠는가? 좌상(左相)은 감하기를 청한 일이 없는데, 어째서 탄핵하는가?
대간에서 대답하였다.
"신하가 임금을 속인 것은 죽어도 남은 죄가 있는데, 이제 다만 서인(庶人)으로만 되게 하였으므로 다시 청하는 것입니다. 또 사신을 접대하는 것이 급함은 모르고, 다만 법을 밝히지 않을 수 없는 것만 압니다. 성석린이 대궐에 나와 손흥종 등의 죄는 청하지 않고, 오직 피혐(避嫌)하는 것만을 말하였기 때문에 말한 것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정부(政府)의 의논이 비록 잘못되었으나, 대간(臺諫)에서도 또한 그릇되었다. 망령되게 감하기를 청하였다고 칭하여 대신을 탄핵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 사신의 접대도 정부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드디어 청가(請假)179) 하게 하였다. 임금이 좌우를 물리치고 지신사(知申事) 김여지(金汝知)·대언(代言) 조말생(趙末生)을 나오게 하여,
"정부와 대간에서 형세가 서로 용납하지 않으니, 권도로 대간을 꺾은 뒤에 정부로 하여금 출사하게 하는 것이 옳겠다."
하고, 또
"박은(朴訔)은 이종학(李種學)의 일가인데, 어째서 강경하게 이러한 행동을 하는가?"
하니, 김여지가 말하였다.
"이종학을 교살한 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박은이 마땅히 피하겠지만, 그 일이 이미 나타났으니 왕법으로 반드시 베어야 합니다. 족친이라 하여 피할 수는 없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내 생각도 또한 그와 같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2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00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
- [註 179]청가(請假) : 관리가 휴가(休暇)를 청(請)하던 일. 여기서는 관리가 허물이 있을 때 스스로 물러가기 위하여 말미를 청하던 것을 말함.
○辛亥/左政丞成石璘辭。 上言曰:
英茂年未衰老, 宜克堪任, 臣年七十有四, 已經致仕之時。 向者上書辭免, 未蒙兪允, 遂致臺諫之誚、國人之欺。 昨遣代言, 令臣出仕, 故不獲已而出, 然羞愧之極, 目不能覩。 且朝士憚臺綱, 誠美俗也。 臣被臺諫之欺, 倨然就職, 亦有貪祿懷寵之譏, 深願退藏。
上曰: "予已令就職矣, 畏臺諫之言乎? 其於輕重何如?" 石璘曰: "非重臺諫之言也。 《傳》曰: ‘體群臣。’ 願體老臣之心, 俾養臣之餘年, 以樹風敎, 戒後世懷祿固寵之人。" 上曰: "卿之乞退有年矣。 然未可因此辭免也, 其往視事。" 臺諫又上言曰: "政府進言者, 但避嫌之事, 未有可否興宗等事。 請下前日所上之事于六曹, 以明其罪, 使異論者知愧。" 又劾石璘、英茂及功臣趙溫、安景恭、鄭擢、趙狷、韓尙敬、劉敞等請從末減之由, 仍上書曰:
南誾有功獨免, 興宗、居正亦全性命, 則是罪同罰異也。 且英茂率功臣趙溫等, 詣闕請減, 是亦興宗之(儻)〔黨〕 也。 石璘亦附英茂, 不顧是非, 詣闕請減, 是亦何心哉?
上詰之曰: "積年之事, 足以懲之矣, 何以更言? 且朝廷之使, 誰將待之, 而乃遣政府乎? 左相則固無請減, 何以劾之?" 臺諫對曰: "臣之欺君, 死有餘辜, 今只爲庶人, 故更請之耳。 且不知接待使臣之爲急, 而唯知法之不可不明耳。 石璘詣闕, 不請興宗等罪, 唯以避嫌爲辭, 故言之。" 上曰: "政府之議雖失, 臺諫亦誤矣。 妄稱請減, 以劾大臣, 非也。 且使臣之待, 非政府而誰歟?" 遂令請假。 上辟左右, 進知申事金汝知、代言趙末生曰: "政府臺諫, 勢不相容, 權挫臺諫, 而後, 令政府出仕可也。" 又曰: "朴訔, 乃種學之族, 何强爲此擧?" 汝知曰: "絞殺種學之事未彰, 則訔當避之。 其事已著, 則王法所必誅也。 不可以族親避之。" 上曰: "予心亦如此耳。"
- 【태백산사고본】 9책 22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00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