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8권, 태종 4년 8월 11일 경진 2/2 기사 / 1404년 명 영락(永樂) 2년
전보문의 아내 송씨의 노비 상속 문제로 이원굉과 하자종 등을 순금사에 가두다
국역
전 정당(政堂) 이원굉(李元紘)과 전 전서(典書) 하자종(河自宗)·정목(鄭睦)·송의번(宋義蕃)을 순금사(巡禁司)에 내렸다. 처음에 전보문(全普門)의 처 송씨(宋氏)가 음분(淫奔)하다가 죄를 입게 되어, 그 노비가 모두 속공(屬公)되었었다. 송씨는 나라의 귀성(貴姓)이었으므로, 그 나머지 노비도 또한 많았다. 송씨의 족친(族親)과 송씨 외가인 강씨(姜氏)의 족친이 모두 조정에 가득하였다. 고(故) 판서(判書) 허금(許錦)이 송씨의 양자(養子)라고 칭하고 그 노비를 모두 차지하였다. 국초(國初)에 송씨의 족친은 평양 부원군(平壤府院君) 조준(趙浚)·여흥 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같은 이었고, 강씨의 족친은 흥안군(興安君) 이제(李濟)·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하윤(河崙)·성산군(星山君) 이직(李稷) 등과 같은 이었는데, 사대부 수십 가(家)가 서로 소송하다가 마침내 속공(屬公)되니, 허금(許錦)의 아들 허기(許愭)가 도로 차지하고자 하여 신문고(申聞鼓)를 쳤었다. 임금이 대간(臺諫)과 형조로 하여금 의논하여 결정하게 하였는데, 또한 모두 속공(屬公)하니, 강씨의 족친인 하자종·정목·송의번 등 수십 인이 가전(駕前)에서 상서(上書)하였다. 임금이 본디 그 실정을 알고 있었으므로, 모두 순금사(巡禁司)에 내린 것이다. 하자종 등 수모자(首謀者) 4인은 유배시키고, 이원굉(李元紘)은 추방하였다.
원문
태종 4년 (1404) 8월 11일
태종실록8권, 태종 4년 8월 11일 경진 2/2 기사 / 1404년 명 영락(永樂) 2년
전보문의 아내 송씨의 노비 상속 문제로 이원굉과 하자종 등을 순금사에 가두다
국역
전 정당(政堂) 이원굉(李元紘)과 전 전서(典書) 하자종(河自宗)·정목(鄭睦)·송의번(宋義蕃)을 순금사(巡禁司)에 내렸다. 처음에 전보문(全普門)의 처 송씨(宋氏)가 음분(淫奔)하다가 죄를 입게 되어, 그 노비가 모두 속공(屬公)되었었다. 송씨는 나라의 귀성(貴姓)이었으므로, 그 나머지 노비도 또한 많았다. 송씨의 족친(族親)과 송씨 외가인 강씨(姜氏)의 족친이 모두 조정에 가득하였다. 고(故) 판서(判書) 허금(許錦)이 송씨의 양자(養子)라고 칭하고 그 노비를 모두 차지하였다. 국초(國初)에 송씨의 족친은 평양 부원군(平壤府院君) 조준(趙浚)·여흥 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같은 이었고, 강씨의 족친은 흥안군(興安君) 이제(李濟)·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하윤(河崙)·성산군(星山君) 이직(李稷) 등과 같은 이었는데, 사대부 수십 가(家)가 서로 소송하다가 마침내 속공(屬公)되니, 허금(許錦)의 아들 허기(許愭)가 도로 차지하고자 하여 신문고(申聞鼓)를 쳤었다. 임금이 대간(臺諫)과 형조로 하여금 의논하여 결정하게 하였는데, 또한 모두 속공(屬公)하니, 강씨의 족친인 하자종·정목·송의번 등 수십 인이 가전(駕前)에서 상서(上書)하였다. 임금이 본디 그 실정을 알고 있었으므로, 모두 순금사(巡禁司)에 내린 것이다. 하자종 등 수모자(首謀者) 4인은 유배시키고, 이원굉(李元紘)은 추방하였다.
원문
원본
태종 4년 (1404) 8월 11일