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1권, 태종 6년 5월 3일 임진 4/6 기사 / 1406년 명 영락(永樂) 4년
의정부에서 여러 도의 양전한 결수를 올리다
국역
의정부에서 여러 도(道)의 양전(量田)063) 한 결수(結數)를 올렸다. 동북면(東北面)·서북면(西北面)에 다시 양전(量田)을 행하지 아니한 것을 제외하고, 경기도·충청도·경상도·전라도·풍해도·강원도의 6도에 원전(原田)이 대개 96만여 결(結)이었는데, 다시 양전(量田)하여 얻은 잉전(剩田)이 30여 만 결이었다. 고려 말기에 전제(田制)가 크게 허물어져서 홍무(洪武) 기사년에 6도(道)를 다시 양전(量田)하여 전적(田籍)에 올렸으나, 그때 왜구가 한창 성하여 바닷가는 모두 진황지(陳荒地)였다. 이때에 이르러 개간한 땅이 날로 불어서 남아 있는 땅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양전(量田)한 것이다.
- [註 063] 양전(量田) : 토지를 측량하던 일.
원문
국역
의정부에서 여러 도(道)의 양전(量田)063) 한 결수(結數)를 올렸다. 동북면(東北面)·서북면(西北面)에 다시 양전(量田)을 행하지 아니한 것을 제외하고, 경기도·충청도·경상도·전라도·풍해도·강원도의 6도에 원전(原田)이 대개 96만여 결(結)이었는데, 다시 양전(量田)하여 얻은 잉전(剩田)이 30여 만 결이었다. 고려 말기에 전제(田制)가 크게 허물어져서 홍무(洪武) 기사년에 6도(道)를 다시 양전(量田)하여 전적(田籍)에 올렸으나, 그때 왜구가 한창 성하여 바닷가는 모두 진황지(陳荒地)였다. 이때에 이르러 개간한 땅이 날로 불어서 남아 있는 땅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양전(量田)한 것이다.
- [註 063] 양전(量田) : 토지를 측량하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