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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9권, 태종 10년 5월 1일 정묘 5번째기사 1410년 명 영락(永樂) 8년

동맹가첩목아가 이대두를 보내 경원 지방의 침구에 대해 말하고 화호를 청하다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이대두(李大豆)를 보내어 말하기를,

"착화(着和)파아손(把兒遜)의 관하(管下)가 경원을 침략할 때에, 내가 또한 함께 온 것은 핍박되어 세(勢)가 부득이해서일 뿐이고, 나의 본심(本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예전 땅[舊土]을 버리고 먼 지역에 종사하니, 사람은 많고 땅은 좁아 생리(生理)가 심히 곤란합니다. 원컨대, 전하께서 언어(言語)를 잘 통하는 김동개(金同介) 같은 사람을 보내어 타이르시면, 내가 마땅히 자식을 보내어 입조(入朝)하고, 나의 예전 땅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대두(大豆)를 후하게 대접하라."

하였다. 동북면 찰리사(東北面察理使)가 또 아뢰기를,

"골간 올적합(骨看兀狄哈) 두칭개(豆稱介)는 적(賊)과 동모(同謀)하지 않고 바닷섬으로 들어가, 가끔 사람을 경원(慶源)에 보내어 사정을 통하였습니다. 김동개(金同介)는 본래 골간 올적합의 종류이니, 청컨대, 보내어 초안(招安)하소서."

하니, 임금이 허락하였다.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가 길주 찰리사(吉州察理使) 연사종(延嗣宗)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였다.

"오랫동안 격조(隔阻)하여 뵙지 못하였는데, 지금 와서 진무(鎭撫)한다 하시니, 매우 기쁩니다. 전(前) 찰리사(察理使)가 국가의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야인(野人) 올적합(兀狄哈) 김문내(金文乃)·갈다개(葛多介) 등 도적질한 사람을 제재하여 그 죄를 바루려고 왔었는데, 길이 먼 것을 칭탁하여 바로 그곳으로 가려 하지 않고, 중로(中路)에서 모련위(毛憐衛)의 장인 관원(掌印官員)과 백성들을 모두 살해하였습니다. 지금 살해된 사람의 부형(父兄)과 자제(子弟)의 남아 있는 자들이, 나에게 핍박하여 말하기를, ‘지휘(指揮)가 지금 조선(朝鮮)을 향하여 가지 않는다면, 지휘가 반드시 조선과 편지를 통하여 계책을 정해, 우리들을 협공(挾攻)하려는 것이 분명하오.’ 하므로, 나도 또한 퇴피(退避)하지 못하고, 군사를 끌고 맞아 머물[迎留]렀습니다. 상항(上項)의 모련위(毛憐衛) 사망(死亡)한 유종(遺種)들이 먼저 아오지(阿吾知) 지면(地面)에 이르렀으므로,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따라가 그들의 침략(侵掠)을 금하고, 영솔(領率)해 돌아오려고 하였는데, 경원(慶源) 군마(軍馬)가 이르러 접전(接戰)하여, 양방(兩方)이 서로 살해(殺害)하였습니다. 모련위 유종들이 경원(慶源) 관가(官家)를 파괴하고, 가속(家屬)·전물(錢物)·우마(牛馬)를 모두 약탈하여 그 분(忿)을 풀려고 하므로, 내가 달래어 말하기를, ‘내가 이미 사람을 시켜 조선에 보내어 포로해 간 인구를 돌려보내 달라고 청하였으니, 군사를 퇴각시켜 각기 예전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였는데, 이대두(李大豆)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전(前) 찰리사(察理使)는 국가에서 죄를 의논하여 잡아 가고, 지금 좋은 찰리사(察理使)가 지경에 이르러 옛날의 화호(和好)를 닦고자 한다.’ 하므로, 다시 이대두를 시켜 앞으로 가게 하니, 만일 잡아 간 인구를 모두 돌려보내어 저쪽과 우리의 인구로 하여금 예전과 같이 편안히 살게 하면, 이것은 진실로 영공(令公)의 명예[聲譽]에 관계되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이 일을 침식(寢息)시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만일 흔단(釁端)을 계속하여 마지 않으면, 수많은 종류(種類)가 도적질을 자행하여 변방(邊方)을 소요하게 할 것이니, 보고 듣는 것이 상서롭지 못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짐작(斟酌)068) 하여 시행하여 이대두가 돌아오는 편에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어허리(於虛里)도 또한 연사종(延嗣宗)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대략 대두(大豆)의 말과 같았고, 또 오도리(吾都里)의 사로잡힌 자 38명과 보을오(甫乙吾) 관하(管下)의 사로잡힌 자 7인의 이름을 열서(列書)하고 말하기를,

"만일 사망(死亡)하지 않았거든 방환(放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또 처제(妻弟)의 아들 도호(都好)·구로(仇老) 등을 구(求)하니, 연사종이 그 편지를 아뢰었다. 임금이 대언(代言)에게 이르기를,

"이대두가 어째서 왔는가? 동맹가첩목아가 스스로 말하기를, ‘경원(慶源)의 전역(戰役)에 내가 비록 참여하였으나, 본의(本意)는 아니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러할까? 이것을 칭탁하여 우리를 달래서 자안(自安)의 계책을 삼는 것이 아닌가? 겉으로는 화호(和好)를 구하는 체하고 마음속으로는 우리를 달래어, 우리 나라 일의 변동을 엿보러 온 것이 아닌가?"

하니, 대답하기를,

"경원(慶源)을 침공(侵攻)한 것이 본심(本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오직 거짓입니다. 신 등은 생각건대, 우리를 엿보아 자안(自安)의 계책을 삼으려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적(賊)의 꾀가 유심(幽深)하니 알 수 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46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註 068]
    짐작(斟酌) : 사정을 참작하여 잘 처리함.

童猛哥帖木兒李大豆來曰: "着和把兒遜管下侵慶源之時, 予亦同來者, 爲其所逼, 勢不得已耳, 非予本心。 今棄舊土而從遐域, 人多地窄, 生理良艱。 願殿下使通曉言語若金同介者來諭, 予當遣子入朝, 還我舊土矣。" 上曰: "大豆且厚待之。" 東北面察理使亦啓: "骨看 兀狄哈 豆稱介, 不與賊同謀, 而入于海島, 往往使人于慶源, 以通其情。 金同介, 本骨看 兀狄哈之種也, 請遣之招安。" 上許之。 猛哥帖木兒貽書吉州察理使延嗣宗曰:

久隔未見, 今聞來鎭, 喜甚。 前察理使率國家大軍, 本爲制正野人 兀狄哈 金文乃葛多介等作賊人, 托以道遠, 不肯直指其地, 却於中路, 將毛憐衛掌印官員百姓, 盡行殺害。 今被殺害人父兄子弟之遺在者逼迫我云: "指揮今若不去向朝鮮, 則指揮必與朝鮮通書定計, 欲挾攻我輩審矣。" 予亦不得退避, 且提兵迎留。 上項毛憐衛死亡遺種, 已先至阿吾知地面, 予乃領兵隨至, 禁其侵掠, 本欲率領還歸, 慶源軍馬到來接戰, 兩相殺害, 毛憐遺種欲將慶源官家破毁, 家屬錢物牛馬, 竝皆奪取, 以快其忿。 予誘之曰: "予已使人詣朝鮮, 請將擄掠人口放還, 莫如退軍, 各還舊居。" 及李大豆還言: "前察理使, 國家議罪拿歸。 今好察理使到界, 欲修舊好。" 更使李大豆前往, 若盡還擄掠人口, 使彼我人口依舊居生, 則此實係令公聲譽美事。 予謂此事, 莫如寢息, 儻連釁不已, 數多種類作賊擾邊, 視聽非祥, 惟斟酌施行。 李大豆之還, 仔細報道。

於虛里亦移書嗣宗, 大略如大豆之言, 且列書吾都里被擄者三十八名、甫乙吾管下被擄者七人之名曰: "儻不死亡, 乞賜放還。" 且求妻弟之子都好仇老等。 嗣宗以其書聞, 上謂代言曰: "大豆何爲而來哉? 童猛哥帖木兒自言: ‘慶源之役, 予雖與焉, 非本意也。’ 其果然歟? 無乃托此誘我, 以爲自安之計乎? 外似求和, 心欲誘我, 因來覘我國事變乎?" 對曰: "其言攻慶源, 非本心, 特詐耳。 臣等意其欲覘我而爲自安之計也。 賊謀幽深, 未可知也。"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46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